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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전에 티타임이 남아있는 골프장이 별로 없어서 결국 다시 Canyon Lakes로 간다. 몇년전에, 그때도 1월 비슷한 시기였는데 속옷까지 젖을 정도의 빗속에서 치면서도 뭔가 진흙속의 진주를 찾은 느낌으로 즐겁게 쳤던 코스가 여기다. 위치로는 The Bridges 골프장과 붙어있는 18홀 코스인데 둘다 훌륭한 코스지만 이상하게도 이쪽이 몇십불 싸서 이상하다고 느꼈었고, 당시에는 인당 35불에, 이번에는 (토요일이지만) 85불을 냈다. Ted Robinson 시니어가 설계한 주택가 코스로 정식 명칭은 Canyon Lakes Golf & Brewery라서 골프장과 함께 양조장 (아마도 맥주를 생산하는 모양이다)을 운영한다. 주택가라고는 해도 홀들이 언덕을 따라가기 때문에 어려우면서 경치가 생각보다 좋았다. The Bridges는 RTJ 밑에서 일하던 Jay Blasi 설계인데 같은 산에 있지만 설계자에 따라 얼마나 다른 코스로 만들어지는지 비교해도 재미있다. 양측 계곡을 낀 구릉지에 만들어져서 우리나라 골프장같은 느낌도 나고, 양측에는 집들이 빼곡해서 홀들의 간격이 꽤나 멀었다. 페어웨이가 좁고 도그렉이 많아서 일종의 타겟골프인데 탁 트인 전망의 내리막도 있었지만 숨막히게 가파른 오르막 홀들도 나온다.

1번 홀부터 페어웨이에서 어프로치를 하려고 그린을 바라보면 뒷편의 집들과 산이 근사한 모습이어서 이거 생각보다 훌륭한 골프장에 왔구나 싶다. 4번부터는 풍광이 더욱 업그레이드되는데 300 야드 정도인 파 4 홀이지만 그린이 커다란 호수에 떠있는 섬이라서 드라이버로 제대로 맞으면 물에 들어간다. 나는 티샷이 물 바로 직전까지 가서 거기서 웨지샷을 핀에 붙여 버디를 했다. 이어지는 5번도 같은 호수를 넘어가는 파 3인데 양쪽으로 야자수같은 나무들이 늘어서있어서 여기가 플로리다인가 싶게 이국적이다. 이어지는 홀들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언덕을 넘고, 나무들 사이로 지나간다.

Canyon Lakes의 진정한 시그너처 홀을 꼽으라면 나는 14번과 17번 사이에서 고민할 것이다. 둘다 파 5인데 보통 최고의 경험은 파 3 홀에서 나오지만 여기서는 롱홀들이 기억에 남는다. 14번은 시각적으로 매우 멀고 좁아보이는 페어웨이를 향해 티샷을 하고, 거기서부터 다시 길게 페어웨이가 끝나는 지점까지 공을 보내야만 좌측으로 꺾어져 저 산위에 위치한 그린을 만날 수 있다. 두번을 잘 치더라도 두 클럽 이상을 길게 잡아야할 정도로 높은 곳에 위치한 그린으로 어프로치하자면 장난아니게 힘이 들어가는데 여기서 쓰리온을 했더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17번도 긴 오르막 롱홀인데 아마도 코스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그린까지 공을 반복해서 치노라면 저멀리 하늘만을 바라보며 전진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쩐지 익숙해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제주도의 나인브릿지에서 느꼈던 분위기의 홀이었다. 오후로 접어들면서 흐려지며 추워져서 힘들었지만 모처럼 좋은 골프장에서 전반적으로 잘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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