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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골프장

파인크리크

hm 2023. 9. 24. 07:29

경기도 안성 인근 (특히 용인시와 붙어있는 쪽의) 지도를 보면 마치 초록색 벌레가 모여 기어가듯이 골프장이 바글바글한데 (골프장 인허가 비리로 시장이 구속되고, 국회의원 뱃지 여러개가 날아가게 된 동네가 바로 안성이다) 그중에서도 파인크리크는 오랫동안 명문으로 콧대를 세워왔던 곳이다. 임상하 씨와 Thomas Quinn (이 사람은 일본에서도 몇몇 골프장을 설계한 것으로 나오는데 구글링을 해봐도 도대체 원래 뭐하는 분인지 알 수가 없었다)의 설계로 만들어진 27홀 (파인/크리크/밸리) 코스인데 한때는 대한민국 10대 코스로 꼽히기도 했던 골프장이지만 모기업의 어려움으로 결국 퍼블릭이 되어버렸다. 폐쇄적인 회원제로 유지되던 시절에도 한두번 가본 것 같은데 당시의 기억은 전혀 없고, 연휴 첫 날에 어디 공이나 한번 치러갑시다 그런 얘기가 오가던 참에 빈 티타임을 찾아서 다시 가보게 되었다. 막히는 고속도로를 달려 간신히 시간을 맞춰 도착했으니 연습그린에 공 한번을 굴려보지 못하고 먼저 크리크 코스 1번홀로 출발이다. 3개의 9홀 중에서 밸리 코스가 좀 어렵다고 하니 (내 생각에) 회원제 시절에는 파인/크리크 조합이 정규홀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한편, 파인 코스가 파 3와 파 5가 3개씩이니까 여기가 더 어려울 수도 있다. 코스에 상관없이 원래 소문으로 파인크리크는 초보자에게 재미를 주지 못하는 코스라고들 했다. 전략을 요구하는 레이아웃에 엄청나게 빠르고 어려운 그린 탓이다. 그런데 의외로 첫 홀에 투온 투펏을 했다. 내 실력이 그새 늘은 것일까 티박스를 앞으로 땡겨놓아서 그럴까? 그린도 커다랗고 어렵긴 하지만 좀 느린 편에 군데군데 맨땅이 드러나있다. 퍼블릭으로 바뀌었어도 그린피는 (안성 지역치고는) 비싸게 받던데 이거 좀 심한 거 아닌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두번째 홀로 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홀을 거듭할수록 코스가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고,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경치도 상당하다 (고압선 철탑이 살짝 거슬리긴 했다). 홀간 간격도 넉넉해서 원래 비회원 부킹은 절대 허용하지 않던 고급 골프장답다. 모두가 최고로 꼽는 크리크 코스 4번 홀은 저 아래로 투온 욕심을 자극하는 파 5인데 모처럼 티샷이 잘 맞은 반면 내리막 라이에서의 세컨샷이 부담스럽다. 다시 돌아가서 쳐보면 좀 나을텐데 그런 아쉬움을 주는 홀이다. 확실히 어려운 코스는 맞다. 티샷 잘 쳐놓고, 그린에서도 투펏을 하는데도 잘해야 보기다. 그린이 쉽지도 않다. 계단식으로 어이없는 디자인도 아니고 저멀리 그린이 빤히 보이는데도 그렇다. 정해진 위치에만 공을 떨어뜨려야 하는 타겟 골프도 아닌 것 같은데 스코어는 별로다. 요즘 들어 느끼는 거지만 골프라는 운동은 해도해도, 이제 좀 될 것도 같은데 안되는 그 맛에 점점 더 빠져드는 것 같다. 몇년전 같으면 아예 들여다보기도 힘들었을 파인크리크가 퍼블릭이 되어버린 것은 나같은 소시민에게는 환영할 일이어서 요즘이 정말 골프치는 사람에게는 꿈같은 나날이다.

후반에는 밸리 코스로 간다. 비소식이 있긴 했어도 흐리기만 하던 날씨는 드디어 폭우로 변했고, 그래도 우리는 꿋꿋하게 쳤다. 전반보다 어렵다는 얘기는 파 4 홀들의 전장이 조금씩 더 길어져서 그런 모양이고 경치는 더 좋았다. 오르막 파 5인 밸리 2번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는데 티박스에서부터 시각적으로 좁아보여서 고생했기 때문이다. 간신히 티샷을 살려놓고, 세컨샷을 하려고 보니 또 까마득한 오르막에 그린은 보이지도 않아서 막막한 심정이었다. 4번만에 그린으로 올라와서 보니까 그냥 또박또박 쳤으면 전혀 어려운 홀이 아니었기에 (아무튼 이 홀이 핸디캡 1번이다)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밸리 코스의 또다른 파 5인 5번도 경험이 좀 있었다면 최소 버디를 했을 홀인데 티박스에서 계곡을 넘어서 왼쪽으로 격하게 휘는 페어웨이로 공을 보내게 되는데 나는 페어웨이의 우측 끝으로 돌아가겠다며 공을 쳤지만 더 왼쪽의 그린 쪽으로 쳤어도 충분히 넘어갔을 거리였고, 투온도 가능했을 것 같아서 역시 아쉬웠다. 하도 오랜만에 와서 그렇지 파인크리크는 좋은 골프장이었고, 다만 비가 세차게 내리면서 북적대는 좁은 샤워장과 클럽하우스 입구에서 고생을 했더니 좀 여유있게 리노베이션을 하면 어떨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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