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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으로는 캘리포니아 코로나/리버사이드 지역에서 가장 가성비가 좋은 퍼블릭이 여기라고 보는데 (아무리 좋아도) 한번 가본 곳을 다시 가지 않는다는 주의지만 막상 오전의 라운드가 끝나고 급하게 찾다보니 대안이 없었다. 고속도로를 나와서 진입로를 따라 올라가면서 보면 양쪽으로 고급스런 콘도 단지가 끝없이 늘어서있고, 골프장으로 들어서면 근사한 클럽하우스에 프로샵도 깔끔하다. 오전의 Indian Hills 보다도 저렴한 금액인 40불에 부킹했는데 코로나 이전에도 이정도 가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말에는 100불이 넘어가는 좋은 골프장이다). 우리나라에도 이스트밸리나 파인비치를 만들었던 Gary Roger Baird가 설계한 18홀인데 멀리서 바라보는 코스의 잔디가 예전보다는 좀 죽어있어보여서 살짝 실망하며 시작한다. 우리의 앞에는 한국인 아주머니들이 한 팀, 우리가 시작하려는 찰라에 한국인 아저씨 한 분이 다가와서는 조인했다. 아무리 한국사람이 많이 사는 지역이라도 특히 선호되는 골프장들이 있는데 그런 곳을 가면 대개 후회가 없다.
Gary Roger Baird가 참여한 또다른 우리나라 골프장으로 포천의 아도니스가 있는데 이 분이 만든 코스들은 대개 아름다우면서도 몇몇 홀에서 갑자기 재미있는 공략이 필요하곤 했다. 그 절정이 Eagle Glen이라고 보는데 18개의 홀들이 어느 하나도 비슷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억지스런 면이 없다. 저멀리 좁은 페어웨이 끝자락과 벙커만 보이는 1번 홀에서부터 막상 티샷을 쳐보면 드넓은 잔디밭이 펼쳐져있고, 오히려 세컨샷이나 그린으로의 어프로치가 어렵게 느껴진다. 전반의 홀들은 계곡을 따라서 펼쳐지며, 티박스에서 대체 홀이 어떻게 생겼나 고민스러워도 공을 많이 잃어버리지는 않았다. 높은 티박스에서 코스를 조망하는 3번과 4번, 그리고 역시 계곡 깊숙히 자리잡아서 아름다왔던 파 3인 8번이 전반에서 근사했던 홀들이다. 원웨이 설계라서 바로 이어지는 10번도 높은 티박스에서 내려가는 파 3였으니 이 골프장에서는 숏홀들이 다 좋았는데 우리나라 Gary Roger Baird 코스에서도 비슷한 평가를 받으니까 파 3를 시그너처로 만드는, 설계자의 취향이라고 본다.
후반은 좀 평평한 분지에 만들어져서 링크스 코스같은 분위기로 바뀐다. 우리가 12번 홀에 도달할 무렵에는 이미 해가 기울고 있어서 황량한 느낌이 더했고, 16번부터는 다시 높은 산봉우리로 올라가는 구조. Eagle Glen에서 가장 멋있었던 홀들은 개인적으로 17번과 18번이었다. 17번은 역시 높은 티박스에서 저 아래의 자그마한 그린으로 내려가는 파 3 홀이었으며, 대망의 18번은 짧지만 개울을 두번 건너야 안전하게 그린으로 도달하는 파 5였다. 이런 식의 디자인은 누가 먼저 고안해냈는지 따질 것도 없이 요새는 흔하게 접하지만 장타자라면 위험을 무릅쓰고 해저드를 가로지를 욕심이 나게 만드는 좋은 설계라고 본다.
사실, 가장 인상깊었던 홀은 (치던 당시에는 초반이어서 뭐가 뭔지도 모르게 지나가버렸으나) 2번이라고 생각한다. 화이트티에서라면 그린까지의 직선거리가 260 야드 남짓한 짧은 파 4 홀이지만 티박스에서는 대체 어디로 쳐야하는지, 그린은 고사하고 페어웨이마저도 언덕에 가려 거의 보이지 않는다. 몇차례 와본 입장에서 최고의 공략은 아이언으로 왼쪽 언덕너머에 있는 (상당히 넓은) 페어웨이로 레이업하고, 거기에서 우측으로 높게 솟아있는 그린까지 어프로치하는 방법이다. 나는 이 방법으로 투온해서 파를 잡았는데 초행길인 동반자는 드라이버를 잡고 바로 (그린이 있을법한 방향으로) 티샷을 했는데 막상 가보니 그린 초입의 러프에 공이 가있어서 위험부담이 좀 있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겠구나 싶었다. 우리는 기껏해야 보기플레이 정도인 아마추어들이지만 시합에 나간 것도 아니니까 한번쯤은 이렇게 모험을 해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그린 옆에서 칩샷을 붙여서 버디를 만들어낸 동반자를 보니 나도 한반 저래볼걸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장타자라면 원온도 (물론 공을 잃어버릴 수도) 충분히 가능한 홀이다. 내 주변에는 티박스에서 그린까지가 다 보여야 제대로 만든 골프장이라도 주장하는 이들도 있는데 그들이 이 홀을 본다면 욕을 바가지로 했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나는 재미있었다.
어려운 코스에 초보자들도 많이 오기 때문에 상당히 느리게 진행된 라운드였고, 그나마 해가 저물어가는 시점에 라운드를 마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름 근방에서는 알려진 곳이라 단체로도 많이 오고, 한국인들도 쉽게 눈에 띈다. 아마도 대부분은 공을 많이 잃어버리겠지만 코스에 실망하고 귀가하는 분은 거의 없을 것이다. 방문한 시기 탓인가 잔디의 상태가 좀 별로였던 것이 아쉬웠을 뿐 근방의 (여기보다는 별로라고 생각하는) Glen Ivy, Dos Lagos 보다 더 저렴했어서 신기할 지경었으니, 확실히 자본주의의 천국인 미국에서는 비싸면 대개 좋긴 하지만 싸다고 다 후진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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