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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골프장

한원

hm 2023. 4. 13. 05:25

십년전쯤에 나는 골프를 치지 않았지만 주변의 지인들은 다들 골프에 미쳐있어서 (정말 이 사람들은 맨날 만나면 골프얘기밖에 없나 그랬었다) 줏어들었던 얘기중에 하나가 서울 근교에서 절대로 가면 안되는 삼인방이 캐슬렉스, 양지, 그리고 한원 cc라고들 했다. 캐슬렉스는 이후 에버랜드에서 리노베이션을 해서 좀 골프장다워졌을 뿐만 아니라 입지 하나만으로도 깡패 수준이고, 양지파인은 아마도 험난한 산세에 걸어다녀야 했기 때문인데 카트가 도입된 현재도 평가는 비슷하다. 한원 cc는 지금도 "코스 빼고는 다 괜찮은" 골프장이에요 어디 강원도에 왔나 싶었어요 그런 평을 듣는 곳인데 나도 몇년전에 한번 가봤긴 해도 당시에는 세상의 모든 골프장이 다 어렵던 시절이었다.

김중열 씨가 설계했다는 27홀 코스인데 이 분이 골프장 설계를 업으로 하시는지는 잘 모르겠는 것이 구글링을 해봐도 한원 cc 말고는 나오는 게 없는 탓이다. 다만 1970년의 중앙일보 기사로 "오산컨트리클럽 (대표 김중렬) 개장"이라는 기사가 나왔으니 벌써 50년이 넘었다. 골프장 허가를 받기도 어려웠을 시절인데 왜 이렇게 좁고 숨막히는 부지에다가 고난도의 코스를 지었을까? 당시라면 이 험난한 산길을 카트도 타지 않고 오르내렸을테니 악평 일색인 것이 당연한데 전동카트를 타고다니는 요즘에도 별로 평가가 나아지는 기색이 없다. 산악훈련이냐, 스키장 슬로프냐 뭐 그런 불만만 들린다. 아무튼 누가 저렴한 비용으로 칠 기회를 만들었다길래 무조건 가보기로 했다. 3개의 나인홀 이름이 고구려/백제/신라 코스였는데 우리가 이날 도는 18홀은 백제와 신라 코스였다. 홀들이 대개 도그렉에 고저차가 심한 페어웨이라 오르고, 내려가고, 돌아가는 반복인데 이게 나름 재미있다. 요컨데 잘라가는 골프인데 그린 주변에 벙커나 장애물이 별로 없어서 웬만하면 쓰리온은 한다. 그리고 페어웨이에서 세컨샷을 하는 지점도 심한 오르막이나 내리막으로 걸리지 않게 잘도 만들어놓았다. 짧게 치더라도 가운데로만 가면 되니까 옛말처럼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식이다. 오히려 직접 그린을 노려보겠다고 언덕이나 숲을 넘겨 공략하는 경우 대개는 "가서 볼께요" 하지만 막상 가서 보면 다른 사람들 공은 어찌어찌 넘어왔는데 내 공만 없어져서 멘붕에 빠지기도 한다. 다만 IP 지점까지 공이 가지 못한다면 엉거주춤 내리막에 걸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페어웨이 양측은 오래된 골프장에 걸맞게 아름드리 나무들이 빽빽해서 근사하다.

이 날은 티칭프로 자격증이 있는 모씨와의 첫 라운드라 은근 기대를 했으니 잘치는 사람과 같이 치면 나도 매 샷에 신중하게 되고 스코어도 좋아지기 때문이다. 골프치면서 이제는 스코어에 목매지 말고 좀 즐기면서 쳐야지 하다가도 공이 안 맞으면 천혜의 경치도 아무 의미가 없다. 그래서 스코어로 보나 경치를 보나 즐거운 라운드였고, 한원 cc도 좋은 골프장이었다. 아직 4월이지만 전형적인 봄날씨라 불평할 게 없었다. 클럽하우스에서 전시된 도자기나 모기업의 연혁을 보면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한가지, 이렇게 오래된 국내 회원제를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사람들이 줄을 정말 안 선다. 체크인하거나 끝나고 계산하려고 서있으면 그냥 무시하고 앞으로 가는 사람들은 아마도 오래된 회원분이실텐데 주인의식이 투철해서일까 그냥 이름을 얘기하지 않아도 직원이 알아보니까 당연하다 생각하는지 보기에는 점잖으신 분들도 그냥 새치기다. 하도 이런 경우를 많이 봐서 이제는 그러려니 하는데 평생을 몸에 익힌 갑질인가 싶어서 씁쓸하다. 세상이 변해도 아직 수십년전 그대로인 곳이 우리나라 회원제 골프장이고, 한편 새로 생긴 퍼블릭을 가보면 겉은 근사해도 또 나름의 몰지각한 이용객들이 있으니 사람사는 세상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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