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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학회나 심포지움을 부산이나 여수에서 많이 하더니 요즘에는 경주가 핫하다. 내 기억속의 경주는, 그러니까 불국사나 석굴암 구경하는 경주는, 고등학생때 수학여행이 전부인데 골프는 몇년전에 블루원 경주 (당시에는 블루원 보문 cc, 지금 이름은 디아너스)에서 고작 한번이었다. 고즈넉한 고도 경주는 이제 없고, 대신에 활기차고 젊은 도시로 변했다. 이번에 내려간 김에 일요일 새벽에 골프를 치려고 알아보니까 보문단지 주변에 자그만치 골프장이 네개나 된다. 보문호수를 둘러싸고 보문 cc, 경주 cc, 경주신라 cc에 블루원 디아너스까지... 홀의 수로 따지면 108홀이다. 어차피 골프만 칠 예정이니까 어디라도 상관은 없는데 저번에 양산 cc를 갔을 때처럼 영남권의 회원제 골프장은 부킹이 쉽지 않아서 여기 회원인 황** 선생에게 부탁하여 잡았다. 덕분에 (가격은 비록 회원가가 아니었어도) 좋은 티타임이다. 임상하 씨의 유작으로 꼽히는 27홀 코스인데 골프장 홈페이지에는 설계자 이름이 임상"학" 씨라고 나와있다.
불과 몇주전의 무더위가 무색하게도 보슬비가 흩뿌리는 쌀쌀한 날씨다. 여기는 레이크/밸리/힐스 코스의 27홀인데 우리가 도는 18홀은 힐스와 밸리 코스다. 비로 취소한 팀들이 많아 대통령 골프인데 그렇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라 취소할만 하니까 취소하는 것이다. 물에 빠진 생쥐의 모양으로 미끄러지는 그립을 움켜지고 하는 골프가 잘될 리가 없다. 그래도 즐거우면 되었고, 무엇보다도 아름답고 잘 관리된 코스라 불만없이 18홀을 마쳤다. 임상하 코스의 절정이다 싶게 각 코스는 차츰 어려워지다가 극적인 경치를 보여주며 끝난다. 길어서 어려운 코스이기도 하다. 솔직히 화이트티에서 치는데 티샷이 잘 맞았어도 그린까지 170 미터 보세요 이런 얘기를 홀마다 듣자면 맥이 빠진다. 두번째 방문이고, 전에는 회원가로 쳤던 기억인데 이번에는 비회원 그린피를 다 냈다. 서울 근교에 버금가는 가격이라도 그만한 가치가 있는, 훌륭한 코스다. 덜덜 떨면서 샤워를 하고, 관광객들로 가득한 함양집의 육회물회를 먹고, 에어콘 빵빵한 SRT를 타고 귀경하니 따뜻하고 화창한 서울의 날씨에 내가 왜 경주까지 하필 장마가 몰려오는 시기에 갔을까 살짝 후회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