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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스타 내셔널과 로얄멜번, 싸이프레스 포인트 등으로 유명한 Alister Mackenzie 박사였지만 가장 마음에 들어해서 결국 그 옆에다가 집을 지어서는 노년을 보냈다는 골프장은 Pasatiempo였다고 한다. 맥킨지 박사에게 Pasatiempo의 설계를 의뢰했던 주인은 Marion Hollins라는 여성으로, 20세기 초반에 여러 대회를 휩쓸던 아마추어 골퍼이자 백만장자의 상속인이었던 그녀는 여기에 폴로클럽과 함께 최고의 골프장을 만들고 싶어했다. 이 골프장이 개장하고 첫 손님이 Bobby Jones였고, 코스에 감동받아 맥킨지에게 오거스타의 설계를 부탁했다는 이야기도 이미 유명하다. 놀랍게도 여기는 퍼블릭 부킹을 받고 있고, 가격도 감당할만한 수준인데 아무튼 내가 미국에서 (현재까지는) 가장 비싸게 돈을 지불한 골프장이 될 것이다. Pasatiempo는 특이하게도 평일이나 주말이나 그린피가 같은데 정가는 $230인가 그렇지만 임박한 평일에는 $180 정도로도 나오는데 요즘이 겨울철이라 그런지 몰라도 찾다보니 일요일 오전임에도 $165 티타임을 발견했다. 한국에서라면 어디 충주 정도까지는 내려가야 가능한 액수인데 여러 매체에서 "100대 골프장"으로 늘상 이름이 올라가는 코스를 경험하는 비용으로는 거의 거저이기 때문에 숙소에서 한시간 정도의 운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실은 이런 100대 골프장의 경험으로는 이외에도 Maderas 등이 있었다. 거기는 실은 (좋은 코스였지만) 그렇게 엄청난 기억은 아니었는데 여기는 입구부터가 뭔가 근사한 곳에 온 느낌을 준다. 기분좋은 환대를 받고는 프로샵에 들러 비용을 지불하는데 카트비를 따로 받는다. 최근에 Tom Doak에 의해 리노베이션을 거치긴 했으나 여기는 기본적으로 걷는 골프장이다. 오래된 골프장들은 카트패스가 나중에 추가되는 경우가 많아서 카트를 굳이 타야할 이유도 없는데 문제는 동반자들이었다. 걸어본 경험도 별로 없는데다가 골프백이 다들 무겁고 큰 탓에 그거 둘러매고 같이 걷자도 하기도 좀 그랬다. 카트비가 별도로 인당 $32이나 하니까 웬만한 18홀 라운드 비용인데 아무튼 나는 걷고 그들은 기꺼이 그 비용을 지불한다. 너무 산악지형만 아니라면 코스를 걸으면서 느끼는 것이 최고지만 실은 이제 좀 힘들기는 했는데 슬슬 구경하면서 쳤어도 4시간이 조금 넘어서 끝났으니 페이스에도 만족스럽다.

고급스런 분위기에 (프로샵의 Josh를 포함해서) 직원들의 친절함, 스무스한 운영에 대해 굳이 더 칭찬하고 싶은 것은 코스 자체는 그저 방문한 시기가 나빴나 싶기 때문이다. 1월 중순이니까 아마도 잔디나 풍광이 가장 별로일 때 온 모양이다. 푸른 양잔디 페어웨이는 군데군데 말라죽어있고, 나뭇가지는 앙상해져 흉하다. 아무리 열심히 관리를 해도 가뭄과 추위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비가 흩뿌리는 홀들도 있었으나 날씨는 약간 쌀쌀한 정도로 근사했기 때문에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사진찍기에는 좋았다.

파 70 골프장이라 전반에만 파 3 홀이 세개다. 3번 홀은 아마도 (중간에 해저드가 없는 것을 감안하면)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파 3가 아닐까 싶다. 화이트티에서도 200 야드 오르막을 올라가면 까다로운 2단 그린이 기다리고 있는데 나의 투온에 투펏 보기는 아마도 거의 베스트 스코어일 것이다. 6번 홀 옆으로는 매킨지 박사가 노년을 보낸 집이 마치 문화재처럼 보존되어 있어서 그에 대한 골프업계의 존경심이 느껴지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홀을 거듭할수록 제주도의 나인브릿지 생각이 자꾸 났다. 경치는 물론이고 홀들의 생김새가 많이 닮았다. 후반으로 넘어가야 Pasatiempo의 진가가 나타나는 것 같다. 공 하나는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440 야드 10번 홀과 좀 짧지만 더 황당하게 어려운 11번 홀을 지나면 숨이 턱 막혀버린다. 반면에 매킨지 자신이 저서인 "The Spirit of St. Andrews"에서 "favorite hole in all of golf"라고 밝힌 16번 홀은 이후 많은 설계자들이 흉내낸 탓인지 직접 보니까 감동은 덜했다. 정교한 티샷과 세컨샷이 필요한 홀이라 하이브리드 두번을 쳤는데 페널티를 포함해 포온 포펏. 페어웨이도 그렇고 그린에도 도무지 공을 올릴 방법이 없다...ㅠㅠ 그래도 우리는 유쾌하게 웃었다. 여기는 Pasatiempo니까.

내 개인적인 베스트 홀은 파 3로 끝나는 18번 홀이다. 계곡을 넘겨야하는, 비교적 짧은 홀인데 앞팀의 퍼팅을 구경하면서 숨을 고르노라면 평생 한번의 플레이로는 아쉬움이 남는다. 매킨지의 설계철학과 디자인은 이후 수없이 흉내내어졌겠으나 오리지날을 경험할 기회는 (특히 나같은 퍼블릭에게는) 쉽게 오지 않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세계 100대 코스를 거의 경험한 적이 없으나 한국에서 나인브릿지안양 cc 등에서 운동했던 기억으로는 (경치나 조경 등을 뺀다면) 코스 자체만으로 얘기하자면 여기 Pasatiempo가 내 베스트코스가 될 것이다. 더구나 20만원도 안하는 비용은 그저 감사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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