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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번 골프여행의 행선지가 팜스프링스였는데 막상 와서 보니까 최성수기인 10월말 그린피가 서울 근교 뺨칠 정도로 비쌌고, 그나마도 부킹이 어려웠다. 일단 나는 동반자들보다 몇일 먼저 왔기 때문에 어제는 Torrey Pines, 오늘은 LA 쪽으로 올라와서 혼자 치기로 했다. 어차피 대도시 인근이라 싸면서 괜찮은 코스는 부킹이 어려웠고, 이름부터가 뭔가 근사하게 보였던 앙헬레스 내셔널로 정했는데 토요일 오후의 18홀 비용이 백몇십불이어서 잠깐 고민했지만 작금의 골프붐을 생각하면 이정도는 감당하기로 했다. 홈페이지에서 보니까 산세가 좋은 국유림 내부에 위치한 모양으로 무조건 카트를 타야하고, 사전결제 필수라고 하니 우리나라 골프장하고 비슷하구나 생각으로 오히려 끌렸다. Angeles National 골프클럽은 Jack Nicklaus 설계의 18홀인데 인터넷에서 평을 찾아보니 어렵고 긴데다가 계곡이나 숲이 많아서 공을 많이 일어버린다고 한다. 우리나라 산악지형 골프장이랑 비슷하구나 별 걱정없이 갔다. Sunland라는 동네가 LA보다 약간 북쪽이던데 고속도로를 나와서 골프장으로 가는 길이 구불구불 산길이다.
내장객이 많지 않아보였지만 나는 공은 못치면서 말이 많은 40대 (나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형적인 미국인이다), 차분해보이는 할아버지, 그리고 얄밉게도 인사도 없이 바로 맨 뒷편의 챔피언티로 올라가는 중국인 청년과 함께 조인했다. 스코어카드에는 화이트티가 나와있었지만 실제 코스에는 빽티 (여기서는 니클라우스티라고 부르고 있다), 블루, 레드만 있어서 나를 포함한 셋은 블루티에서 쳤다. 블루티에서 파 4 홀들이 400야드 이상이었고, 좁고 휘어지는 식인 니클라우스 코스라서 정말로 공을 많이들 잃어버리게 생겼다. 나는 어차피 투온이 힘든데다가 우드류를 가져가지 않았기 때문에 보기를 거듭했는데 챔피언티 청년은 드라이버를 280야드 정도 치는 것 같았으나 좌우로 자꾸 죽는데 말도 없이 다시 공을 꺼내서 또 친다. 놀랍게도 차분한 할아버지는 멋진 스윙으로 오히려 챔피언티 중국인보다 더 멀리, 똑바로 쳤다. 페어웨이 벙커에 들어가도 투온, 분명 오비가 났겠다 싶게 옆쪽의 사막으로 공이 날아가도 반드시 찾아내서 거기서 투온을 했다. 영감님, 성함이 혹시 프레드 커플스 아니세요?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파와 버디를 교대로 (물론 보기도 가끔 하지만)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멋있었다. 덕분에 분발한 나도 (비록 저들보다 백야드는 뒷쪽에 공이 떨어졌지만) 보기의 연속에 파 몇개를 만들었다. 딱 하나, 290 야드 정도의 파 4 홀이 있었는데 40 야드 칩샷이 홀에 바로 붙어서 버디도 했다.
기억에 남는 홀들이 많았다. 특히 주변의 산세 (바로 Angeles National Forest)가 이국적이면서 근사해서 찍는 사진마다 예술이다. 특히 파 5 롱홀들이 경치로나 코스 매니지먼트에서나 압권이었는데 티박스에서 계곡을 넘겨 티샷하는 식이 많아서 나도 예전에는 이런 홀에서는 무조건 공이 죽었었지 그런 회상을 한다. 특히 경기를 마무리하는 후반의 16번에서 18번까지는 블라인드 티샷에 공이 떨어지는 위치에 따라 스코어가 완전히 달라질 멋진 홀들이었다. 티샷이 잘 갔으나 거기서부터 계곡을 다시 넘겨 200 야드를 쳐야하는 16번에서 50 야드 레이업 후에 쓰리온 원펏을 만든 것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이며, 우측으로 90도 꺾어지는 17번에서도 아이언으로 티샷한 동반자들과 내 드라이버샷이 비슷하게 날아갔지만 거기서 그린에 잘 올려서 프레드 커플스 할아버지와 함께 버디를 했던 것도 뿌듯하다. 중국인 청년은 마지막까지도 싸가지없게 굴었는데, 라운드를 마치고는 미국인 둘과 인사를 나누고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가버렸을 뿐만 아니라 카트를 반납하면서 부쉬넬을 놓고 가버렸길래 주차장으로 뛰어가서 찾아주었어도 땡큐 한마디가 없었다. 그래도 내 플레이에는 거의 지장이 없었던 것이 뿌듯했는데 원래부터 알던 사람이 아니라 별의별 사람을 만나서 함께하는 조인 플레이는 그냥 이런 식이다.
운동을 마치고, 호텔을 LAX 공항 근방으로 잡은 탓에 LA 시내를 통과하는 루트를 구글맵이 알려주었다. 금요일 저녁이라 꽤나 막히겠으나 LA 다운타운을 차를 타고서라도 구경해볼 생각으로 그냥 길을 탔는데 생각해보니 시내에는 거의 들어와본 적이 없었다. 어쩌다가 왔어도 코리아타운의 한식집에 들르는 정도였는데 위험하다고도 하고 볼 것도 없다고도 들어서 그랬고, 그러나 해질녁의 빌딩숲을 지나는 기분은 근사했다. 오히려 공항 근처의 호텔 주변이 더 위험해보여서 다음번에는 다운타운이나 코리아타운에서 몇일이라도 지내볼까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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