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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에 미국 어디론가 와서, 몇일간 죽어라고 골프만 치자면 그야말로 컴컴한 새벽에 호텔을 나와서는 밤이 되어서야 귀가하는 일정을 반복하게 된다. 나야 이제 익숙해서 괜찮지만 이번처럼 미국의 골프장에 생소한 동반자를 몇명 데려오면 가이드 입장이 되어 신경쓸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미리 좋은 골프장을 알아보고, 최저가를 살펴보고, 동선에 맞춰 티타임을 잡고 그런 짓은 안하기로 했다. 호텔에서 가까운 퍼블릭에 무작정 찾아가서 치고는 시간이 허락하면 또 근처의 다른 골프장에 간다. 끔찍하게 후지면서 턱없이 비싼 코스일 위험이 있지만 그래봐야 몇만원이고, 공치면서 하루를 보내기에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의 첫날밤을 보내고 맞은 아침에 호텔 조식을 먹으면서 Golfnow 앱을 켰더니 주변에서 그럭저럭 평점이 좋으면서도 저렴한 골프장이 눈에 들어왔는데 거기가 바로 Redwood Canyon이다. 1966년에 Bob E. Baldock과 Robert L. Baldock이 함께 설계해서 개장했다고 하며, Robert L.은 Bob E.의 아들이다. 개장 당시의 골프장 이름은 Willow Park이었다는데 이름에서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지금의 명칭이나 마찬가지다. 오전 7시반에 인당 24불이니까 코스가 형편없어도 싼맛에 잘 쳤다 그럴 것이고, 의외로 감동할 구석이 있을런지도 모른다.

호텔에서는 15분 거리였고, 입구에서부터 산악지형에 있구나, 동네가 "valley"고, 골프장 이름에 "canyon"이 있을만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만 "redwood"가 연상되는 모습은 찾을 수 없다). 파 71에 블루티에서도 5,800야드니까 짧은 편인데 대다수의 한국 골퍼들은 오히려 이정도 거리에 익숙할 것이다. 주변에 주택가나 도로도 없어서 조용하고 아늑하다. 골프치기에 좋은 조건인데 문제는 날씨였다. 매번 느끼지만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겨울철은 우기라서 춥고 축축하다. 골프장이 폐장하지만 않으면 어떻게든 치는 것이 한국인 골퍼라지만 양말부터 속옷까지 다 젖어버리면 고생도 이런 고생이 없다. 이날은 다행히 흐린 정도의 날씨였지만 페어웨이 곳곳이 웅덩이로 변해버린 코스에서의 골프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골프장에 최악의 날은 직장에서의 최고인 날보다 낫다는 말도 있으니 아무튼 즐겁긴 한데 슬슬 힘들다는 생각도 드니까 열정이 예전만 못한가보다.

Redwood Canyon에서는 딱히 눈에 번쩍하는 홀도 없지만 이상한 홀도 없이 평범했다. 파 3인 5번과 13번의 경치가 그나마 괜찮았는데 다른 골프장이었다면 평범한 수준이었겠으나 여기서는 가장 경치가 좋은 홀들이었다. 등이 따갑도록 쏟아지는 빗발에 웅덩이에 빠진 볼은 꺼내놓고 쳤지만 그럭저럭 즐거웠다. 산속에 있지만 전반적으로 평평하게 만든 코스라 배수가 시원찮았을 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날 코스에 손님은 우리 팀이 유일했을 것 같은데 카트를 못타게 하건 어쩌건 코스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아예 문을 닫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입장이라면 그저 열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모처럼 왔는데 골프를 치지 못한다면 중년 남성 서넛이 할만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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