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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싸진 미국 골프비용에 좀 숙소에서 멀더라도 싼 골프장을 찾아보다가 여기를 발견했다. 올란도 남쪽으로 30분 거리인 St. Cloud 시에 위치한 Royal St Cloud 골프링크스는 오후에 27홀을 치는 가격으로 인당 68불 정도를 받는데 2시쯤 시작하면 해지기 전에 가능하겠다는 계산으로 부킹한 것이다. 홈페이지에서 이 골프장의 사연을 읽어보고 흥미가 생기기도 했다. 2001년에 Lewis "Chip" Powell의 설계로 18홀 코스가 만들어져서는 한때는 플로리다에서 가장 내장객이 많은 골프장으로 꼽히기도 했다는데 몇년뒤에 다른 사람에게 팔리면서 새로운 주인인 Bill Filson이 추가로 9홀을 만들어서 지금의 27홀 코스가 되었다고 한다. 세개의 9홀 이름은 Red/White/Blue.
우리는 오전에 다른 골프장에서 18홀을 칠 예정이었으나 천둥번개를 동반한 많은 비로 취소하였기 때문에 큰 부담없이 27홀을 쳤다. 실은, 오전에 갔던 골프장이 비슷한 입지와 가격이었는데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잔디의 상태가 시원찮아보여서 살짝 걱정하던 차였다. 비가 많이 내렸어도 카트를 타고 페어웨이에 진입할 수 있었고, 버뮤다라고 생각했던 잔디는 마치 벤트그라스처럼 깔끔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우선 시작한 코스는 Red였고, 홀들을 거듭 플레이하면서 우와 여기가 정말 숨은 진주로구나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내가 외국의 골프장을 다니면서 한번 가본 곳은 가급적 다시 안간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이유로 이렇게 저렴한데도 생각지도 않게 좋은 코스를 발견하는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는 기본적으로 넓은 부지에 물이 많은 링크스 스타일인데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유니크한 디자인의 홀들이 (한편으로는 여기저기서 베껴온 느낌도 드는) 이어졌다. 그린이 정사각형으로 만들어진 (홀의 이름이 "rectangular"였음) 홀이 있는가 하면 티샷하면서는 잘 보이지 않는 (아주) 조그마한 벙커들이 마치 초록 바탕에 흰 점들을 찍어놓은 것처럼 만들어진 곳도 있었다. 소위 피아노 벙커라고 불리는, 가로로 길쭉한 벙커들도 보였으며, 뜬금없이 격벽으로 둘러쌓인 깊은 벙커도 보였다. 중간중간에 프로샵이나 식당에 연락하도록 공중전화 부스도 만들어져 있었다. 모래밭 웨이스트구역을 카트로 달려보는 것도 난생 처음이었다. 호수나 늪지도 많았는데 방치되지 않고 계속 관리되는 모양으로 깔끔했다.
이어서 White와 Blue 코스까지 27홀을 마치니 오후 7시가 조금 지났다. 해가 기울어가는 시점에 이 아름다운 코스에서 플레이한 것이 감사하며 (Chip Powell 이라는 설계자에 관심이 생겨서 검색해보니 플로리다 지역에다 골프장을 만들고 있는 신예인 모양이다) 차를 주차장에서 빼는데 카톡으로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동료의 부고가 날아왔다. 나보다 두어살 어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와는 달리) 건강에 관심이 많아 운동도 열심이었고 바르게 살던 친구라서 갑작스런 소식에 좀 충격이었다. 사람은 제각각의 팔자가 있는가보다 무거운 마음으로 그와의 기억을 떠올리다보니 십수년전쯤에 직장에 소위 "신이 내려서" 이상한 행동을 보이다가 결국 사직하고 외국으로 떠났던 또다른 동료와의 일화까지도 생각이 나버렸다. 주변 사람들의 앞날이 자꾸 눈에 보인다고 하면서 선생님은 산길을 걸어다니는 모습이 보여요 등산을 좋아하시나봐요 그랬었다. 당시에 내가 골프를 치리라고는 상상도 안했었기 때문에 이게 무슨 개소리야? 속으로 생각하고는 한동안 잊고 지냈다. 이번에 죽은 친구가 나는 어떨 것 같은가요? 물었을 때는 좀 머뭇거리다가 미래가 보이지 않네요 했었다. 나는 이런 미신을 믿지 않기 때문에 당시에는 그냥 웃어넘겼었는데 아무튼 지금은 맨날 잔디를 밟으며 산과 들로 돌아다니는 삶을 산다. 섬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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