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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미국행이지만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에는 캘리포니아 쪽으로도 매년 두세번씩 오곤 했었다. 세상이 코로나 전후로 크게 바뀌었지만 특히 여행업계나 골프는 (좋은 쪽으로든 나빠진 쪽으로든) 엄청난 변화가 있었는데 그나마 조금씩이라도 정상을 찾아가는 모양이지만 결코 이전의 자유롭고 저렴한 시절은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이번에 모레노벨리 지역으로 숙소를 잡은 이유는 몇년전의 경험으로 LA 동쪽에 한두시간만 가면 아직 저렴하고 좋은 골프장들이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코로나 격리가 마악 끝난 당시에도 원래의 목적지는 팜스프링스 지역이었으나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올라버린 그린피에 놀라서 가는 도중에 여기에 멈췄었다. 모레노밸리는 LA에서 팜스프링스로 가는 중간쯤에 위치한 도시로, 다른 일로는 와볼 일이 없을 곳이지만 골프만 친다면 나름 괜찮다. 예전에는 미국에 와서 일출부터 일몰까지 하루에 최소 36홀, 54홀을 쳤었고, 게다가 골프장을 옮겨다니며 쳤는데 이제 나이가 먹었는지 새로운 코스를 수집하는 일에 관심이 적어졌는지 그냥 하루 18홀만 치거나 같은 골프장에서 18홀을 두번 돌기도 한다. 이 골프장은 Pete Dye가 27홀로 설계해서 Moreno Valley Ranch라는 이름으로 개장했다가 부침을 겪은 뒤 18홀 퍼블릭으로 재개장하면서 이름도 Rancho del Sol 골프클럽으로 바꾼 사연이 깃든 곳이다. 미국에서는 흔한 스토리인데, 망한 골프장을 부동산 자본이 인수해서, 코스를 축소하거나 남는 부지에 대규모 주택단지를 조성하여 분양하는 식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집을 지어 분양하기에는 좀 쌩뚱맞은 입지이긴 한데 토요일 오후에 카트포함 55불로 Dye 코스를 친다니 나쁘지 않은 가격이었다. 재개장하면서 기존의 코스를 고치거나 섞어놓은 것도 아니고, Valley와 Mountain 코스를 남겼다고 (없어진 Lake 9홀에는 지금도 주택공사가 한창임) 한다.

나는 1번 홀을 마치고는 여기가 Pete Dye 코스임을 바로 알아차렸다. 저기로 치면 되겠다 쉽게 파악되지만 여간해서는 생각대로 되지 않는 디자인이다. 적절한 위치에 자리잡고는 우리를 괴롭히는 벙커들은 가장자리에 마치 울타리를 쳐놓듯이 러프의 잔디를 솟아나게 만들어놓아서 특이했다. 물결치는 페어웨이나 커다란 그린, 철도의 목재로 보강한 연못만 봐도 누가 설계했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물을 넘어가야하는 파 3 홀이 전반 2번에서 나오기 때문에 멋지구나 정도로 생각했는데 실은 이 골프장의 진면목은 나중에 나온다. 어렵지만 재미있는 디자인에 경치도 좋았으나 전반을 돌면서는 돈값을 못한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파 4 홀들이 300 야드 남짓이어서 Pete Dye 설계라고는 해도 파와 버디가 쉽게 나오기도 했고, 잔디나 카트도로의 관리상태가 기대이하였다. 비포장 카트도로에다가 카트에는 gps도 달려있지 않아서 그린 입구까지 타고 접근할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누렇게 말라버린 페어웨이 잔디에, 그린도 느렸다.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블루티에서 플레이하기로 했는데 전반 (예전의 밸리코스)과 같은 골프장이 맞나 싶게 다른 모습이었다. 후반인 (Moreno Valley Ranch 시절에 마운틴코스로 불렸던) 10번부터는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멋진 코스가 되면서 제대로 어려워진다. 잔디의 상태도 제대로 관리되는 모양이었고, 깔끔하게 포장된 카트도로를 달렸다. 10번 홀은 똑바로 오르막인 파 4였는데 높게 솟은 그린에서 돌아보면 모레노밸리의 전경이 그대로 펼쳐진다. 이후의 홀들로 접어들면서 코스가 더 굉장해졌고, 거대한 바위들 사이로 페어웨이가 펼쳐져서 장관이었다. 저멀리 보이는 설산 (아마도 Baldy 산일 것이다)의 경치도 맑은 날이어서 뚜렷하게 보였다. 최고의 홀들이 15번과 16번이었고, 기존의 자연을 근사하게 재창조한 홀들이어서 지금껏 어디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골프였다. 15번은 돌산 사이의 페어웨이로 내리막 티샷을 치면서 시작하고, 세컨샷 지점에서부터 언덕을 향해 좌측으로 크게 꺾어지며, 다시 우측 높은 언덕에 자리잡은 그린으로 어프로치한다. 페어웨이에서 올려다보는 그린의 경치가 근사했지만 그린에서 뒤돌아보면 헉 소리가 나오게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이어지는 16번은 코스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돌산 사이로 저멀리 보이는 그린을 향해 치는 파 3 홀이다. 일종의 아일랜드 그린이어서 공을 올리지 못하면 무조건 죽는다. 멋진 뷰를 보기 위해 빽티로 올라가서 쳤는데 두 홀들에서 모두 파를 한 것은 나름 뿌듯하다. 아직도 코스 주변에 주택공사를 위해 파헤쳐진 구역이 있어서 좀 아쉬웠고, 전반 9홀의 상태가 별로였던 것도 실망스러웠지만 Rancho del Sol은 후반 (마운틴코스) 만으로도 굳이 방문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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