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포

2026. 5. 26. 05:40·국내 골프장

여기를 여러번 가보았지만 작년 가을에 방문했을 당시에는 내 골프실력 빼고는 모든 것이 좋았었다. 굳이 변명하자면, 작년초 건강검진을 받고서 좀 위기감이 생겨서 위고비를 처방받아서 맞았는데 6개월을 꼬박 채웠더니 살은 많이 빠졌으나 체력이 바닥까지 떨어져버려서 골프가 싫어질 정도로 (최저일 시기에는 스윙 자체가 아예 되지도 않았음) 못치던 시절이었다. 위고비를 끊고 몇달이 지나자 (체중도 다시 올라갔지만) 공이 다시 잘맞게 되어서 일종의 복수전? 같이 잡은 라운드다. 동반자들이 그런 골프장도 있어? 내지는 거기 상태가 별로라던데? 했지만 이런 이유가 있어서 굳이 이포 컨트리클럽으로 가자고 고집한 이유다.

이 골프장의 위치를 보통 곤지암이라고들 하는데 실은 좀 지나쳐서 여주 쪽이고, 남한강의 아랫쪽이기 때문에 양평에서 더 가깝다고 봐야한다. 1992년에 김명길 씨가 설계해서 개장한 18홀 골프장이라 오래되고 평범한 회원제인데 작년에 갔을 당시에는 그사이 코로나 덕택에 돈을 벌었는가 클럽하우스가 예전 기억에 비해 깔끔해졌더라. 그래도 라커룸 입구는 1층에, 라커는 계단을 내려가서 있고, 샤워실은 다시 한 층을 올라와야 하는 구조는 예전이랑 마찬가지였다. 산에 있을 뿐이지 티박스에서 그린까지 솔직하게 만들어진 코스라서 쉽다는 사람도 있고, 길어서 어렵다는 이들도 있는데 아무튼 이번에는 괜찮은 골프를 쳤다. 오래된 골프장답게 넓고 편안해보이는데다가 숲이 울창했는데 조선잔디가 한창 올라오는 5월임에도 페어웨이나 그린 주변이나 잔디가 많이 상했다. 여기저기서 잔디를 갈아엎는 작업이 진행중인 것을 보면 골프장 측에서도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보이지만 아무튼 우리는 썩 별로인 코스에서 쳤다. 꽃이 예쁘니 금잔디니 단풍철이니 어쩌고해도 골프장에서는 초록의 잔디를 봐야하는 법이다.

티박스마다 사자성어로 홀의 이름을 적어놓은 것이 오래된 골프장다왔고, 첫번째 홀부터 공이 그럭저럭 잘 맞아주니까 더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나란 사람은 좀 꼬였는지) 이거 골프코스 설계가 뭐 이렇게 쉽냐 생각이 슬슬 들기 시작했다. 여기도 물론 페어웨이에 해저드와 벙커가 있는데 여간해서는 들어갈 수가 없는 위치에다가 만들어놓았으니 머리올리는 초보라면 기뻐할 일이지만 저 벙커는 조경이라서 들어가지 말라고 저기쯤에 만들었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미국의 (그냥 평평한 땅에 나무만 좀 심어서 홀들을 구분하는) 동네 퍼블릭 느낌이다. 물론 여기는 산세와 숲이 아름다와서 공 잘 맞고 경치 좋으니 그만하면 좋은 골프장이다.

유일하게 티박스에서 그린이 보이지 않는 파 3 홀인 12번이 인상적이었으니 정말 밋밋하긴 했다. 그런데 의외로 여기 화이트티에서의 코스레이팅은 우리나라에서도 어려운 편에 속한다고 한다. 내 실력이 좋아졌기 때문에 쉽다고 느껴지는 것은 아닐 것이고, 공식 평가에서는 티박스 위치가 달랐다거나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코스를 평가하는 이들이 티샷 비거리로 어려움을 격지는 않을 것인데 좀 이상하긴 하다. 그래도 경치나 코스의 관리상태나 근방에 널려있는 명문 골프장들에 비하면 많이 떨어져보였다. 오전내내 비가 내려서 걱정이었으나 우리가 치는 동안에는 18홀 내내 흐린 날씨에 바람도 예보에 비해서는 견딜만해서 골프치기에 최적이었다. 덕분에 좋은 스코어를 내긴 했는데 70대에서 90대까지 맨날 오르락내리락하는 골프라서 코스가 편안해서인지 내 실력이 좋아진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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