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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해비치 골프앤리조트는 현대차그룹이 주인인 36홀 골프장인데 그중 레이크/밸리의 18홀이 원래 대중제였고, 스카이/팜 코스가 회원제였다. 양쪽의 코스가 잔디와 디자인이 미묘하게 달랐던 기억인데 아무튼 이번에는 리조트에서 일박하면서 두 코스를 모두 쳐보기로 했다. 장정원 씨가 설계해서 그래도 제주도에서도 관리상태나 코스의 레이아웃이 좋기로 소문난 골프장이지만 내 경우에는 갈때마다 날씨가 좋지 않아서 취소되거나 중간에 포기하거나 했어서 제대로 겪어본 적이 별로 없었다. 그만큼 날씨의 영향을 받는 지역이다. 특히 지난주에도 제주도에 왔다가 태풍이 몰아치는 와중에 공을 쳤더니 힘든 것은 물론이고 스윙이 망가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잔뜩 찌푸린 하늘이지만 이틀 내내 비예보는 없어서 다행.
레이크 1번부터 시작하려니 예전에 와본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이날도 동반자들이 돈내기를 좋아하는 이들인데 나는 내기를 별로 하지 않지만 한다면 뽑기나 소소하게 천원짜리 스트로크 정도를 하지만 이들은 맨날 어디서 배워왔는지 희안한 방식으로, 그것도 매 홀마다 달라지는 룰로 내기를 한다. 이래서는 돈을 따거나 잃거나 골프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그나마 코스는 기대했던 이상으로 아름다와서 다행이었고, 언덕을 넘어가거나 도그렉이 많았어도 비교적 넓직해서 그럭저럭 파를 잡아나갔다. 기억에 남았던 홀들은 그린 앞에 계곡을 넘어가는 롱홀인 레이크 3번, 아일랜드 그린으로 공략하는 레이크 6번, 도그렉이 많았던 후반의 밸리 코스에서는 6번이 인상적이었다. 잔디의 상태가 별로였지만 대중제로 운영하니 이해하기로 했고, 어쩌면 미국의 퍼블릭같은 느낌도 들었다.
제주도는 여전히 거리두기 4단계여서 방문객이 많지 않아보였고, 백신 접종완료자를 포함해도 여전히 저녁식사는 4인까지만 가능했다. 이날의 동반자들이 워낙 술을 마셔대기 때문에 밤 9시까지만 식당이나 술집을 열었던 것이 차라리 내게는 다행이었던 것이, 일찍 마시고 뻗자라는 심정으로 엄청나게들 퍼붓고는 정말로 다들 맛이 가버렸다 (예전같으면 골프텔에서 2차로 고스톱이나 포커판이 벌어졌을 것이다). 문제는 숙소였는데 방 하나에 4인 숙박이 안된다고 해서 결국은 (무거운 백을 짊어지고) 몇십분을 걸어서 근방 모텔에서 잔 것이었다. 수십년전의 여관 수준인 허름한 방을 인당 4만원씩에 묵었는데 그래도 샤워하고 누우니 차라리 비싸기만한 골프텔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이전에도 최고의 성수기였을 9월인데 세상이 변해버린 와중에도 나는 비슷하게 (집-직장-골프장) 생활하고 있으니 다행인 것인지, 나름 힘들다고 하면 배부른 소리가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삶이 힘들어진 분들도 많이 계실텐데 이 사태의 원인이 정말로 그 바이러스일까, 상황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당국이 문제일까 등등 무거운 생각을 하다가 (그러나 결국 개인이 어쩔 수 없다는 무력감에)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