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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에서 검색해보면 극악의 난이도라고, 심지어는 이게 무슨 골프장이냐 심한 평가도 나오는 장수 골프리조트는 그러나 산악코스의 전문가인 Jim Engh이 제대로 의도를 가지고 설계한 곳이다. 콜로라도나 미시간에 100대 골프장 여럿을 만든 사람이라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고, 그리고 시각적으로 아름답고 막상 쳐보면 기발한 코스를 추구한다는 그가 우리나라 첩첩산중에 와보고는 얼마나 설레었을까 싶어서 내 버킷리스트에 오랫동안 올라가있던 골프장. 도대체 어떻게 골프장의 허가를 받았을까 궁금해질 심산유곡이라 (무주, 진안, 장수를 통틀어 무진장 [無盡藏]이라고 부른다는 얘기도 이번에 처음 들었다) 들어서는 입구에서부터 흥분이다.
설레임도 무색하게 골프장 진입도로는 시골길이었고 클럽하우스는 무슨 물류창고가 아닌가 싶게 지어놓았다. 프론트 데스크는 더 가관으로 마치 병원 접수대가 아닐까 싶게 낯익어서 정말 돈을 아낀 모양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우리가 으리으리 어마어마하게 클럽하우스를 지어놓은 골프장이라고 돈을 더 내는 것은 아닐 것이며, 건물이 좋아봤자 옷 갈아입고 밥먹는 정도일 뿐이다. 오오~ 그런데 여기는 우리나라 산악코스의 개념을 완전히 깨뜨려놓은 곳이었다. 산기슭을 따라 층층계단으로 홀을 쌓은 것이 아니라 원래의 산세 그대로 올라갔다 내려온다. 뭔가 낯선 디자인이라 사람들의 악평이 한편 이해되기도 하는데 내 눈에는 그저 특이하고 아름답기만 하다. 물론 누구라도 어려워할 디자인이다. 저기 위에 혹은 아래에 가야할 위치가 빤히 보이니까 운이라고는 기대할 수가 없고 그저 정확하게 멀리 쳐야만 하는 것이다. 러프는 그냥 해저드나 다름없다. 주말골퍼에게는 가혹하겠으나 골프를 심각하게 생각한다면 광고 그대로 골프장은 이래야 제맛이다. 퍼블릭이라 가격도 착하다.
코스의 이름은 사과/나무 이렇게 해서 18홀이다. 사과 1번 홀에서부터 까마득히 올라가는데 요즘 티샷에 좀 자신이 생겨 힘을 줘보지만 탄도가 낮은 탓에 그냥 앞으로 전진한 것에 만족해야 했다. 대신에 세컨샷은 오르막이 더 편하기 때문에 무난하게 쓰리온. 그린을 바로 노린 동반자들은 위협적인 벙커나 거친 러프에서 고생한다. 각각의 홀들이 다 특색있어서 기억에 남지만 사과 코스에서는 물결치는 페어웨이와 삭막한 벙커가 심산유곡을 배경으로 내려다보이는 2번이 시그너처 홀이라고 생각한다. 사과 8번의 험난한 GIR도 기억에 남는데 그린사이드 벙커에 빠졌으나 높은 탄도의 샷으로 홀컵 옆에 바로 공을 세우고는 역시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구나~ 혼자 우쭐했다. 한편 또박또박 쓰리온에 투펏을 했지만 페어웨이 저편으로 공이 사라져버린 동반자는 벌타 하나만 먹고 그린 근처에서 쓰리온이니 좀 억울하다.
후반의 나무 코스도 정복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험난한 자연의 모습이다. 대미를 장식하는 16, 17, 18번에서는 우리 모두 말수가 적어졌고, 묵묵히 자기 공에만 집중하개 되었다. 잘 쳤는데 스코어가 나쁜 것은 어쩔 수 없다. 코스 매니지먼트는 우리같은 아마추어에게는, 그리고 처음 가보는 골프장에서는 논외의 얘기다. 그리고 불만은 커녕 이런 코스를 허락한 자연과 설계자에게 감사하는 심정마저 느껴진다. 이날은 모처럼만에 단 한번의 실수도 없이 공이 다 잘 맞았고, 퍼팅도 본대로 잘 굴렸으니 행복하다. 공이 잘 떠올라서 똑바로 날아갔으나 거기에 해저드나 벙커가 있었던 것은 큰 불만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파다닥거리며 공을 굴리는 수준에서 코스가 어쩌고 했던 지난 시절이 약간 부끄러워진다. 코스를 즐길만한 능력을 갖추고 나서야 비로소 평가도 가능한 것이었다. 아무튼 나무 코스에서도 샷을 잘 보내놓고 천천히 걸으며 경치를 감상하려니 이제야 골프의 참맛을 알아가나보다 했다. 스윙에, 공을 맞추기에 급급했다면 느끼지 못했을 감정이다. 근처의 골프존카운티 무주 (예전의 무주안성 cc)와 가격은 비슷하거나 더 싸지만 코스의 수준에서는 비교불가다. 가뭄과 더위로 잔디의 상태는 별로였으나 그린만큼은 빠르게 잘 관리되고 있었다. 쉽게 말해서 국내의 평범한 골프장과 탑클래스 코스 수준의 차이였다. 18홀을 마치니 극도로 피곤했으나 샤워하고 대충 점심을 때우니 좀 살만해졌다. 샤워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마치 어디 동남아 골프여행을 왔나 싶게 칸막이가 쳐진 샤워부스만 있을 뿐이다. 대충 씻기만 하지 탕에 들어가거나 하는 일이 없는 나로서는 아주 맘에 드는 모습이었다. 이제 원래의 목적지인 여수까지 또 긴 드라이브를 해야하는데 운전하는 동반자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눈을 좀 부쳐야겠다. 여수에서는 만날 이들이 많아 일찍 자기는 글렀지 싶은데 그래도 맛난 음식과 아름다운 바다가 기다린다.
예전 미즈노골프의 tv 광고에서 "골프장은 원래 이렇게 어려워야지" 뭐 그딴 멘트와 함께 그 무시무시한 모습을 선보이기도 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