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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너머를 자주 가본 것은 아니지만 그쪽에 좋은 골프장들이 몇몇 있다는 얘기는 늘 듣곤 했었다. 그중에서도 으뜸이 강릉에 있는 샌드파인 골프클럽이라고들 했는데 근방의 메이플비치는 가보았지만 샌드파인은 이번이 처음이다. 회원제라고는 해도 몇년전까지는 부킹이 가능했어도 굳이 강릉까지? 그랬다가 요즘에는 아주 어려워진 모양이다. 이번에 일박이일 회의가 있어서 강릉을 가면서 혹시나 여기를 가볼 길이 있을까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도무지 길이 없어서 포기상태였는데 임박해서 누군가가 한자리 비는데 같이 치실래요 하길래 냉큼 끼어서 친다. 내가 돈이나 권력은 쌓지 못했어도 주변 사람들에게 밉보이지는 않게 살아왔구나 그런 흡족한 생각을 혼자 하면서 새벽의 고속도로를 달렸다. 한편으로는 내가 오전 8시의 티타임을 맞추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서울에서 강릉까지 운전하다니, 골프가 대체 뭐길래 이렇게까지 하냐 그런 생각도 들었다. 업무의 고달픔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서 선택한 취미가 이제는 골프의 피로를 잠시나마 달래기 위해 일을 한다는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샌드파인은 원래 김명길 씨에 의해서 경포 골프클럽으로 만들어지다가 주인이 바뀌면서 Ronald Fream에게 다시 설계를 맡겨서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고 한다. 대관령을 등지고 동해바다를 바라보는 입지에, 이름처럼 소나무가 빽빽한 숲에 조성된 18홀이라 경치는 당연히 최고이며, 도전적이면서 재미있는 코스라고들 했다. 도립공원인가 국립공원인가 그랬던 경포대의 낙락장송 숲을 훼손하지 않게 길을 내었고, 로날드프림 특유의 난해해보이는 디자인을 더했으니 별로이기 힘들 골프장이다. 가격이 생각보다 비쌌어도 코로나 시국이기도 했고, 기대에 찬 라운드였기에 아깝지 않았다. 5월 중순은 조선잔디가 제대로 성장을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해서 뭐하나 불평할 여지가 없었던 우리는 살짝 흥분한 상태로 1번 홀을 시작했다. 여기는 첫 홀부터 갈대밭과 양쪽의 숲 사이로 길게 뻗은 페어웨이가 근사해서 티샷에 힘이 들어간다.
역시나 생각대로 어렵긴 했는데 소나무숲 사이로 페어웨이를 만들어서 좁게 느껴졌고, 그린은 빠르면서 앞뒤로 경사가 심해서 더 힘둘었다. 경치로 유명한 골프장이니만큼 명불허전, 기억에 남는 홀들이 많았다. 보통 시그너처 홀이라면 잠시 티박스에 멈춰서 앞의 팀이 그린플레이를 마치길 기다리며 경치를 감상하는 파 3 홀들인 경우가 많은데 전반에서는 8번이 그렇다. 내리막에 비교적 짧은데 그린 앞에는 개울이, 뒷편에는 벙커가 있으면서 V 형태로 생긴 그린이었고, 티박스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엄청나다. 후반에서도 아일랜드 그린 파 3인 12번이 아름다운데 물의 두려움만 극복하면 길지 않아서 파가 쉽게 나온다. 원래 공략의 재미는 파 5 홀들에서 나오는 법인데 후반의 13번은 티샷 이후에 페어웨이를 가로지르는 개울을 넘겨 세컨샷을 하고, 거기서 다시 긴 벙커를 넘어 그린으로 향하는 식이라 어렵사리 파를 하고는 이거 어쩐지 익숙한데? 싶었다. 보이는 풍광은 전혀 다르지만 스카이 72 오션코스에서 13번 롱홀 느낌이 났고, 아무튼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