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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처음으로 제천의 힐데스하임을 가자고 했더니 다들 미쳤냐는 식의 반응이었다. 서울에서는 고속도로를 타고도 원주를 지나 조금 더 가야하는데 중앙고속도로 제천 ic에서 나가면 금방이라 의외로 시간은 많이 걸리지 않지만 (물론 이렇게 십분만 더 가면, 이러다보면 어디 경상도까지도 갈 것이다) 심리적으로 일박이일은 해야할 것만 같은 위치라서 그렇다. 서울에서의 거리 탓인지 주변에 가본 사람이 적은 힐데스하임 cc가 스마트스코어에 팔리면서 이름을 킹즈락 (King's Rock) 컨트리클럽으로 바꾸었는데 나는 힐데스하임에는 여러번 가봤으나 킹즈락은 이번이 처음인 셈이다. 임상신 씨가 설계해서 드래곤/타이거/스완 코스로 불렸던 27홀 퍼블릭으로, 코스의 이름도 아마 지금은 서/동/남으로 바꾼 모양이었다. 27홀을 모두 칠 수 있는 이벤트도 종종 하며, 가성비로는 어떤 골프장도 따라오지 못할 것인데 주인이 바뀌면서 비싸지지만 않기를 빈다 (최근 지역 언론사인지 관청인지와의 분쟁이 세간에 회자되는 것을 보면 가격을 올릴 것 같지는 않다). 골프장의 입지는 험난한 산악지형 사이의 구릉지라서 저멀리 소백산맥의 능선이 겹겹이 펼쳐지는 절경이었다. 연습장에서 공을 백개 친다고 다 같은 곳으로 가는 것은 아니지만, 코스에서의 플레이도 늘 아쉽기만 하지만 이렇게 예전에 갔던 코스를 다시 방문하면 확실히 실력이 나아졌음을 느낀다. 공이 좀 맞으면 아무래도 여유가 생겨서 코스를 더 즐길 수 있다. 퍼블릭이 되었어도 관리상태가 여전히 좋았던 것도 마음에 든다. 최근에 서울 근교의 골프장에 가보면 (특히 조선잔디 코스들은) 최근 내린 비때문에 잔디가 좀 상했던데 여기는 아주 괜찮았다. 서울에서 가깝기만 했어도 꽤나 붐볐을 (그리고 비쌌을) 것인데 적어도 여주나 이천 지역의 골프장에 가느니 시간을 십여분만 더 투자하면 싸고 한가하면서 아름다운 코스들이 널려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큰 수확이었다 (여기의 그린피가 싸게 가면 9홀당 6만원 정도인데 우리나라 골프장은 아무리 싸다고 해도 캐디피에 카트비까지 하면 비싼 느낌을 지울 수가 없지만 힐데스하임은 미국같은 나라에 가져다놓아도 백몇십불은 할만한 경치와 관리다).
이번에 우리는 서/남 코스니까 예전의 드래곤/스완 순서로 쳤다. 스완 (지금은 남코스) 코스는 시원스러운 내리막 티샷으로 시작한다. 평탄한 페어웨이는 아니지만 아주 구겨놓은 것도 아니어서 공이 나가지만 않으면 어프로치 투온이 무난하다. 사진빨 끝내주는 (언론에서 꼽는 시그너처 홀이다) 롱홀 3번부터 슬슬 어려워지는데 압권은 커다란 호수를 따라 펼쳐지는 4번에서 6번이다. 특히 바위산 옆에 포대 그린을 만들어놓은 6번이 시그너처였는데 (그래서 6번 홀의 이름이 이글네스트라고 한다) 여기 말고도 그린이 대개 약간 솟아있어서 짧은 어프로치가 튀어 올라가는 행운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린도 홀컵의 위치에 따라 다르겠지만 브레이크가 보기보다 복잡하다. 힐데스하임을 다녀와본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스완 코스를 추천하지만 아마도 호수와 돌산 때문일 것이고, 공이 맞아주는 날에는 다른 코스도 비슷하게 멋지다. 타이거 (동) 코스는 오르막을 따라 하늘과 맞닿은 페어웨이 능선을 바라보고 샷을 날리는 홀들이 아주 근사하다. 3번이 대표적으로 광활한 그린 뒷쪽으로 보이는 산들이 아름다운 파 3인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어디 외국의 관광지보다도 우리나라 산세가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 절정이 스카이라인이라고 명명된 타이거 8번인데 그린이 코스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있어서 그렇다고. 어프로치를 준비하며 바라보는 그린 뒤로는 정말 능선과 하늘 뿐이어서 정말 천혜의 명당에다가 골프장을 만들었구나 감탄하게 된다. 5번 홀도 특이하게 티박스에서부터 페어웨이까지 전체가 암반이나 돌이 없는 끄트머리에다가 그린을 만들어 놓았다. 타이거 코스의 9번 홀에는 페어웨이 우측으로 (아마도?) 옛날에 호랑이가 살았다고 하는 굴이 있는데 신기하기는 하지만 공을 그쪽으로 보내지 않고서야 구경할 일은 없다. 임상신 씨는 아직까지 대단한 찬사를 받는 코스 디자이너가 아닌 모양이지만 힐데스하임을 돌아보면 확실히 기존의 우리나라 산악코스 수준을 뛰어넘는 뭔가가 느껴지는데 설계자의 능력인지 아니면 터가 워낙 좋아서인지는 좀 생각해봐야겠다.
우리처럼 드래곤 (서) 코스로 시작하는 경우라면 여기 1번에서 어떻게 치느냐에 따라 하루가 달라질 것 같다. 확실히 초행길인 골퍼라면 대체 어디를 보고 티샷하느냐 고민할만한, 심한 내리막 도그렉인데 캐디가 정해주는 방향으로 보내면 되지만 공이 내리막 어디에 멈추느냐에 따라 운명이 갈린다. 드래곤이라고 이름붙인 이유가 좀 구불구불하게 만들어서였을까, 5번 홀은 어디선가 봤다 했더니 로얄포레의 (거기는 임충호 씨가 설계) 포레 9번과 흡사하게 생긴 어려운 홀이다. 비슷하게 티박스에서 어디로 쳐야하나 고민할 홀이 드래곤 6번이다. 계곡을 넘어 페어웨이가 있는데 울창한 나무 덕택에 살짝 고민하게 되지만 막상 가보면 공은 대충 살아있다. 여기서도 내리막 라이 어디에 공이 멈춰서느냐가 어프로치 성공의 관건이 된다. 드래곤 코스에서의 시그너처 홀은, 내 생각에는 좌측에 호수를 끼고 돌아가는 7번이었다. 이 해저드가 그린까지도 이어져 있어서 마치 아일랜드 그린을 향하듯이 어프로치한다. 여기가 사진빨은 기가 막히는데 투온하기는 쉽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27홀 골프장은 (나인홀을 퍼블릭으로 추가한 것이 아니라면) 대개 내장객을 많이 받을 목적이라서 어떤 조합으로 18홀을 돌더라도 느낌이 비슷하다. 여기 힐데스하임에서는 위에 적은 것처럼 스완 코스가 가장 선호되는 코스인데 초행길이라면 그렇게 도는 편이 낫겠으나 몇차례의 방문에서 받은 내 취향은 타이거/드래곤 코스의 조합이다. 도전적이고 매홀마다 고민하는 재미가 있다.
힐데스하임이 킹즈락으로 바뀌면서 가장 큰 변화는 (코스의 이름이 바뀐 것 말고도) 좀 쉬워지기 위한 노력을 하는 중이라는 점이다. 몇몇 홀에서는 저멀리 그린을 비워두고는 페어웨이 중간에다가 새롭게 (임시?) 그린을 만들어놓았다. 그외에도 벙커를 메꾸고, 코스를 가리는 나무들을 쳐내는 등, 그러나 기본적으로 어려운 산악지형이라 난이도는 여전하며, 차라리 더욱 어려운 코스를 지향했다면 어땠을까 생각도 든다. 거의 모든 홀의 티박스에는 매트가 깔려있었고, 에어레이션이 진행중인 그린은 심각할 정도로 느렸다. 주인이 바뀌며 이런저런 노력을 하는 것이겠지만 아무튼 좋아했던 이성이 현실의 풍파로 망가져가는 모습은 아니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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