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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름이 지금은 아난티코드 (Ananti Chord) 골프클럽인가 그럴 것인데 아난티 서울이라고 불리던 시기에도 고급스러움의 대명사처럼 인식되긴 하지만 이 골프장의 팔자도 기구한 편이다. 원래 유명산 컨트리클럽 18홀로 건설되던 골프장이 회사의 부도로 중간에 매각되면서 리츠칼튼 cc가 되었고, 원래의 설계자는 서우현 씨였다고 한다. 리츠칼튼은 원래의 18홀에다가 9홀을 추가하여 총 27홀로 만들었는데 당시를 기억하는 지인의 말로는 좁은 공간에다가 억지로 홀들을 구겨넣어 황당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이후 에머슨퍼시픽으로 주인이 바뀌면서 성치환 씨의 재설계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는데 기존의 코스를 완전히 허물고 새롭게 만들었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산을 밀어버렸거나 땅이 넓어진 것이 아니니까 이런 사연을 품은 코스가 온전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도 아난티클럽 서울이라고 이름붙이고는 드라마 촬영에도 등장하는 식으로 (골프장이 아니라 클럽하우스의) 명성을 높여왔다.
서울에서의 접근성과 고급스러움을 빼고 골프장 자체만으로 얘기하자면 최고의 코스는 아니다. 나는, 골프장이라는 곳은 코스로 승부해야지 삐까번쩍 클럽하우스나 서비스로 코스의 부족함을 때워보려는 수작은 매우 싫어했지만 어째 아난티 서울에서의 경험은 달랐다. 갈 때마다 그 독특한 고급스러움에 끌려서 다시 가보고픈 곳이었는데 인기가 높아갈수록 문이 좁아져서 최근에는 기회가 쉽게 나지 않았다 (회원도 부킹이 거의 안된다고 했다). 올해도 겨울에 한번 갔었고, 초록이 올라오는 5월에 누가 부킹에 성공했다며 가자고 했는데 어두컴컴 뭔가 고상한 듯한 (누구는 나이트클럽 분위기라고도 했지만) 클럽하우스는 이제 더 삐까번쩍한 골프장들이 많이 생겨서인지 기억에 비해서 평범했고, 이제 여름이 시작되어 앙상하던 주변 산세도 푸르게 변해가고 있었다. 아무튼 오기 어려운 곳이니까 부푼 마음으로 우리는 이날 잣나무/느티나무 코스를 돌았고, 남은 9홀의 이름은 자작나무 코스. 예전의 기억으로는 (젤코바, 버치, 넛파인 같은) 영어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어쨌거나 코스에 따른 차이는 크지 않다.
첫 홀부터 좁아보이는 숲 사이로 저멀리 페어웨이가 살짝 보인다. 양쪽으로는 잣나무인지 뭔지 길쭉한 나무들을 많이 심어놓아서 아름답기는 하다. 이런 코스에서는 멀리 치려고 힘줄 필요도 없이 그저 정해진 거리를 똑바로 치는 것이 중요하다. 다행히 티샷은 생각한대로 갔고, 어쩐 일인지 아이언도 공이 잘 떠줘서 무사히 온그린. 맨날 이러면 골프가 참 쉽겠구나 생각하며 파를 하는 사이에 이런 식의 타겟골프에 익숙하지 않은 동반자들은 숲으로 언덕 아래로 공을 찾아 헤매고 있다. 재미있기도 하고 동시에 당황스럽기도 한 코스다. 시각적으로 부담스러울 뿐 길어서 힘든 홀은 없다. 티샷을 정해진 자리로만 보냈다면 기껏 아이언이나 웨지로 그린을 공략할 수 있다. 멀리서 바라보는 그린은 그저 평평하고 만만해보였지만 막상 가보면 엄청 커다랗고 울퉁불퉁해서 퍼팅이 어려웠다. 누구는 여기를 여성을 위한 골프장이라고 얘기하던데 레이디티가 아니더라도 아무튼 짧아서 똑바로 치면 되는 곳이다. 물론 두번이나 세번만에 그린으로 올라갈 수 있었느냐는 또다른 얘기다. 코스의 관리상태도 별로 흠잡을 곳이 없다. 어느새 러프는 약간 누렇게 변했으나 맨땅이 드러난 곳은 없었고, 언젠가는 자작나무 코스도 플레이할 기회가 생기기 바란다. 벙커가 많을 수 없는 레이아웃인데 온그린을 방해한다기보다는 공을 지켜주기 위해 만들어놓았다는 느낌의 배치다. 내 개인적으로는 칠수록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드는 코스 설계만 아니라면 괜찮은 골프장이다. 그러나 아마 이런 주관적인 평가는 아난티 코드에 처음 방문했던, 몇년전의 첫인상에서 이미 완성된 것이 아니겠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