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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제로 개장해서 잘 운영하던 컨트리클럽들이 대중제로 전환하거나 퍼블릭 부킹을 일부 열어주는 현상은 벌어들이는 수입의 격차를 생각하면 대충 이해는 된다. 초심대로 철저하게 회원 위주로 운영하자면 모기업이 돈이 많거나 이익에 관심이 적어야할 것인데 이제 우리나라에는 그런 골프장이 별로 남아있지 않다. 남양주 덕소에 있는 해비치 서울은 아직까지는 회원들만 부킹이 가능한 곳이며, 그러나 회원의 대다수가 모기업인 현대자동차 직원들인 것은 이 골프장이 지향하는 바를 잘 말해준다. 대기업이나 유명인사들을 가려서 회원으로 받아주는 몇몇 폐쇄적인 컨트리클럽들과 달리 해비치 서울은 오직 계열사들의 접대 (또는 직원복지?)가 목표인 골프장이라 따로 일반인 부킹은 어렵지만 고객대상 행사가 종종 열리고, 현대카드 가입자들 중에 높은 티어라면 주중에 부킹이 된다고 한다 (역시 자본주의). 제주도에도 해비치 리조트가 있지만 거기에 딸린 골프장은 정식 명칭이 해비치 제주 컨트리클럽이라고 하며, 남양주에 있는 18홀 코스의 이름이 해비치 컨트리클럽 서울이다. 아무튼 나같은 서민은 가기 어렵기 때문에 이번이 (몇년만의) 세번째 방문인데 모두 관계자와의 인연으로 가능했다.
김명길 씨가 설계한 18홀 코스며, 내 기억에는 그의 다른 코스들에 비해서도 좁고 길고 어려웠다. 토목공사로 산을 헐어내거나 하지 않고 "자연의 길"을 따라 페어웨이를 내었다고 하던데 멋진 말이긴 하지만 내게는 그냥 대충 만들었다거나 능력의 부족함을 변명하는 식으로 들렸다. 그런데 어디선가 읽은 바에 따르면, 주인의 (처음 만들 당시에는 현대자동차가 아니라 군인공제회였다고 함) 의견이 전혀 들어가지 않고 설계자가 마음껏 의도한 바를 펼친 곳이라고 하던데 맘잡고 어려운 타겟골프를 추구한 것이라고 이해해드리려다가도 군인공제회가 원래는 9홀 코스로 만든 골프장으로 나중에 18홀로 확장했다고 들었으니 지금의 모습은 제대로인 디자인이 아니겠다. 몇달전 유튜브에서 무슨 연예인들이 여기서 골프대회를 했던데 장타자나 정교하게 치는 이들이나 여지없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았다.
자주 갈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기쁘게 초대에 응했으나 대기업 회원제답지 않게 직접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걸어와야 했다. 내장객의 수는 적어보였는데 원래 이런지 혹서기라 그런지는 오랜만의 방문이라 알 수 없다. 이번에 나는 그래도 몇번 와보았다고 좋은 날씨에 잘 관리된 코스에서 평소처럼 보기플레이 수준으로 즐겁게 쳤다. 다만, 같이 간 이들이 대개 싱글을 밥먹듯이 하는 사람들이었는데 공을 잃어버리거나 오비를 내가며 연신 투덜거렸다. 샷이 정교하지 못하면 거리는 오히려 독이 되는 그런 코스였는데 그렇다고 짧은 전장도 아니어서 이런 식이 물론 우리나라에도 여럿 있지만 주로 접대에 이용되는 회원제라면 좀 컨셉을 잘못 잡았다 싶기도 했다. 그래서도 부지 자체가 이런 식의 디자인만 가능했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이유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어려워도 수긍이 가서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 그런 골프장이 (대표적으로 레인보우힐스) 있는 반면에 그저 어렵게만 해놓으면 좋은 코스인줄 아냐 욕이 나오는 (블랙스톤 이천이 그렇다) 골프장도 있는데 해비치 서울은 좀 후자에 가깝다. 난이도가 있더라도 파나 보기를 목표로 좀 돌아가는 길을 마련해놓아야 좋은 설계라고 보는데 여기는 그렇게 안전한 배려가 없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몇번 와보면 골프장이 눈에 들어와서 좋은 스코어가 난다고도 한다. 이런 타겟골프는 홀의 모양과 위험지역을 숙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서 자주 오는 회원이나 캐디의 조언에 의존하게 된다. 티박스에서 그린으로 가는 길이 정해져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목표지점을 바라보는 시선이 실제보다 더 어렵게 보이는 탓도 있다. 실제보다 좁아보이고, 그래서 움츠리게 되고, 힘이 들어간다. 나름 잘쳤다고 생각한 홀을 망치는 일이 몇번 반복되면 멘탈이 바스라지며 망가져간다. 커다랗고 빠른 그린도 어렵다고 소문나있지만 퍼팅이야 스피드와의 싸움이므로 오히려 관리상태를 칭찬해야 할 것이다. 돌이켜 기억에 남는 (아쉬움이라고 해야겠지만) 홀들을 꼽자면, 우선 페어웨이가 좌우로 나뉘어져 잘쳐도 공이 떨어지는 위치에 따라 운명이 갈리는 5번이 인상적이었는데 이 골프장의 성격을 대변한다고 생각했다. 공을 여럿 잃어버렸는데 그래도 80대 초반을 친 것은 너그러운 위치에 만들어놓은 특설티와 언덕으로 올라간 공을 찾으면 당연하다는 듯이 페어웨이 한가운데로 던져놓던 캐디 덕택이었다. 돌이켜 부끄러웠던 라운드였으나 워낙 어렵게 느꼈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다. 그래도 다들 가장 어렵다고 하는 긴 파 5인 14번에서 두번의 호수를 넘겨 쓰리온한 것은 다시 하래도 못할 뿌듯한 공략이었다. 재미있게 하루를 보냈으나 굳이 자진해서 찾아오고 싶지는 않은 골프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