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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막에 있는 대규모 (45홀) 골프장인 센추리21 cc는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애증이 교차하는 곳이다. 예전에는 굳이 거기까지? 했다가 코로나가 터지면서 갈 곳을 찾다찾다 어쩔 수 없이 여러번 방문했었고, 대부분은 마운틴 코스가 포함된 18홀을 돌았었다. 코스를 도는 순서에 별다른 원칙이 없이 되는대로 18홀의 조합을 만든다는 느낌이었고, 오랜만에 가보려고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지금은 파인/레이크 코스를 (이 18홀이 처음 이 골프장이 개장하던 당시의 구코스라고 한다) 회원제로, 나머지 밸리/필드/마운틴을 대중제로 운영하는 모양이었다. 원래는 마운틴을 뺀 나머지 36홀을 회원제라고 했고, 지금도 마운틴 코스로 출발하는 경우가 아니면 회원제 클럽하우스에서 체크인한다. 비회원도 부킹이 쉽고, 그린피도 저렴해서 과연 회원권을 사는 이가 있을까 싶은 골프장이지만 아무튼 그렇다고 한다. 코스의 설계를 Inter Golf 디자인의 Frank O'Dowd 씨가 했다고 하는데 이 분은 주로 조경설계를 하시는 디자이너니까 토목공사나 전반적인 코스의 조성은 아마도 국내 설계자가 했을 것이다. 해가 연중 가장 길어질 시기라서 오후 2시 정도의 티타임을 싸게 잡아서 가는데 서울에서 가자면 광주원주 고속도로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지역이라 이천과 여주를 거쳐 국도로 가는 편이 더 빠르다. 시끌벅적 어수선한 클럽하우스에서 대충 옷을 갈아입고 나서려니 의외로 시원해서 좋았던 기분은 첫 홀부터 티박스에 깔린 매트를 보며 약간 다운되었다.
많은 분들이 센추리21의 좁고 짧은 레이아웃에 치를 떨지만 그래도 깊은 산중에 경치는 좋다. 산과 산 사이의 좁은 길을 따라 페어웨이를 조성했으므로 그럴만도 하지만 산세를 오르내리는 형태였으면 더 극적이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었다. 저렴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잔디의 상태는 나쁘지 않았고, 아름다운 풍광 하나만으로도 만족스럽다. 여기 잔디는 조선잔디로 보이는데 페어웨이에는 좀 웃자란 듯 보였지만 그린은 나름 이쁘게 깎아놓아서 느릿느릿 잘 구르는 상태였다. 레이크 코스는 시작부터 호수를 넘어가야 했고, 이 호수는 마지막인 9번 홀에서도 보였지만 기타 홀들은 그저 산악지형 골프장이다. 티샷 200미터가 소원인 나같은 사람에게는 별로 문제가 없었으니 장타자라면 아이언이나 우드로 잘라가는 전략이 필요한 코스인데 내가 만약 장타자라면 아예 블루티로 가서 플레이하지 싶지만 이렇게 좁고 굴곡진 코스에서는 뒷편 티박스에서는 완전히 다른 코스가 될 것이다. 확실히 초록의 절정인 시기에 왔더니 산세가 아름다운 골프장임을 느꼈다. 그럭저럭 홀들이 다 괜찮았으나 압권은 레이크 9번과 밸리 4번을 꼽겠다. 아일랜드 그린으로 어프로치하는 9번은 다른 골프장에서도 드물지 않게 보는 식이지만 어려우면서도 아름다왔다. 까막득한 경사를 올라가는 롱홀인 밸리 4번은 티샷과 세컨샷이 잘 맞았더라도 세번째부터 좌측 도그렉에 어디인지 보이지도 않게 솟아있는 그린을 향해 어프로치한다. 간신히 그린에 올라와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저기를 어떻게 올라왔을까 대견하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다. 한편 반대로 산꼭대기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밸리 9번은 티샷이 내리막을 타면 투온으로 이글을 노려볼 수 있었지만 엉거주춤한 자세로 하는 어프로치가 자칫 그린을 벗어나면 그대로 산 아래로 사라져버리게 된다. 군데군데 잔디가 상한 곳이 보였으나 그린만큼은 잘 굴렀고, 무엇보다도 산간지형의 경치가 센추리21을 빛나게 한다. 저렴한 가격도 만족스럽다. 그리고 이 골프장에는 벙커가 많지 않다는 사실을 중반 이후에야 깨달았는데 캐디에게 물어보니 하도 난이도에 대해 원성이 자자해서 많이 메꿨다고 한다. 그냥 놔두었다면, 그리고 매섭게 어려운 세팅을 표방했다면 더 유명해질 수도 있었을텐데 그런 생각을 했다.
느려터진 라운드를 마치니까 벌써 해가 저물었다. 클럽하우스로 돌아와서 샤워실로 갔는데 세월 탓인지 어둡고 냄새나는 환경이라 대충 씻고 나왔다. 좋은 위치에 만들어진 대규모 골프리조트에 코스도 나름 재미있어서 성의만 있다면 꽤나 명물이 되었을텐데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생활체육지도사 등의 실기시험을 여기 마운틴 코스에서 하는데 제대로 테스트가 되겠냐 생각도 들었고, 어떻게 해놓아도 올 사람은 온다는 마인드가 아닐까 싶어 안타까왔다. 이 골프장에 대한 대부분의 의견은 그저 싼 맛에 간다는 것일텐데 나름 회원제 골프장임을 감안하면 클럽하우스라도 좀 달라져야 하지 않겠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