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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서는 "TPC"라는 이름이 들어간 골프장은 (뭔가 사기같은 양평 TPC는 빼고) 여기가 유일한 경험인데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가깝기도 하고, 퍼블릭 부킹이 가능하니까 비싼 그린피만 빼면 외면하기 힘든 곳이다. 오래전에 한번 가본 경험으로 매우 길고 어려웠기 때문에 굳이 비싸고 어려운 코스를 가야하나 생각이 있었는데 평일 오후의 120불 그린피는 예전에 비해 달라지지 않았고, 그사이 다른 골프장들이 워낙 가격을 올려서 이제는 가성비일 정도가 (어제 Presidio의 walking rate와 비슷) 되었다. 아무튼 미국에서 100대 골프장에 속하는 TPC Harding Park는 샌프란시스코 시립이기 때문에 지역주민은 저거에서 반값만 내니까 늘 사람이 많다. 1925년에 Willie Watson과 Sam Whiting의 설계로 처음 개장했다는 하딩파크 골프장은 2005년에 Chris Grey의 리노베이션 후에 재개장했는데 2009년의 프레지던트컵을 비롯해 여러 경기가 개최된 바 있고, 가장 최근에는 2020년 PGA 챔피언십이 여기서 열렸다 (2025년 프레지던트컵이 예정되어 있기도 하다). Merced 호수를 사이에 두고 Lake Merced 골프클럽, 샌프란스코 골프클럽, The Olympic Club (여기도 Willie Watson 설계) 등과 가까이 있으니 명실공히 최고의 골프장들이 몰려있는 동네다.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과 같은 자리에서 플레이한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긴 하지만 솔직히 우리같은 아마추어 입장이라면 파 하나라도 한다면 감격스러워야 마땅한 상황이다.

양측으로 나무가 주욱 늘어선 1번 홀에 서니까 그저 관리상태가 괜찮은 파크랜드 골프장인데 뭐가 그리 좋다는 것인지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평평한 페어웨이에 온그린을 방해할만한 해저드나 벙커도 별로 없다. 화이트티를 선택한 것이 처음에는 좀 후회되었던 것이 티박스에서 그린이 다 보이고 주변에 언덕도 없으니 그저 앞으로 전진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서도 6,500 야드나 되니까 짧은 코스는 아니긴 했다 (레이팅/슬로프가 71.1/122). 사방이 Merced 호수로 둘러싸인 섬 같은 지역에다가 만든 코스라 물을 따라가는 홀들이 몇개 있긴 하지만 경치라고 할만한 것은 그게 전부다. 넓직하고 공을 잃어버리기가 거의 불가능한 페어웨이에서 맘이 편해졌는지 막 투온 쓰리온이 나온다. 러프는 또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서 페어웨이를 지키지 못한다면 좋은 스코어는 물건너가버린다. 그린은 좀 실망스럽게 느렸는데 어제까지 비가 많이 왔었으니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느린데 브레이크를 읽기 어려워서 적응이 안된 우리는 쓰리펏은 기본에 포펏도 속출한다. 반면에 스피드에 좀 익숙해지고 나니까 롱퍼트도 그냥 들어간다. 좀 빠르게만 관리한다면 대회를 개최하기에 손색이 없을 그린이다. 시그너처 홀이라고 부르기 좀 그렇지만 마지막인 18번 홀은 해저드를 넘겨 티샷을 하는, 웬만한 요즘 골프장에서는 흔하게 보긴 해도, 식이라 기억에 남는데 프레지던트컵을 앞두고 극적인 승부를 위해 레이아웃을 변경한 것이라고 한다. 기본적으로 카트를 고려해서 설계된 코스가 아니어서, 그리고 평탄한 디자인이라 나는 백을 짊어지고 걷는 편이 더 나았을 뻔했다. 어차피 카트가 페어웨이로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카트패스 어딘가에 세워놓고 공까지 들어갔다 나왔다 하려면 쉬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걸으면 주변의 경치도 보고 잠시 멈춰서서 사진도 찍고 그럴 수 있다. 즐거운 경험이었긴 한데 시차로 피곤한데다가 기대가 컸던 탓인지 돈이 좀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샌프란시스코에 방문한 김에 딱 한번 골프를 치자면 메이저 대회가 열린 곳이니까 아주 적당한 코스인데 여러번 온다면 가격이 살짝 부담된다. 그리고 이게 실은 좀 이율배반적인 것인데 산과 계곡을 가로지르고 바다를 건너는 코스에서 공을 열개씩 잃어버리고 백돌이가 되는 편을 내가 선호하는 것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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