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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비가 엄청나게 내렸는데 저녁부터 그친다는 예보가 있어서 골프를 칠까 했(었)다. 아침이 되어 화창한 날씨를 확인하고는 숙소에서 가까운 골프장부터 몇군데를 가보았는데 다들 폭우에 손상되에 문을 닫았다는 말만 듣는다. 이거, 큰일이네 하면서 다음으로 들른 골프장이 오클랜드 아랫쪽 바닷가에 위치한 Monarch Bay 골프장이다. 여기도 몇년전에 한번 가보았던 곳인데 근처의 Metropolitan Golf Links와 비교해서 크게 감흥이 없었으나 가격이 살짝 비쌌어서 다시 올 일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저 문을 열어준 것으로 감사할 일이다. 오클랜드 공항 근처의 바닷가에 조성된 링크스 스타일의 코스라서 비로 인한 손상은 별로 없는 모양이다. 예전에 30불 정도를 줬던 기억이 나고, 급히 켜본 Golfnow 앱에서는 52불이라고 되어있었으나 프로샵에서는 카트까지 67불을 달라고 한다. 이제는 뭐, 그러려니 하고 그냥 신용카드를 내밀었다.
이 골프장에는 (내가 플레이한) Tony Lema 코스라고 John Harbottle 3세가 설계한 18홀 외에 마리나 골프코스라는 9홀도 딸려있어서 주변에 산다면 연습삼아 자주 올만한 곳이겠다. John Harbottle 3세는 Pete Dye 밑에서 설계를 배우다가 독립해서는 캘리포니아 곳곳에 여러 코스를 디자인했고, Los Angeles 컨트리클럽의 북코스를 리노베이션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프로샵에서 계산하면서 보니까 손님의 반이상이 한국인이고, 흑인들도 많이 온다. 오클랜드 근처라서일까 미국 골프장에서 흑인들을 이렇게나 많이 보는 것도 오랜만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아무리 후진 동네에 있는 골프장에 가더라도 흑인이 골프치는 모습은 드물게 보았었는데 아무래도 근육질 남성에게는 맞지 않는 스포츠가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하던 차였다.
비는 그쳤어도 바닷바람이 장난아니게 부는 상황에서 1번 홀로 갔더니 마침 아무도 없어서 혼자서 친다. 시작하는 홀은 주차장에서 본 것과는 달리 양쪽으로 나무가 주르르 서있는 전형적인 미국식 골프장의 인상이었지만 홀을 거듭할수록 링크스라는 이름에 걸맞는 풍경이 펼쳐진다. 게다가 여기에는 (고양이도 오리도 아니고) 여우가 산다. 한두마리가 아니라서 꽤나 자주 마주치는데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감자튀김이라도 주면 좋다고 받아먹는다. 골프장의 레이아웃은 언덕이라고는 거의 없이 평평하고, 티박스에서 그린까지 잘 보이지만 페어웨이를 놓치면 상당히 곤란해진다. 그래도 좁아터지고 비비 꼬아놓은 스타일은 아니어서 공을 잃어버릴 일은 거의 없었다. 스코어카드에는 전장이 6천 야드 정도라고 나와있어도 파 4 홀들이 360에서 400야드 정도로 길었다. 18홀 내내 공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 것은 추위와 바닷바람 탓이겠다.
공항이 지척이긴 하지만 간간히 비행기가 오르고 내리는 소음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코스에는 그러나 사람들이 많았고, 특히 한국사람들 천지였다. 특히 내 앞에는 교민들인지 서로 회장님, 사장님 호칭하는 한국인들이 9명이나! 두 팀이 되었다가 한 팀이 되었다가 하면서 공을 치는데 술을 마셔서인지 엄청 큰 소리로 떠들면서 도무지 앞으로 전진할 생각을 하지 않아서 저런 이들과 같은 생김새에 같은 말을 쓴다는 것이 창피할 지경이었다. 덕택에 간신히 일몰시각에 18번 홀을 마치게 되었는데 하마터면 다 치지도 못할 뻔 했다. 후반의 경치라도 좋았기에 망정이지 느려터진데다가 그린에 7-8명씩이 한꺼번에 올라가서 떠드는 모습을 계속 봐야했으니 카트에 앉아서 저멀리 그린과 그 너머에 바다를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는데 다행히 경치는 좋아서 짜증도 사라지고 천상과 지상의 경계, 그 어디쯤에 와있는 기분에 사로잡히고 만다. 오히려 문제는 바람이었는데 여기가 바다를 끼고 있으니 진정한 링크스 코스의 요소는 다 갖춘 셈이다. 특히 후반으로 갈수록 날은 쌀쌀해지고 바람은 거세져서 마치 브리티시 오픈에 출전한 기분? 최고의 경험은 5시가 넘어가면서 서쪽의 바다로 해가 지는 광경이었다. 15번부터 17번은 좌측에 바다를 끼고 친다. 작년에 Half Moon Bay에서도 태평양의 낙조를 보며 감동했었지만 샌프란시스코 베이가 붉게 물들어가는 모습은 아마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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