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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쪽으로 골프치러 가면 늘 점심이나 저녁으로 들르는 곳이 병천의 순대국집 거리인데 바로 인근에 천안상록과 골프존카운티 천안 (예전의 버드우드 컨트리클럽)이 있다. 버드우드는 나름 양잔디 18홀의 회원제였는데, 우리나라 회원제 골프장이 몰락해가는 전형적인 예라고 보여진다. 2000년대 초반에 공사를 시작하면서 회원권을 분양했으나 지지부진하자 파격적인 조건으로 다시 회원 모집을 하면서 거의 800명에 달하는 회원권을 팔았다. 이 과정에서 초반에 산 회원들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아야 해서 분쟁이 있었다고 하며, 어찌어찌 골프장이 개장은 했으나 소유주가 사기 혐의로 구속되면서 길고 험난한 세월이 시작되었다. 부도와 회생절차를 거듭하다가 결국 대중제로 전환하였고, 최근에 골프존카운티에 인수되었다. 그 과정에서 코스가 제대로 관리되었을 리가 없으니 예전부터 버드우드로 한번 잡아봅시다 그러면 가봤다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거기를 왜요? 식의 반응만 돌아오곤 했었다. 나는 몇년전에 한번 가보았고, 이름이 골프존카운티 천안으로 바뀌고는 첫 방문이다. 원래부터 꽤나 비싸게 회원모집을 했던 곳이고, 김학영 씨가 설계한 코스라서 관리상태가 좋아지면 다시 가보리라 했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예전에 왔을 당시에도 사람들이 무슨 생각으로 여기 회원권을 샀을까 궁금할 정도로, 럭셔리와는 거리가 먼 클럽하우스와 골프텔이었다. 퍼블릭이 된 지금에야 오히려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어서 골프존 로고가 여기저기 붙어있는 모습을 보면서 전혀 낯설지가 않다. 18홀 코스의 이름만 버드/우드에서 아웃/인 코스로 바뀌었는데 코스 자체에 대한 불만은 지난번에도 없었다. 감탄할 디자인은 아니었어도 적당한 전장에, 적당하게 어렵다. 페어웨이가 좀 좁아보여도 높낮이 차이가 별로 없고, 똑바른 형태라서 티샷이 죽지만 않으면 어떻게든 그린에 공을 올릴 수 있다. 그린의 형태도 앞에서는 작아보이지만 앞뒤로 길게 만들어놓았고, 주변에 장애물이 별로 없어서 넉넉한 클럽을 잡고 과감하게 어프로치하면 된다. 나는 이번에도 재미있었는데 티샷이 똑바로 가지 않는다면 홀마다 해저드티로 가야하는 분들은 즐겁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근사했던 홀들이 많았지만 산중에 깊숙히 자리잡은 코스에 오르막 디자인이 많아서 사진빨은 덜했다. 그중에서도 멋있었던 홀들은 전반의 4번과 9번, 후반에서는 롱홀인 3번과 6번하고 아일랜드 페어웨이였던 9번을 들 수 있다. 산속에서 치는 느낌이라 한림광릉 cc와 비슷하다는 생각도 했다.
갑자기 추워진 날이었지만 재미있었고, 코스에 대한 불만따위는 전혀 없었다. 편하고 좋은 동반자들과 함께여서 더 좋았다. 지난번에 여길 왔던 당시에는 나를 골프에 입문하도록 이끌어주신 은사를 모시고 왔었고, 이번에는 내가 머리를 올려준 제자와 함께였다. 십여년만에 격세지감이라는 단어가 어울리게 나도 나이가 들었고, 이제 막 골프에 재미를 붙여가는 제자를 바라보는 것도 감회가 새로왔다. 내가 십년전으로 돌아간다면 만날 때마다 너는 골프 안하니? 얼른 시작해서 같이 나가자 그런 말씀을 허투로 듣지 않고 이 운동을 좀 일찍 시작했을 것이며, 바쁘다고 맨날 빼는 제자에게 약간은 강압적으로라도 하루라도 빨리 골프를 시작하라고 했을 것 같다. 물론 원래 이 운동이 맨날 핑게만 대는 성질이 있는지라 늦게 시작해서 도무지 늘지를 않네요 그런 얘기도 부질없다. 그러고보니 막 골프에 재미가 들릴 무렵에 만나뵙고는 이제 스윙의 비법을 알았어요 이제 다 각오하세요 그렇게 우쭐댄 것도 기억나서 웃는다. 단기간에 열심히 한다고, 재능이 있다고 왕도가 있는 운동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 알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