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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미국에 도착하는 첫 날의 코스는 (어차피 시차적응과 찌뿌드한 몸풀기가 목적이므로) 공항에서 가깝고 저렴한 곳으로 정하기 마련이다. 이번에 탄 대한항공 KE023 편은 새로 나온 747-8i 기종이라는데 프레스티지석이 좀 편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장거리 비행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같았다. 내릴 즈음에야 눈이 마구 감기려는 것을 애써 진정시키며 입국수속에 렌트카 빌리는 거며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골프장으로 가야한다. 샌프란스코 만의 양쪽 사이드에는 오후 그린피가 $30 정도인 코스 몇몇이 있는데 그냥 찍는 식으로 부킹한 곳이 바로 여기 Monarchy Bay 골프클럽이다. 바로 옆의 Metropolitan Golf Links와 비교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거기도 가격이 워낙 저렴하면서 나쁘지 않았었는데 여기도 비슷한 기대를 품게되는 코스다. 렌트카를 찾고 나와서는 근방의 인앤아웃에서 버거를 사서 먹고도 20분만에 도착했으니 위치는 최고다.
그런데 실은 나는 오클랜드 공항 근처라 평평한 동네 퍼블릭이고, 가끔 비행기 시간을 때우려는 사람들이나 한번씩 찾는 그런 골프장을 예상했는데 막상 가보니 샌프란시스코 베이와 (방금 지나온) San Mateo 다리가 장관인 아름다운 코스였다. 게다가 오후 그린피 $32에는 카트는 물론이고 점심식사와 음료까지 포함이라니 (햄버거를 먹고온 우리는 땅을 칠 일이었지만) 사람이 바글바글할만한 곳이다. Lema 코스가 우리가 부킹한 18홀 코스이고, 따로 9홀 executive 코스도 딸려있는 나름 대단위 골프장인데 게다가 설계자는 나름 유명한 John Harbottle 3세라고 하니 나는 작년에 그가 만든 Cinnabar Hills에서도 좋은 인상을 받았었다. 그는 Stevinson Ranch나 씨애틀 근방의 유명한 퍼블릭인 Gold Mountain 등을 디자인했고, Los Angeles 컨트리클럽의 북코스를 리노베이션했다. Pete Dye 디자인에서 커리어를 시작해서는 주로 미국 서부지역에서 활동했지만 링크스 코스를 특히 좋아했다고 한다.
아무튼 몸은 피곤했으나 마음만은 해방감에 들뜬 우리는 프로샵에서 그린피를 계산하고는 바로 1번 홀부터 시작이다. 주차장에서 본 것과는 달리 양쪽으로 나무가 주르르 서있는 전형적인 미국식 골프장의 인상이었지만 홀을 거듭할수록 링크스라는 이름에 걸맞는 풍경이 펼쳐진다. 게다가 여기에는 (고양이도 오리도 아니고) 여우가 산다. 한두마리가 아니라서 꽤나 자주 마주치는데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감자튀김이라도 주면 좋다고 받아먹는다. 골프장의 레이아웃은 언덕이라고는 거의 없이 평평하고, 티박스에서 그린까지 잘 보이지만 페어웨이를 놓치면 상당히 곤란해진다. 그래도 좁아터지고 비비 꼬아놓은 스타일은 아니어서 공을 잃어버릴 일은 거의 없었다. 공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 것은 오랜 비행으로 피곤한 탓으로 하자.
공항이 지척이긴 하지만 간간히 비행기가 오르고 내리는 소음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코스에는 그러나 사람들이 많았고, 특히 한국사람들 천지였다. 특히 우리 앞에는 교민들인지 서로 회장님, 사장님 호칭하는 한국인들이 9명이나! 두 팀으로 공을 치는데 술을 마시는지 엄청 큰 소리로 떠들면서 도무지 앞으로 전진할 생각을 하지 않아서 저런 이들과 같은 생김새에 같은 말을 쓴다는 것이 창피할 지경이었다. 덕택에 간신히 일몰시각에 18번 홀을 마치게 되었는데 하마터면 다 치지도 못할 뻔 했다. 후반의 경치라도 좋았기에 망정이지 느려터진데다가 그린에 7-8명씩이 한꺼번에 올라가서 떠드는 모습을 계속 봐야했으니 카트에 앉아서 저멀리 그린과 그 너머에 바다를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노라면 짜증도 사라지고 천상과 지상의 경계, 그 어디쯤에 와있는 기분에 사로잡히고 만다.
오히려 문제는 바람이었는데 여기가 바다를 끼고 있으니 진정한 링크스 코스의 요소는 다 갖춘 셈이다. 특히 후반으로 갈수록 날은 쌀쌀해지고 바람은 거세져서 마치 브리티시 오픈에 출전한 기분? 최고의 경험은 5시가 넘어가면서 서쪽의 바다로 해가 지는 광경이었다. 작년에 Half Moon Bay에서도 태평양의 낙조를 보며 감동했었지만 샌프란시스코 베이가 붉게 물들어가는 모습은 아마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숙소로 가는 길목에는 버클리 부근에 수많은 한식집들이 있어서 어디를 가야하나 행복한 고민을 했는데 더블린의 '오가네'에서 저녁을 먹을 생각이었으나 부실한 구글맵 덕택에 바로 길 건너에 두고도 찾지 못해서 대충 다른 식당에서 때웠다. 확실히 한국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동네라 한식당이 많기도 하다. 기분좋게 피곤한 상태라 뭐는 맛이 없겠냐마는 바로 어제도 한국에서 한식으로 저녁을 먹었고, 기대식으로도 비빔밥을 먹은 우리는 미국 한식집에서도 잘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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