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n River, Corona, CA

나같은 A형 인간은 여행을 가는 경우에도 뭐를 볼 것인지 뭐를 먹을 것인지 미리 계획해놓지 않으면 불안하고, 사정이 생겨서 계획에 차질이라도 생기는 날에는 멘붕에 빠진다. 골프여행도 마찬가지여서 하루에 18홀 코스를 두번 도는 경우에서 사전에 적당한 티타임을 찾아서 부킹해놓고 중간의 식사를 포함해서 동선을 짜놓고 다녔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사고방식이 살짝 바뀌었는데 어디면 어떠냐, 좀 비싸도 여유있게 다니면 좋지 않겠냐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번처럼 특별한 계획없이 무작정 미국에 왔더니 골프의 열기가 대단해서 웬만한 골프장들은 오전에 거의 풀부킹인 상황이라 아무 골프장이라도 받아만주면 간다 식이 되었다.

 

Green River 골프클럽도 그렇게 가게 되었는데 유치한 이름과 달리 Cary Bickler와 Casey O'Callaghan의 설계로 1960년에 개장한, 제대로 만든 36홀 골프장이었다. 골프장들이 어려움을 겪던 시절에, 폐업과 매각을 거듭한 끝에 지금의 18홀만 남기게 되었다는, 종종 들리는 스토리지만 여기는 좀 특이점이 있다. 매년 홍수로 범람하는 Santa Ana 강에 인접한 탓에 근처 3개 카운티의 공동 소유로 관리되고 있고, 지금의 클럽하우스는 San Bernardino 카운티에, 일부 홀들은 오렌지카운티에, 그리고 나머지는 리버사이드 카운티에 속한다. 강의 윗쪽에 댐이 있어서, 만약 범람하게 되면 이 골프장이 홍수의 완충지대 역할은 한다고 하며,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는) 오렌지 카운티가 골프장 비용의 대부분을 부담하였기 때문에 코스에서 얻어지는 수익도 그쪽으로 간다고 한다. 사연이야 어쨌든 그나마 지금처럼이라도 코스가 유지되는 것도 다행이었다.

몇일간 가본 중에 페어웨이와 그린의 잔디상태가 가장 좋았다. 레이아웃은 생각보다 단순해서 (예전에 시그너처로 불렸던 홀들이 18홀로 축소되면서 사라졌다고 함), 양쪽의 나무들을 경계로 앞으로 갔다가 뒤로 돌아오는 식이었다. 1번 홀에서 기다리면서 보니까 다들 아는 사이처럼 보이는 이들이 우리의 앞과 뒤에 줄줄히 서있는데 그래도 막상 시작하고 보면 다른 팀과 거의 만날 일이 없게 스무스한 진행이었다. 주택가나 도로에서 멀리 떨어져있어서 오직 새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코스라 더 좋았는데 3번에서는 옆으로 철도가 지나가서 가끔 기차소리가 들린다. 비교적 넓은 페어웨이에 공이 나갈 상황도 별로 생기지 않아서 즐겁게 치면서 스코어도 좋다. 전반에서는 페어웨이 우측의 호수를 조심해야하는 짧은 파 5였던 7번이 인상적이었는데 쓰리온으로 돌아가자면 그린쪽으로 좁아지는 페어웨이로 레이업을 하게되고, 장타자라면 호수를 넘겨 투온을 노려볼텐데 이글퍼트보다는 대부분 해저드 드롭을 해야할 것이다.

후반으로 넘어가면 갑자기 어려워진다. 10번은 원래 파 5였다고 하며, 지금은 460 야드의, 그러나 똑바른 파 4 홀이 되었다. 최고의 홀은 우측 도그렉인 14번이라고 본다. 숲을 넘겨서 좁아보이는 페어웨이에 공을 보내야하는데 우측으로 가면 그린이 보이지 않고, 좌측으로 티샷을 보냈으면 만만치 않은 거리를 남긴다. 그린 앞에는 (Green River) 강이 지나가므로 레이업이 최선으로 보였다. 주변 골프장들에 비하면 저렴한 가격에 붐비지도 않으니까 즐겁게 쳤는데 지금처럼 40불 정도라면 나중에라도 다시 가볼 의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