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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한달이나 골프채를 잡아보지도 못했는데 추운 겨울에 맺힌 한을 풀기라도 할 작정으로 다시 샌프란시스코에 왔다. 1월의 캘리포니아 날씨를 보면 연일 폭우가 내렸는데 오랜 가뭄에 큰 도움이 되었겠으나 나는 사실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샌프란시스코에 가는데 가볼만한 골프장이 어딜까요? 이런 질문이 골프 사이트에 올라오면 답은 언제나 정해져 있다. (Olympic 클럽 같은 회원제는 제껴두고) TPC Harding Park, Half Moon Bay, 아니면 여기다. Presidio라는 이름부터가 스페인어로 요새라는 뜻이라고 하며, 오랜 기간동안 샌프란시스코 만을 굽어보는 군사기지로 쓰이던 곳인데 군인들 전용의 골프장도 하나 있었던 것이다. 백년도 전인 1885년에 Robert Wood Johnstone이 설계해서 군 골프장으로 운영하다가 1921년에는 William Herbert Fowler와 Tom Simpson이 리노베이션을 했고, 군대가 철수하여 이 지역이 공원으로 변한 1995년부터는 시립 골프장으로 퍼블릭을 받기 시작했다. 성공한 은행가이자 크리켓 선수였던 William Herbert Fowler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영국에서 여러 명문 골프장들을 설계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는 LA 컨트리클럽 남코스, 매사추세츠주에서도 그 유명한 Eastward Ho! 등을 만들었고, 특히 페블비치를 리노베이션했기 때문에 현재의 Pebble Beach Golf Links의 모습은 그가 손댄 그대로로 남아있다.
다른 한 명의 설계자인 Tom Simpson도 그에 못지않은 유명인사로 영국과 프랑스 등등 유럽 전역에 최고의 코스를 수십군데 건설한 사람이다. 둘은 결국 Folwer & Simpson이라는 회사를 차려서 말년까지 같이 일했는데 아무튼 20세기 초반에 영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두 설계자가 합심하여 리노베이션을 한 코스라고 할 수 있겠다. 설계자는 그렇다지만 실제로 코스의 건설에는 알카트라즈 감옥의 죄수들을 동원했다고 한다. 군대가 바다에서 쳐들어오는 적에 대비해서 조성한 지역이니 공원으로 들어가면서 보니까 금문교와 샌프란시스코 만이 내려다보이는 최고의 입지다 (아, 그런데 골프장에서는 금문교 그딴 거는 전혀 보이지 않음). 공항에서 차를 렌트하고 나왔더니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이거 큰일이네 생각하며 샌프란시스코 시내로 들어왔더니 좀 잦아드는 것 같아서 골프장을 찾아갔다.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프로샵으로 가니 다행히 문을 닫지는 않았는데 non-resident 그린피가 $110이다. 가만 보니까 샌프란시스코 주민임을 굳이 확인하는 것도 아닌데 괜히 겁에 질린 나는 그 가격을 다 지불한다. 주민 그린피는 $52이니까 꽤 괜찮은데 카트를 타려면 따로 $15을 내야한대서 나는 백을 짊어지고 걷기로 했다.
1번 홀에 도달하여 둘러보니 이 빗속에 골프친다고 나온 사람은 나 혼자인 모양이다. 비는 거의 그쳤는데 페어웨이가 물바다여서 신발과 바지는 버리고가야겠구나 싶다. 오전에는 비가 많이 왔던 모양인데 진창길을 묵묵히 걷다보니 예전에 보스턴에서 춥고 비오는 와중에 혼자 열심히 공을 치던 생각이 났다. 공도 생각보다 잘 맞는다. 러프에서는 오전에 사람들이 잃어버리고 갔는지 온통 공밭이다. 나는 골프백에 공 서너개만 넣어가지고 나왔는데 떨어져있는 공들을 줍다보니 금방 가방이 무거워졌다.
걷기로 했지만 곧 후회했다. 여기는 미국의 군인들이 골프치던 곳인 것이다. 가파르게 올라가면 내려오는 홀도 있어야 하는데 파 3 홀들만 아래로 치지 그외에는 무조건 오르막이다. 페어웨이는 평탄한 곳이 없어서 화이트티에서도 무지 길게 느껴지고 어렵다. 레슨 비디오에서나 나오는 다양한 라이를 첫 홀에서부터 모두 경험할 수 있는 코스다. 몇층을 단숨에 걸어올라간 느낌으로 헐떡이며 그린에 도달하면 도대체 어느쪽일까 읽기 어려운 까다로운 모습이다. 차츰 비가 그치고, 후반에는 해가 나타났지만 젖은 몸에 가방은 무겁고 고지는 저 산꼭대기에 있다...ㅠㅠ 벙커에 다행히 거의 들어가지 않았으나 어차피 워터해저드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공을 꺼내서 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린을 노리는 샷이 상당히 잘 맞아준 것이 오늘의 즐거움이다. 파 5 홀이 (잘치는 사람들 얘기이긴 하지만) 버디홀이라 불리는 이유는 그린을 숏아이언이나 웨지로 노려볼 수 있기 때문인데 티샷이나 세컨샷이 제대로 맞아주지 않으면 그냥 보기나 더블보기다. 그래도 파 4 홀에서 160 야드로 그린을 공략하는 것보다는 파 5에서 9번이나 피칭웨지로 공을 그린에 올리기가 더 쉽다. 아무튼 페어웨이에서도 그린까지는 까마득한 오르막을 아이언으로 잘라가며 올라가야 한다. 물결치는 그린에서는 쓰리펏이 기본이다. 내 베스트 스코어는 17번 홀에서의 버디였는데 거리는 짧아보여도 심하게 우측으로 휘는 도그렉 페어웨이에 심한 모르막이라 훅이 나버린 내 티샷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이 버디 하나만으로도 비싼 그린피의 값어치는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은 어렵고 경치도 좋은 골프장인데 거기에 덧붙는 찬란한 역사는 사실 나같은 이방인에게는 비싼 그린피의 이유가 되지 못한다. 주민들 요금의 수준이라면 좋은 곳이겠지만 나는 이번 한번의 방문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국립공원 안에서 치는 골프가 누군가에게는 큰 의미일 수 있겠는데 나는 차라리 좀 외곽으로 나가볼 걸 그랬나 싶었다. 그래도 샌프란시스코에 방문했으면 한번은 가봐야할 골프장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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