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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골프장

포라이즌

hm 2023. 5. 9. 09:09

오래전에 순천의 승주 cc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여기가 내가 난생 처음으로 가본 전라도 골프장이다. 초보였던 시절이라 어디라도 상관있었겠냐마는 승주에 특히 좋았던 기억들이 있어서 꼭 한번은 다시 가보리라 했었다. 주인이 아마 포스코였던가 그랬던 회원제 27홀이고, 코스의 디자인이나 관리상태나 흠잡을 곳이 없었으나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클럽하우스의 (엄청나게) 맛있었던 국밥이었다. 골프장 식당인데 반찬이 테이블 가득하게 깔리는 모습을 보고는 전라도 골프장은 다 이런가보다 했지만 이후로 어디에서도 그런 곳을 보지 못해서 내 기억이 왜곡된 것이었나 그런 생각까지도 하던 참이다. 행정구역은 순천이며, 1992년에 장정원 씨가 설계한 전형적인 한국식 골프장이었다가 이후 Gary Roger Baird를 데려와서 그린을 원그린으로 바꾸는 등 리노베이션을 했다. 요컨데, 전통있는 골프장이면서 노력도 소홀이 하지 않았다. 가보기 전에는 "전라도의 안양 cc"니 어쩌니 호평이 오히려 우습게 들렸지만 결국 어느 정도는 수긍한 셈이었다.

그런데 어쩐 이유에서인지 이름을 국적도 불분명한 "포라이즌"으로 바꾸었다. 남/동/중 코스였던 27홀도 베이/스카이/가든이 되었으니 보통 이런 경우는 주인이 바뀌면서 분위기 쇄신이 목적인 경우가 많은데 여기는 그렇지도 않다. 이날 초대해준 동네 지인마저도 승주 cc를 포스코가 인수하면서 이름을 바꾼 겁니다 했지만 분명 내 기억에는 원래부터 포스코가 주인이었다. 구글링을 해보니 몇년전까지는 모회사가 이 골프장을 매각하려고 노력했던 모양인데 잘 팔리지 않으니까 (신의 한수?), 그리고 코로나 이후로 골프 붐이 일어나니까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골프장인양 손님을 받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승주 cc 시절에도 불평할 여지가 없게 좋았고, 지금은 더 좋아졌을 것이다. 내 기억에 여기는 전형적인 산속 골프장이었고, 오른쪽으로 또 왼쪽으로 꺽어지는 도그렉 홀들에서 공략을 고민하게 만드는 좋은 설계였다. 20년전 장정원 씨는 요즘의 설계자들처럼 미리 치밀하게 코스를 설계한 후 산을 통채로 밀어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경관을 창조해내는 방식은 절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있는 언덕과 산세에 맞춰서 이리저리 홀들을 배치하느라 고생했을 것이 분명한데 덕택에 눈에 익숙하면서도 흥미로운 골프장이 되었다. 굳이 언급하자면 전반적으로 홀들이 길고 어려웠다.
 
이번에는 여수를 가는 것이 아니라 광주송정역에 SRT를 내려서는 현지 지인의 차로 한시간 이상을 달려서 갔다. 클럽하우스에서 먹은 점심은 (그사이 외주로 바뀌었는지) 예전 기억과 다른 그저 평범한 국밥이었다. 베이 (예전의 남) 코스로 시작하여 가든 (중) 코스로 끝나는 18홀이었고, 스카이 코스가 전장도 길고 오르막이라서 가장 선호도가 낮다는 것이 초대해준 지인의 설명이었다. 전반의 베이 코스에서는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좌측 페어웨이로 공을 보내서는 우측의 물을 넘어 높게 속은 그린으로 어프로치하는 4번이 가장 근사했다. 홀의 조감도를 보면서 티샷 180 미터를 치면 100 미터 남짓 남겠구나 해서 다들 아이언 티샷을 하는데 나만 드라이버를 잡고 쳐놓으니 오르막까지 140 미터나 남아서 좀 어렵게 플레이된 홀이었다. 큰 실수가 없어서 매홀 보기로 가다가 어쩌다 파 하나씩이 나오는 라운드였는데 사실 나는 대충 80대 후반의 스코어라면 만족한다. 저멀리 광양만인지 순천만인지 바다가 보였고, 그러나 여기는 기본적으로 산악지형 골프장이었다. 후반인 가든 코스에서는 이름처럼 예쁜 정원처럼 꾸며진 파 4 홀 3번이 기억에 남는다. 이어지는 4번도 물을 건너가는 파 3 홀이었고, 비슷하게 예뻤다. 즐겁게 라운드를 마치고는 다시 광주 시내로 되돌아와 먹은 저녁은 원래 맛있는 건지 배가 고팠는지 근래 최고의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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