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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호바루에서의 첫날은 예전에도 와보았던 IOI 팜빌라 골프리조트에서 보냈다. Rick Robbins 설계의 27홀 골프장이라 18홀은 아쉽고, 36홀은 짧은 일조시간으로 어려운 겨울철에는 딱이었는데 이번에 가보니까 Putra 코스가 없어지고, 파 73의 (무진장 길다고 느꼈던 Palm 4번이 파 6로 바뀌었다) 18홀로 변경된 모양이었다. 이전의 기억으로도 페어웨이에 버뮤다가 아니라 블루그래스를 식재해놓아서 관리상태나 시각적으로나 여느 동남아 골프장보다 나았었는데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어떻게 달라졌을지도 궁금했다. 모기업인 IOI는 팜유를 생산하는 회사라서 판데믹 상황에서도 잘 버텼을 거라고 생각되긴 하는데 아마도 주택을 더 지으면서 (IOI/Palm) 18홀만 남겼을 것이다.

이번에도 과거 인연이 있던 현지의 이** 프로에게 일정과 부킹 등을 부탁했고, 싱가포르 공항에서 반가운 재회를 했다. 비단 말레이시아에 국한되지 않는 얘기지만 관광객에만 의존하던 수많은 이들이 지난 몇년간을 어떻게 버텼을라나 상상하기도 힘든데 조호바루 골프여행의 비용은 판데믹 이전이랑 비슷했다. 인터넷으로 비용이 다 공개되는 요즘에는 돈으로 얼굴붉힐 일은 없다고 보며, 이것저것 신경쓸 필요가 없으니 나중에 다시 오더라도 현지 에이전시를 통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비용을 얘기하자면, 항공요금까지 생각하니 해외골프가 싼 것은 아닌데 추위를 피해 여유를 만끽하려는 것이니 약간의 호사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해외여행이 자유로와진 지도 몇달이 지났건만 클럽하우스와 라커룸은 텅 비어있었다.

원래 27홀이던 시절에도 Palm 코스가 가장 어려우면서도 재미있었으니 지금처럼 IOI/Palm 순서도 괜찮다고 본다. 시작하기도 전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며 IOI 1번에 섰더니 예전의 기억도 떠올랐다. IOI 코스가 원래부터도 세 코스들 중에서는 가장 길었는데 시작부터 550미터 전장의 파 5로 기를 죽인다. 그래도 여기가 경치는 제일 좋았는데 IOI 5번 홀쯤으로 접어들면 거기서부터 내가 열대지방 밀림에 들어와있구나 비로소 실감하게 되는 풍광이다. 페어웨이를 비스듬히 가로질러 개울이 흐르는 홀들 (IOI 5번과 6번)에서는 과거의 기억으로 그럭저럭 공이 살았지만 초행길인 동반자들은 이리저리 고생이었다. 내 경우는 어쩐 일인지, 이제 감을 잡았는지 티샷도 아이언도 무지 잘 맞는다. 양쪽으로 팜트리가 무성한 페어웨이를 웬만하면 지켰고, 버디도 전반에만 두개를 했다. 앞뒤로 아무도 만나지 못한 황제골프였으나 땀으로 범벅이 되는 더위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Palm 코스의 첫 홀은 넓직한 페어웨이라 은근 버디의 기대를 하게 되지만 실은 핸디캡 1번이다. 타이거우즈의 복귀 인터뷰에서 어떻게 골프를 칠 것이냐 질문에 "페어웨이 가운데로 공을 보내서, 홀컵 근처까지 그린에 올린 다음, 퍼터로 공을 밀어넣을 생각"이라고 했다는데 아무튼 우리도 다 그렇게 한다. 두번째 홀도 긴 파 5지만 똑바로 멀리 친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인데 그렇게만 된다면 골프가 재미없을 거라고 스스로 위로해본다. Palm 3번이 이 골프장의 시그너처 홀인 파 3인데 멀기도 하지만 호수 옆의 좁은 그린까지 똑바로 날아가는 공을 바라본 것만으로도 조호바루까지 온 노력이 아깝지 않았다. 파 6인 Palm 4번, 그리고 비슷하게 어려우면서도 더 재미있었던 롱홀인 6번에서 모두 파를 잡은 것도 뿌듯했다. 이렇게 되살아난 내 자존심은 역시 긴 파 3인 7번 홀에서 무참하게 깨져버렸는데 도대체 210미터가 넘는 파 3 홀에다가 중간에 연못을 파놓은 설계는 너무 가혹하다.

모처럼 (한국은 지금 엄청나게 춥다는데) 더운 날씨에 실컷 골프를 쳤더니 거의 녹초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밤비행기로 싱가포르에 와서는 조호바루까지 이동해서 쉴 틈도 없이 27홀을 돈 것이었다. 숙소인 KSL 호텔은 시내에 있었는데 씻고 저녁을 맛있게 먹으며 긴 하루를 마감했다. 쉼없이 이어진 대화의 대부분은 코로나로 달라진 세상에 대해서였고, 아무튼 예전과 똑같을 수는 없어도 차츰 정상으로 돌아가는 모양이었다. 인천에서 조호바루까지 진에어 정규편이 복항하면 여기도 나아지겠지 기대를 하는 모양인데 (성수기에는) 하루에 십여편씩 비행편이 있던 태국이나 필리핀 등에 비하면 적은 수의 한국인들, 더 맛있는 음식에 수준높은 골프장들, 유흥은 생각하지도 못할 차분한 분위기, 거기에 노캐디가 기본이라 호불호가 있을 동네가 말레이시아라고 본다. 분명한 것은, 코로나를 겪으면서 이런 식의 골프여행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축복임을 깨달았다는, 기회가 생기면 어떻게든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하게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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