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서울에서 중부고속도로로 내려가다보면 남이천 ic 부근에 골프장들이 몰려있고, 거기서 조금 더 내려가서 일죽 ic로 나가면 또 가성비 짱짱한 골프장들이 여럿 나온다. 실크밸리가 위치한 동네는 경기도 이천이라고는 하지만 거의 충북에 가까운 지역이어서 그린피가 저렴한 이유가 되겠다. 싼 가격의 다른 이유로 몇몇 홀에서 느껴지는 악취를 들 수 있는데 기존의 축사를 없앨 도리는 없으니 호불호가 명확한 골프장이다. 나는 이번이 두번째 방문인데 기억에 심한 악취는 아니었다는 생각이지만 시기와 날씨에 따라서는 다시는 안가겠다고 치를 떠는 이들도 보았다. 송호 씨가 설계한 27홀의 관리상태나 디자인이 좋은 편인데 문제의 냄새 때문에 평가절하되는 느낌. 그러나 (냄새만 견딜 수 있다면) 라베를 기대할 수 있는 구장이라고도 회자되는 곳이다. 레이크/실크/밸리 코스들 중에서 이번에 우리는 실크/밸리의 18홀을 돌았고, 노캐디 라운드였다.
반바지 라운드가 가능한 골프장이지만 벌레가 많을까, 비가 와서 추울까 걱정하면서 일단 가서 보자며 이것저것 싸가지고 갔다. 여름에는 티셔츠에 반바지가 전세계 어디에서나 적용되는 골프장 드레스코드인데 그렇다고 대단히 시원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 더위에 긴바지는 다리에 달라붙는 것만으로도 괴롭다. 그런데 송호 씨의 코스는 가면 갈수록 감탄사가 나온다. 그의 디자인 내공이 이제는 거의 최고조에 이른 것이 아닐까 싶게 편안하면서도 전략이 필요한 난이도를 보여준다. 가령 실크 4번처럼 페어웨이를 둘로 갈라서 장타자라면 투온 도전을, 보통의 아마추어라면 안전하게 돌아갈 선택이 가능하게 만드는 식은 (비록 외국의 설계자들이 만든 코스들에서 영감을 얻었을 것 같지만) 좋은 설계라고 본다. 그린 주변에도 해저드나 벙커로 반쯤 방어되는 반면에 비교적 안전한 구역을 만들어놓아서 불안하다면 그쪽을 공략할 수 있었다. 우리들 보기플레이어도 대충 파나 보기가 가능한 디자인인데 그렇다고 평이한 것은 아니고 아름다운 풍광이다. 우리나라 잔디가 가장 아름다울 8월에 왔으니 느릴 수밖에 없는 그린과 흘러내리는 땀을 빼면 골프치는 보람이 느껴지는 시기다.
후반의 밸리 코스는 이름처럼 계곡을 따라서 돌아가는 식이라 이쪽 동네에서는 낯익은 디자인이다. 물론 전반의 실크 코스도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무지하게 넓었던 전반에 비하면 밸리는 살짝 좁았고, 우리나라 지형에서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티박스에서는 페어웨이가 비교적 편안하게 보이지만 막상 가서 보면 어프로치로 그린을 공략하기 좋은 장소와 나쁜 장소가 확연하게 구분된다. 좋은 방향으로 쳤다면 살짝 러프로 들어갔어도 별 상관이 없는데 나쁜 구역이라면 페어웨이를 지켰더라도 세컨샷이 좀 애매하다. 그린으로 올라가면 실은 거기서부터 난관이 시작되는데 커다랗고 복잡하게 구겨놓는 식은 이제 우리나라에서 새로 지어지는 골프장의 트렌드로 자리잡는 모양이다. 기억에 남을만한 시그너처 홀이 없었다는 것이 단점이긴 한데 모든 홀들이 다 무난하다. 적당히 어렵고, 그렇다고 여간해서는 더블, 트리플로 망가지지는 않을 코스여서 아마추어를 위한 최적화다. 막판에 비가 세차게 내려서 서너 홀을 치지 못한 것과, 코스 어디에서나 느껴지는 축사의 냄새만 빼면 백점짜리 라운드였다. 이전 (코로나 이전) 방문에서는 주말이긴 했지만 꽤나 비싼 그린피를 치렀던 기억인데 이번에는 합리적인 비용을 치렀으니 좀 이상하다 싶은데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매겨지는 것이니 이해가 된다. 하도 골프비용이 비싸다고 아우성이니 대중제 골프장의 가격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모양인데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면 아마도 세금만 올라가서 결국 더 비싸지는 결과가 될 거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