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비치 (스카이/팜)

제주도의 수많은 골프장들이 대개 평균이상의 퀄리티를 유지한다고 생각하지만 그중에서도 다시 가봤으면 하던 곳이 해비치 cc였다. 여러해 전에 직장의 워크샵을 여기서 하면서 꽤 크고 쾌적한 골프텔을 인당 하나씩 차지하는 호사를 누렸었는데 요즘에는 꿈같은 얘기고, 이후 몇차례 갔지만 비바람에 끝까지 쳐본 적이 없었다. 여기는 장정원 씨가 설계해서 36홀인데 레이크/스카이/팜/밸리의 네개 코스가 돌아가며 하나씩을 (평일에) 노캐디 퍼블릭으로 개방했었다. 지금은 팜/스카이의 조합을 회원제, 레이크/밸리 코스를 퍼블릭이라고 하나, 주인이 바뀌면서 구분이 모호해진 모양으로 그냥 18홀씩 묶어서 돌린다. 이번에는 토요일에 와서 18홀을, 일요일에 36홀, 그리고 귀가하는 일정으로 잡았는데 제주도의 변화무쌍한 날씨는 막상 가서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다.

제주도에서 유명한 코스들 중에는 재미있고 아름답지만 그린에 올라서서 뒤를 돌아보면 어디 경춘권의 코스에 온 것처럼 느껴져서 저멀리 한라산만 아니었다면 이국적인 풍광을 느낄 여지가 없는 경우가 많은데 해비치도 비슷한 코스여서 우리가 상상하는 제주도보다는 전형적인 우리나라 골프장이었다. 그런데 어제의 대중제도 넓고 평탄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날 보니까 회원제 18홀에 비하면 거기는 짧고 좁아터진 코스였다. 이날 바람이 많이 불어서 이것만은 제주도다왔다. 우리는 팜/스카이 코스의 18홀을 돌면서 커다랗게 뗏장을 떠가며 즐겁게, 재미있게 쳤다. 첫 팀이라 4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서 그것도 좋았는데 오후가 되니까 다시 한여름처럼 더워져서 허덕거리며 대중제 18홀을 또 돌았다. 양쪽 코스의 경험이 완전히 달라서 한번만 친다면 당연히 스카이/팜 코스로 잡는 편이 좋다. 한라산의 이국적인 산악지형이 인상적인 스카이 코스와 그린 주변의 (아름답지만) 무시무시한 연못과 벙커를 조심해야하는 팜 코스는 레이크나 밸리 코스와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가격은 수도권 회원제에 맞먹지만 2인 플레이나 노캐디도 선택이 가능해서 선호하는 분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아주 어렵지도 그렇다고 만만하지도 않은 스타일이라 기대에 비해 아주 만족스런 경험이었는데 어젯밤 묵으려고 했던 해비치 리조트는 (호텔에서 골프장은 상당히 멀리 떨어져있음) 4인 숙박이 안된다고 해서 부랴부랴 근방의 모텔에서 잔 것도 새로운 경험 (생각해보면, 어차피 밤에 잠만 자고는 새벽같이 빠져나오는 일정이므로 굳이 비싼 숙소에 묵을 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