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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토리파인스 북코스에서의 즐거운 라운드를 마치고는 잠시 시간이 비길래 클럽하우스 곳곳을 돌아보았다. 시립 (municipal) 골프장이라 럭셔리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오랜 전통과 US 오픈 사진들로 도배해놓아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고, 기념으로 다들 사가는 모자도 선물용으로 몇개 구입했다. 앞서도 적었듯이 토리파인스라고 하면 다들 남코스가 진짜배기라고들 생각하는데 1월의 Farmers Insurance 오픈 준비로 지금은 거의 방치하는 수준으로 관리(안)한다고 들었다. 러프는 물론이고 페어웨이와 그린의 잔디를 대회 직전까지 잘 깎지 않는다고 하며, 카트가 페어웨이로 들어가지 못한다.

그정도는 이해해야지 했는데 1번 홀에 서보니 좀 기가 막히게 누런 풍광이 펼쳐진다. 바로 옆으로 푸르른 북코스 10번 홀이 보여서 더 비교가 되었는데 거기는 웃자란 러프의 잔디가 골치를 썩였으나 남코스에는 러프나 페어웨이는 물론이고 그린에도 아예 잔디가 없었다. 조인한 동반자의 말로는 한동안 남코스를 닫았다가 오늘이 처음으로 다시 연 날이라고 한다. 문닫고 뭔가를 했을텐데 대체 무엇을? 잔디를 싹 죽여버리고는 새로 까는 신기술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아예 맨땅은 아니어서 공은 쳤는데 늦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의 우리나라 코스들이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제값을 다 치른 입장에서는 좀 억울했는데, 나는 메이저 대회가 열렸던 퍼블릭 코스들, 가령 페블비치나 샌프란시스코의 TPC Harding Park, 뉴욕의 Bethpage Black 등에서 150불 이상을 지불할 용의가 분명히 있지만 대회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tv에서 보았던 비슷한 코스를 기대하지 이런 폐허인줄 알았다면 주변에 널린 수준급 골프장을 갔을 것이다.

아무튼 이번에는 샌디에고에 산다는 (그러나 영어를 거의 못하는) 중국인 아저씨들 셋과 조인했다. 길고 어렵다지만 블루티에서 플레이하자니 바짝 마른 페어웨이에 떨어진 티샷은 한없이 굴렀고, 모래밭인 그린에 떨어진 공은 바로 멈췄다.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은 홀들의 연속이었고, 다만 tv에서 보기에도 무시무시했던, 파 5 롱홀인 13번에서는 바다를 넘어가는 티샷을 해보기 위해 뒷쪽의 챔피언티박스로 올라가보았다. 거기서는 240 야드쯤 쳐야 간신히 페어웨이 끝자락에 올라가는데 놀랍게도 내 티샷이 살았던 것이 토리파인스 남코스에서 기억에 남을 경험이었다. 반면에, 역시 tv에서 인상깊게 보았던 18번은 그린 앞쪽에 작은 연못이 있고, 가파른 경사면 위에 그린이 있어서 잘 올라간 샷이라도 백스핀이 걸리면 주르륵 흘러내려가서 물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대회 마지막 날에는 18번 그린의 왼쪽 맨 앞쪽에다 핀을 꽂아놓아서 극적인 장면을 종종 연출하곤 한다.

그래서, 디자인과 경치를 제외한다면 코스의 현재 상태는 명성에 비해 아쉽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여기는 페어웨이에 키쿠유, 그린에는 포아누아 잔디를 깔아놓았기 때문에 시각적으로도, 공을 치기에도 별로였다. 뭐, 대회를 위해 그런다니까 이해는 하지만 그렇다고 비용을 깎아준 것도 아니니까 좀 억울했다. 그래도 토리파인스를 최고로 만드는 것은 역시 바다를 끼고 펼쳐지는 경치라고 하겠는데 평범했던 코스를 메이저 대회에 걸맞게 탈바꿈시키는 Rees Jones의 능력은 무작정 어렵게 만드는 식이 다가 아니라 tv에서 보는 시청자들도 우왕 엄청나다 소리가 나오게 하는 조경에서도 빛을 발하지만 Torrey Pines에서는 아니었다고 본다. 오전의 북코스에서는 후반 몇몇 홀에서만 바다가 보였지만 남코스는 바닷가에 바로 붙어있긴 하다. 비슷한 경치는 (훌륭한 입지에다가 돈을 쳐바른) Trump National 등에서도 보긴 했는데 토리파인스의 태평양은 코스에서 좀 멀어서 엄청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대신에 여기는 메이저 대회를 수차례 개최한 전통이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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