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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부터 꽤나 돈을 들여서 만든 코스가 퍼블릭으로 개장하는 사례가 잦은데 여기도 가평 마이다스의 소유주인 대교가 이천의 평야지대에 만든 소위 "명품 프리미엄" 퍼블릭 골프장이다. 뭐, 누구라도 자기 골프장이 최고라고 외치고 싶겠지만 지난 달에 다녀온 페럼클럽도 그랬고, 여기도 돈들인 보람이 있는 곳이다. 베어크리크 크리크 코스의 리노베이션으로 유명한 노준택 씨가 설계해서 2013년 가을에 이천 마이다스라는 이름으로 개장했는데 올림푸스, 타이탄, 마이다스 코스로 이루어진 27홀 골프장이고, 얼마전에 마이다스 레이크 이천으로 개명했다 (가평은 마이다스 밸리라는 원래 이름으로 돌아감). 나는 몇년전에 올림푸스/타이탄 코스를 돌았었고 (골프다이제스트 베스트코스에 올라있기로는 타이탄/올림푸스인데 이 순서로 도는 경우는 없다), 이번에는 타이탄/마이다스로 예약했는데 화창한 5월의 일요일 오전인데도 20만원 후반대의 그린피는 이쪽 동네 치고는 나쁘지 않은 수준이고, 코스의 퀄리티까지 고려하면 싼 가격이라고 생각한다. 어디쯤인가, 집에서 얼마나 걸릴까 지도에서 찾다보니 여기도 온 사방이 다 골프장이다. 예로부터 경기도의 여주, 이천 근방은 평야가 많아 농사가 흥했다는데 그 자리를 이제는 골프장이 채우는 모양이다. 학생때 친했던 형들이 졸업후에 이쪽에 개업을 한 덕에 여러번 찾아갔던 기억이 있는데 당시에는 골프장 앞을 지나가도 이게 뭐하는 곳인지 몰랐던 시절이라 잘 몰랐는데 아무튼 그저 한적한 시골의 마을로 기억하는데 IMF를 거치면서 전통이나 역사 따위는 아랑곳없이 그저 돈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한다는 세상의 변화 덕택에 이 모양이 되었을 것 같다. 단순하게 생각하자면 골프치는 사람에게는 그래도 나쁘지는 않은 듯하다.
이제 경기도 일대의 (여기처럼 조선잔디 페어웨이라도) 골프장들도 파릇파릇 잔디가 올라오는 시절이 되었다. 오전 티타임이 힘들기는 해도 산너머로 해가 떠오르며 잔디의 이슬이 서서히 말라가는 장관을 바라보며 하는 티샷의 기억도 좋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동네가 있었나 싶어지게 평탄한 지대에다가 만들어놓았는데 수많은 벙커와 해저드, 빠른 그린으로 핸디캡을 조절하는 식이라 개인적으로는 맘에 들었다. 매 홀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이름을 붙여놓았는데 내 지식이 일천하여 그런지는 몰라도 홀들의 이름과 레이아웃이 연결되지는 않는다.
전반적인 인상은 요즘에 외국 설계자를 불러와서 만든, 소위 돈꽤나 들인 골프장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골프장이 다 그게 그거겠지 기껏해야 산이냐 평지냐 차이 아니겠어? 하던 내 짧은 경험은 그저 똑바로 멀리 치는 것이 골프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변해가고 있다. 저 벙커가, 해저드가 그저 멋있으라고 저기다가 만들어놓은 게 아니라는 것도 (그렇다고 치는 사람 열받으라고 그러는 것도 아니다) 이제는 알겠다. 고민한 후에 도전을 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게 만드는 코스가 좋은 골프장인데 아직은 그저 그린까지 머나먼 길을 가는 것만이 목표인 실력인 것이 많이 아쉽다. 예를 들자면 여기 마이다스 레이크 이천의 타이탄 1번 홀이 그렇다. 모처럼만에 쭉쭉 날아가준 티샷이 페어웨이를 살짝 벗어난 러프에 내려앉았고, 애써 어깨의 긴장을 달래가며 친 세컨샷이 놀라운 타감과 궤도로 그린을 향해 날아갔으나 그린에 맞고는 뒷쪽 해저드로 들어가버린다. 벌타를 받고 친 어프로치가 잘 들어갔다 했더니 빠른 그린을 타고 굴러내려가 핀에서 30미터는 족히 되어보이는 그린 끄트머리에 멈췄다. 그리고 쓰리펏. 그린에 공을 올리기 어렵게 잘 방어하고 있고, 그린에서도 신중해야 한다. 그래도 페어웨이에서 공이 잘 맞았다는 것에 기분이 나쁘지 않았으니 내 실력은 그정도일 뿐이다.
이후 평평하고 밋밋한 홀들이 이어지다가 타이탄의 마지막 세 홀에 오면 다시 재미가 붙는다. 긴 오르막인 7번을 지나 비교적 만만해보이는 숏홀 8번이 나오고, 아일랜드 그린으로 어프로치하는 9번까지 스코어에 상관없이 멋진 홀들이었다. 후반에 플레이한 마이다스 코스에서는 호수를 바라보며 지나가야하는 5번과 7번이 시각적으로나 공치는 재미로나 근사했다. 결론적으로 좋은 골프장이었다. 입이 쩍 벌어지는 경치나 두고두고 생각날 레이아웃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전체를 놓고 보면 즐겁고 재미있으면서도 난이도를 잘 조절한 코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이날 보기플레이어에 걸맞는 플레이를 한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미생의 장그래가 바둑을 포기하면서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하지 않은 것으로 하겠다"고 말한다. 나도 골프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 잘 못치는 거다.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지금의 내 실력이 참으로 서글퍼진다. 예체능은 노력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타고난 재능을 후천적인 노력으로 뛰어넘을 수 없다는 진실을 골프에서 나는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