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국내 골프장

페럼클럽

hm 2022. 8. 21. 01:34

이름만으로도 철강회사에서 지었나보다 싶은 페럼클럽은 동국제강 소속으로 퍼블릭이지만 개장 당시에 tv 광고를 엄청나게 했던 곳이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덕에 공들여 지어놓고도 퍼블릭이 되었지 않을까 싶은데 안도 다다오 (安藤忠雄)가 설계한 클럽하우스만 해도 돈으로 쳐바른 인상을 준다. 이쪽 동네에 매우 배타적이고 비싼 회원제 골프장들이 자리잡고 있어서 아마 지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돈을 들였을텐데 차라리 퍼블릭이 더 낫겠다 싶은 시절이라 사연이야 어떻든 우리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좋은 코스를 방문할 수 있다는 것으로도 그저 감사할 일이다. 이번이 네번째 방문인가 그런데 이전에는 계속 3월 아니면 11월 정도에 갔었기 때문에 누런 잔디에서 공을 쳤다. 추운 시절에 갔었어도 배수와 통기를 위해 잔디 아래에다가 뭐를 깔아놓는 식의 설계라서 나쁘지 않았었다. 하지만, 누런 골프장은 시각적으로도 별로지만 제대로 된 코스 컨디션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에 잔디가 푸를 무렵에 꼭 다시 오마 그랬던 것이 이렇게 늦어졌다. 서울에서 간다면 고속도로를 꽤 오래 타게되지만 여주 ic를 지나 금방이라 (그 길로 조금만 더 가면 소피아그린시그너스가 나온다) 시골길을 한참 달려야하는 인근 골프장에 비하면 사정이 나은 편이다. 설계자는 Dye 패밀리의 조카인 Cynthia Dye McGarey라고 하며, 워낙 터가 넓어서 산기슭을 돌아나가는 한국식 코스가 아닌 점도 마음에 들었다. 물론 어려워야 좋은 코스라고 생각하는 Dye 집안의 설계라서 롱아이언 온그린이 쉽지 않았던 기억이다. 해저드나 벙커가 그린을 단단하게 방어하고 있어서 가야할 곳을 벗어나게 되면 댓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추운 시절이어서 일인용으로 만들어놓은 샤워실 부쓰와 클럽하우스에서 점심으로 먹었던 김치찌개에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한여름에 다시 오니까 확실히 푸른 잔디가 마음에 든다. 페어웨이의 상태도 좋아보인다. 점심을 여주 ic 나와서 설렁탕을 먹었는데 구력이 나랑 비슷하지만 몇년에 한번씩 (새로) 머리를 올리는 후배에게 뭔가 해줄 조언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몇마디 했다. 워낙 몸치라 그렇게 많은 라운드를 했어도 좌절을 수없이 경험했던 입장에서는 해주고픈 얘기가 많았으나 잔소리로만 들릴 것이고, 아직은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클럽하우스에 일찍 와라, 그린에서 먼 순서대로 쳐라, 그러나 자기 차례가 되기 전에 미리 준비해서 페이스를 맞춰라, 자기 스코어를 제대로 세라, 벙커를 정리해라 등등은 당연히 들었을 것이고 내가 해준 조언은 두가지, 약간 모순일 수도 있는 얘기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지만 익숙해지고 조금 잘하게 되기까지는 골프의 참맛을 모를 것이니 일단은 열심히 해서 남들만큼은 해야한다는 것과, 절대 자신의 플레이를 부끄러워하거나 동반자들에게 미안해하지 말라는 것. 골프는 최고로 재미있는 운동이지만 동시에 최고로 어려운 운동이기도 하다. "오늘 왜이러지?", "연습장에서는 잘 맞았는데..." 이런 얘기를 굳이 꺼낼 필요가 없다. 어차피 네명이 하지만 각자 자기 공만 치기에 급급할 뿐이니 남이 어떻게 고생고생해서 그린까지 도달하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즐기자고 비싼 돈을 지불하는 것이고, 잘치면 우쭐하고 못치면 허허 웃으면 되는 운동이다.

우리는 동코스로 시작했는데 이게 제대로인 1번 홀이다. 당연히 화이트티에 섰는데 요즘 설계자들의 추세는 (대부분의 고객인) 아마추어를 고려하여 화이트티 플레이에서 가장 코스를 즐길 수 있게 만든다고 한다. 종종 라운드를 함께 했었던 김** 프로의 말로는 대회가 아니라면 프로들도 빽티를 기피한다고 한다. 겨루는 골프라면 몰라도 즐기는 운동이라면 자기 핸디캡에 맞게 티박스를 골라야하는 법이다. 시작부터 시원스런 경치지만 역시나 Dye 코스는 공이 떨어질 위치에 해저드나 벙커가 있고, 그린에서도 고생한다. 언제부터인가 "아마추어의 보기는 프로의 파" 라는 신념으로 160 미터가 넘으면 무조건 잘라간다는 원칙으로 하니까 웬만한 장타자들보다 스코어가 좋다. 클럽하우스가 내려다보이는 16번이 자타공인 시그너처 홀일 정도로 엄청난 경치는 없으나 잘 관리된 코스에서 공이 잘 맞으니 불만이 생기지 않는다. 내 느낌으로는 티박스에서 계곡을 넘어가야하고, 세컨샷 위치에서도 다시 계곡을 하나 더 넘어가는 7번 홀이 가장 재미있었다. 티샷이 좀 짧았다면, 혹은 그린을 공략하기 버거운 위치로 공이 갔다면 안전하게 쓰리온을 선택해야하는 잘 설계된 홀이었다. 비교적 신생 코스임에도 나무를 많이 심어놓아서 편안하고 아름답다. 해저드를 꼭 거쳐가거나 공이 러프에 박혀 애를 먹는 두 장타자와 쌩초보 후배는 고생이었겠지만. 요즘처럼 하늘이 파랗고, 호수에 물이 가득하며, 잔디가 한껏 물이 오를 시기에는 더 멋지다.



'국내 골프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푸른솔 장성  (1) 2022.08.31
골드레이크 (레이크/골드)  (0) 2022.08.28
가평 베네스트  (2) 2022.08.17
해비치 서울  (0) 2022.08.13
실크밸리  (0) 2022.08.10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TAG
more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