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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같은 한국인 백돌이에게는 별로 와닿지 않았지만 미국 골프역사에서 Alister MacKenzie 박사는 대단한 찬사를 받는 인물이다. 그가 설계한 코스들은 굳이 오거스타 내셔널이 아니더라도 하나같이 유명하지 않은 게 없다. 불행하게도 매킨지 박사의 작품들은 대개 고급 회원제라서 나와는 별 인연이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몇년전에 Pasatiempo에서 그 감동을 맛본 바 있다. 보다 만만하고 저렴한 옵션이 Sharp Park 골프장인데 여기는 저렴한 샌프란시스코 시립이면서 매킨지 박사가 1930년대 초반에 만든 코스다. 이 골프장의 90년 역사는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는데 시내에서 가까운 퍼블릭이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멸종위기인 동물들 몇몇이 (아마도 희귀종 개구리와 뱀이라고 들었다) 이 골프장에만 서식하기 때문에 환경보존단체와의 끝없는 분쟁이 원인이라고 한다. 다행히 몇년전에 합의가 이루어져서 습지에 가까운 3개 홀의 리노베이션을 계획했는데 아무튼 지금은 본래의 모습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이날 나는 점심식사를 마치고 골프장으로 무작정 찾아갔는데 이런 시립 골프장은 (무슨 대회가 열리는 것이 아니라면) 혼자 가면 언제나 끼어들 틈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위치나 가격이 착하고, 역사적인 코스이기 때문에 사람이 많을 것은 분명했다. 결국 티박스에서 준비하고 있던 두명과 조인하여 12시쯤 티타임으로 출발했는데 외지인임에도 불구하고 38불을 냈으니 만족스런 시작이었다.

 

매킨지 박사는 주로 비싸고 고급진 회원제 골프장들을 만들었지만 Sharp Park만은 예외적으로 일반 서민들 누구나 와서 즐길 수 있을 코스를 원했다고 한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겠지만 오래되고 낡은 클럽하우스에 뭔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나는 카트를 타지 않고 걸었지만 어지럽게 늘어서있는 카트에는 지붕이 없어서 마치 놀이공원에서나 보는 그런 식이었다. 첫번째 홀에 서니 페어웨이 양측으로 나무들이 울창했는데 비교적 평범해보여서 살짝 실망이었다. 매킨지박사 특유의 디자인은 5번부터 나오는데 이 홀은 양쪽에 나무가 울창한 오르막 파 3홀로 오거스타의 3번이나 Pasatiempo 5번처럼 인상적이었다. 그린을 바라보면 종이를 둥글게 만 것처럼 심한 오르막이라서 짧으면 다시 굴러내려오고, 길면 매우 어려운 내리막 퍼트를 하게 된다. 이후의 홀들도 tv에서 마스터스 토너먼트의 중계를 보는 느낌이다. 그리고 12번부터는 갑자기 링크스 스타일로 바뀐다. 태평양 해안을 따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는데 그 안쪽에서 마치 스코틀랜드처럼 황량한 홀들이 연속해서 나온다. Sharp Park의 후반은 정말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멋진 홀들의 연속이었다. 새삼스럽게 샌프란시스코 주민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Presidio나 여기처럼 훌륭한 시립 골프장들이 있어서 저렴한 가격으로 운동할 수 있으니까. Presidio는 산악코스라 아무래도 카트를 타는 편이 낫겠지만 Sharp Park는 걷기에 좋은 골프장이다.

 

이 코스는 전장이 6,382 야드니까 요즘 기준으로 보면 많이 짧다. 하지만 막상 쳐보면 파 4 홀들이 (화이트티에서) 대개 360에서 440야드 정도로 상당히 길게 느껴진다 (블루티보다 화이트가 더 긴 홀도 있었다). 티샷이 잘 맞아도 그린까지 180야드 어프로치를 해야하는데 이거를 보면 우리나라 골프장들이 얼마나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한국에서는 화이트티에서 치면 종종 웨지를 잡곤 했었는데 산악지형과 여기처럼 평지의 차이는 있겠으나 아무튼 내 실력에는 쓰리온이 목표가 된다. 매킨지 박사의 설계를 많이 접한 것은 아닌데 Pasatiempo에서도 그랬고 여기도 길게 느껴졌지만 왠지 편안했다. 180야드 어프로치로 투온을 하려면 드라이버샷이 20야드쯤 더 나가던가 아이언을 좀 가다듬던가 해야할 것이다. 이날 내 스코어는 90대 초반이었으나 18홀 내내 공 하나로 쳤고, 비록 쓰리온, 포온을 했지만 어이없는 샷이 없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몸은 땀에 젖고 힘들었어도) 편한하게 샷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혼자서 치는 골프는 (조인한 동반자가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로) 친구들 서너명이 팀을 만들어서 하는 라운드와 많이 다르다. 나는 원래 좋아하는 운동이 전혀 없었는데 달리기나 자전거 등을 즐기는 이들도 그 행위를 하는 동안에는 심신이 편안해지는 경험을 한다고 한다. 골프도 마찬가지로 샷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경치를 감상하며 걷다보면 세상의 오만 잡생각에서 멀어지게 된다. 게다가 그런 상황의 지속기간이 서너시간으로 긴 편인데 우리가 현실에서 몇시간 이상을 완전히 떨어져있기란 사실 쉽지 않다. 오랫동안 운동을 하지만 아주 힘들지 않고, 다칠 걱정도 비교적 적다. 게다가 정말 쳐도쳐도 계속 재미있다.

 

이렇게 지붕이 없는 카트를 타는데 평탄한 코스에다 카트비를 따로 받으니까 그냥 걷는 게 낫다

 

이 홀은 화이트티가 블루티보다 더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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