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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으로 와본 동남아 골프여행. 엄밀히 말하자면 내가 처음 머리를 얹은 기회가 중국 하문에 윗분들을 모시고 갔던 거라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그냥 고생했던 기억밖에는 없었고, 회의로 갔다가 잠시 짬을 내어 공을 쳐본 적은 있으나 오로지 골프만 생각하고 온 것이 처음이라 이번이 실질적인 첫 동남아 골프여행이다. 밤늦게 도착해서 퀴퀴한 냄새가 배어있는 침구와 끊임없이 밖에서 들려오는 오토바이 소리에 대충 잠을 때우고 느즈막히 아침을 먹고는 나선 골프장은 로얄가든 컨트리클럽. 클락이라는 동네가 필리핀을 대표하는 곳인지 모르겠으나 하도 거기는 위험한 곳이라고 얘기를 들어와서인지 골프장만 보면 여느 휴양지와 다를 바가 없어서 여기가 필리핀이 맞나? 싶다. 숙소인 앙헬레스 워킹스트리트에서 차로 10분이면 간다.

아무튼 한국에서 온 여행객에게는 그저그런 골프장일 수도 있겠지만 Gary Roger Baird 설계로 꽤나 신경써서 만든 곳이고, 블라인드 도그렉 홀이나 아일랜드 그린도 있는 것이 나름 재미있는 레이아웃이다. 걱정했던 것보다는 붐비지 않았고, 그러나 잔디의 상태는 겨우내 수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밟힌 흔적이 확연하다. 여느 동남아 골프장과는 달리 스윙도 봐주고 코스에 대해 설명에 열심인 캐디들이 있었어도 공 앞까지 카트를 몰고가서 거리를 측정하고, 공을 치는 식은 미국의 퍼블릭 코스나 마찬가지다. 요즘 하도 공이 맞지를 않았기에 첫 홀의 티박스에 서니 긴장되어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숨을 고르고 가볍게 스윙을 했더니 다행히 공은 페어웨이에 안착. 그래도 계속 긴장이 되었다가 차츰 풀려갔는데 편한 동반자들과의 웃음섞인 대화가 아니었더라면 무지 힘든 하루가 되었을 것이다.

잔디의 품종이 소위 말하는 양잔디와 좀 다른 것인지 실제로는 저렇게까지 시원찮은 건 아닌데 약간 누런 색깔에 암튼 그리 아름다와보이지는 않는다. 필리핀 골프에 조예가 깊은 동반자들의 말로는 여기가 클락에서는 가장 수준이 떨어지는 골프장이라는데 잔디관리가 엉망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코스의 상태가 어떻건간에 내 돈과 시간을 들여가며, 가까운 골프장 놔두고 이 먼 곳까지 와서 기분만 잡치고 갈 수는 없었다. 날씨가 춥건 덥건간에, 골프장이 좋건 나쁘건간에 좋은 사람들과 함께이고, 공도 그럭저럭 맞아준다면 좋은 코스이고 최고의 날이 된다. 오늘 나의 목표는 공 하나로 더블보기. 철저하게 안전한 플레이로 무조건 짧게 끊어서 나간다. 몇주전 올란도 여행에서 멘붕을 맛보았기에 이렇게 맘을 비우고 치니까 그럭저럭 앞으로 나아간다.

남자 캐디로 했더니 아론이라는 이름의 젊은이는 이븐파 정도를 친다는 프로 지망생이라는데 내 스윙을 고쳐주느라 열심이다. 덕택에 파 5개에 버디 하나, 89타를 쳤는데 바로 지난 주에 140타를 쳐서 골프를 접을까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에 비하면 하늘과 땅같은 차이다. 이날 캐디인 아론에게 배워서 "확" 달라진 세가지 교훈: 첫번째는 백스윙은 천천히, 어깨가 돌아가는 길을 따라서, 두번째로 백스윙 탑에 도달하면 뭔가 손목이든 팔이든 조작을 가하지 말고 그대로, 그 길로 내려오라는 것, 세번째는 (특히 아이언은) 공 뒤의 땅에 클럽을 대지 말고 약간 든 상태로 어드레스하라는 거였다. 특히 몇몇 파 4홀에서 드라이버/웨지 투온을 했는데 이 골프장이 쉬운 것인지 아론의 조언 덕택에 내 스윙이 좋아진 것인지 내일이 기대되는 라운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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