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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웬만한 골프장에 만족하는 편인데 대개 나쁜 기억으로 뒤돌아서는 곳은 공이 잘 맞지 않은 날인 경우가 (물론 객관적으로 봐도 영 아닌 곳들도 있는데 티박스에 매트가 깔려있으면 기분이 상한다) 대부분이다. 제주도에 있는 수십개의 골프장들이 다 나름의 장단점이 있지만 날씨나 그날의 관리상태가 아쉬웠을 뿐 크게 실망할 일도 없다. 그래도 (모처럼 제주도에 골프치러 가는 뭍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덜 선호되는 골프장들이 몇몇 있고, 내 생각에는 라온 cc도 포함될 것 같은데 한동안 관리가 시원찮았던 것이 이유일 것이고, 실은 여기가 생기던 당시에는 공을 많이 들였던 곳이다. 대우그룹이 잘나가던 시절에 제주 아도니스라는 이름으로 골프장을 만들려다가 결국 다른 기업에 인수되어 탄생한 27홀 골프장이며, 아마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Colin Montgomerie 코스일 것이다. 처음 개장하던 시기에 이벤트 대회를 열어서 타이거우즈도 다녀갔다고 하니 아무튼 야심찬 시작이었겠다. 이후 (골프장이 먼저였는지 리조트가 먼저였는지 모르겠으나) 대규모 리조트와 주택단지가 되어서 거주민들을 위한 9홀 코스도 딸려있는 것으로 안다. 아무튼 나는 지인이 있어서 몇년전까지는 종종 방문했던 곳인데 27홀의 코스 이름은 각각 Stone/Lake/Pine이라고 한다. 이름처럼 진짜로 돌, 호수, 소나무숲이 특징적이라고 하며, 하지만 어느 코스에서나 저 위로는 한라산이, 아래로는 바다가 보인다.
그런데 제주도에 골프치러 가서는 비나 바람으로 중단했던 씁쓸한 기억이 쌓여가니까 이제는 좀 알겠다. 사람들 얘기가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요컨대 한라산에 가까울수록, 해발고도가 높아질수록 좋은 기후는 하늘에 별따기였다. 다들 오라 cc나 우리들, 중문 cc 등을 추천하는 이유가 있었다. 라온의 위치는 사실 좀 어중간한데 듣기로는 오름이 둘러싼 분지같은 지역이라 바람 걱정은 덜하다고들 했지만 (골프장에 풍력발전기가 있는데 바람이 없다고?) 서쪽인데 그럴 리가 없다. 뭐, 비만 오지 않으면 골프치기에 나쁘지 않은 것이 제주도의 6월이다. 골프장 입구에 식당들이 즐비한 육지와 달리 제주도 골프장들은 시내에서 밥을 먹고 가거나 클럽하우스에서 식사하는데 라온의 입구에는 편의점과 함께 국밥과 김밥 등을 파는 식당이 있어서 거기서 간단하게 식사를 했다. 제주도는 우리나라이긴 한데 뭔가 이국적이고 다른 경험을 하게되기 때문에 늘 매력적이다. 클럽하우스에서 바라보는 코스 뒷편으로 수평의 능선이 보이는 것도 한국 골프장에서는 드문 풍광이다.
우리는 이날 파인 코스로 시작해서 후반에는 스톤 코스를 돌았다. 파인 코스는 전반적으로 비교적 넓직하고 이렇다할 장애물도 없는 편안한 디자인이다. 이번에는 못갔지만 내 경험으로는 레이크 3번의 뷰 하나만으로도 흠잡으면 안될 멋진 골프장이다. 콜린몽고메리 스타일인지 그가 살았던 영국 골프장의 특징인지는 몰라도 그린에서 수십미터 전에 벙커가 하나 있고, 반대편으로는 그린사이드에 다른 벙커가 또 있는 식은 좀 특이했다. 벙커에 들어가더라도 깊지 않아서 쉽게 탈출한다. 세컨샷 거리가 많이 남더라도 그린 근처가 관대해서 우드를 쳐도 부담이 덜했다. 좋은 코스에서 친한 이들과 치는 골프인데 공도 잘 맞았으니 불만이 생길 리가 없다. 다만 이런 식의 27홀 코스에서 어느 두 코스를 골라서 도는 식은 좀 재미가 덜하다. 원웨이 18홀 코스에서 전반에는 좀 워밍업을 하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어려워지는 식의, 드라마틱한 레이아웃을 나는 좋아하는 편인데 18홀 코스라도 후반을 먼저 돌게되면 그건 최악이다. 요컨대 설계자가 의도한 대로 코스를 즐기고 싶은 것이다. 하루를 온전히 소비하여 27홀을 다 도는 것도 좋겠다.
이틀간의 제주도 골프여행인데 어찌된 일인지 공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 골프백에 들어있던 몇개의 프로 v1은 어제 다 써버렸고, 어쩔 수 없이 프로샵에서 던롭 ddh를 샀다. 나는 언제나 타이틀리스트 공을 써왔는데 고급 공의 퍼포먼스가 필요한 수준의 골퍼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돈이 넘쳐나서 그런 것도 아니다. 어쩌다보니 오래전부터 선물로 받았던 골프공이 아직 남아있고, 이글이나 홀인원 기념으로 만들었던 것들이 (이제 거의 떨어져가긴 하지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아마추어에게는 돌덩이처럼 단단한 투피스 공이 거리가 많이 나서 좋다고들 하던데 나는 솔직히 공에 따른 차이는 잘 모르겠고 오히려 부드러운 (하이 컴프레션?) 공이 거리도 더 나오는 느낌이다. 스윙 스피드가 느려서 그런가 싶기도 한데 이날 ddh로 원볼 플레이를 했으니 그저 잘 맞는 날에 친 공이 제일이다. 그리고 또다른 여담 하나. 거의 매년 제주도에 와서 묵었던 메종글래드는 위치 하나만으로도 좋은 호텔이지만 올 때마다 뭔가가 업그레이드되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골프친 저녁에 굳이 횟집이나 로컬 식당에서 늦도록 술마시고 하는 거를 좋아하지 않아서 호텔 근방에서 대충 먹는데 삼다정이라는 뷔페 식당을 예약했더니 액수에 맞춰서 메뉴를 테이크아웃해서 객실에서 먹을 수 있게 해놓았다. 덕분에 배가 터져라 먹었는데 혼자서 뷔페 테이블에 앉아서 돈아깝다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서비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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