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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골프장

동촌

hm 2021. 7. 6. 06:11

매년 봄가을에 한두번씩 만나는 지인들이 있는데 대전과 대구 등지로 떨어져 살다보니 금요일 오후쯤에 골프를 치고 저녁을 먹는 모임으로 굳어져버렸다 (예전같으면 밤새 술집을 전전했을텐데 골프를 시작하고서 가장 좋아진 점이 운전해야 되니까 술은 안마십니다 이럴 수 있다는 거?). 이렇게 모이자니 충청북도가 가장 적당한데 음성, 진천, 충주 등지에 가성비 짱짱한 골프장들이 많다 (한편 레인보우힐스 정도를 빼면 아주 뛰어난 코스를 꼽기도 어려운데 아무래도 서울에서의 거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초여름의 충북 산골짜기는 무조건 아름답기 때문에 어디를 가더라도 즐거운 라운드일 것은 분명한데 이런 경우에는 가성비와 관리상태가 최우선 고려대상이 된다. 몇군데 후보를 정해놓았으나 선택은 우리의 몫이 아니었다. 어디든 막상 부킹을 잡으려니까 적당한 티타임이 잘 나오지 않는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어쩌니 해도 골프장만은 성업이라 결국 우리의 선택은 작년 가을에 이 멤버들 그대로 갔었다가 비바람으로 중간에 포기했었던 동촌 골프클럽이다.

곤지암의 남촌 cc에도 예전에는 여러번 갔었는데 어째 골프에 재미가 들린 최근에는 기회가 나지 않는다. 꿩대신 닭은 아니겠지만 같은 회사에서 충주 부근에다가 만든 동생같은 골프장이 동촌 골프클럽인데 설계자는 마찬가지로 송호 디자인이다. 이 분이 만든 골프코스에 대한 내 느낌은 티박스에서 바라보면 아름답고 비교적 편안한 페어웨이, 그러나 세컨샷으로 그린을 노리기가 쉽지 않은데다가 엄청나게 커다랗고 어려운 그린인데 사실 한국사람들이 좋아하는 디자인 철학이다. 국내 설계자들은 거기에다가 조경을 조금 더 신경쓰는 느낌인데 이는 내장객들의 취향을 고려한 탓일 것이고, GIR을 위해 다양한 전략을 구상하는 것은 외국 코스에 비해 조금 모자란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서울에서 출발한다면 이천이나 여주의 골프장을 갈 생각에다가 십오분 정도만 더 할애하면 여기처럼 아름답고 가격도 착한 충청북도 코스들을 경험할 수 있다. 작년에 가보았을 때에도 (비바람 때문에 후반 몇몇 홀은 포기해야 했지만) 좋은 기억이어서 언제 날잡아서 충주쪽 골프장들을 집중 공략할 계획도 있다. 실은 충주라는 동네가 내 젊은 시절의 상당부분을 차지하였던 동네라 (그러나 충주 시내를 들어가본 것이 어언 십수년전이고, 최근에는 외곽의 골프장들만 가보고 있다) 하루이틀 정도 묵으면서 골프도 치고 추억의 맛집순례도 하고 그러면 좋겠다. 코로나가 끝난 후의 내 버킷리스트라고 할 수 있다.

각설하고...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 근처의 맛집인 (그러나 왜 맛집인지는 잘 모르겠는) 중앙관에서 짬뽕과 탕수육으로 점심을 먹고는 골프장으로 이동한다. 골프치면서 가장 즐거운 시간은 내 입장에서는 티타임 직전이다. 이때는 심지어 "너무 잘치면 어떡하지?" 괜한 걱정까지 드는 때다. 서코스 첫 홀에서 내려다보는 동촌의 코스 레이아웃은 우리가 대한민국 골프장에 기대하는 그대로라고 할 수 있다. 아름다운 경치에 비교적 편하게 내지를 수 있다. 특히 4번 홀과 같이 도그렉 페어웨이가 좌우로 펼쳐진 스타일은 내가 좋아하는 편인데 장타자는 그린 근처로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 짤순이는 안전하게 보내서 쓰리온이 가능한 설계다. 그밖에도 여기 파 4 홀들은 호수와 벙커가 나름 자리를 잘 잡아서 아름다우면서도 날이 섰다. 커다란 그린은 경사가 심하기 때문에 깃대의 위치를 고려하여 무조건 홀컵의 아랫쪽을 공략하지 않으면 낭패를 본다.

후반으로 접어들어 동코스 1번은 좌측의 벼랑을 끼고 도는 도그렉인데 티샷이 좀 나가는 장타자는 드라이버를 포기해야하지만 내 기억에 정말 나도 이런 샷을 칠 수 있구나 스스로 놀랄 정도로 멋진 티샷의 기억이 있는 홀이다. 계곡이나 물을 넘겨서 돌아가는 동코스 4, 5번도 어디선가 본듯한 레이아웃이지만 도전욕을 자극한다. 부담없이 좋은 이들과 즐거운 라운드를 마쳤는데 샤워를 하며 드는 생각이 좋은 스코어가 몇번 반복되고, 심지어는 나도 놀랄 정도로 공이 원하는 대로 날아가주는 경험을 하니까 어이없게도 슬슬 골프에 대한 재미가 엷어지는 것을 느낀다. 전에는 해도 해도 안되니까 더 오기가 났었는데 이제는 사람들과 얘기하고 경치 구경하고 하는 것이지 코스 공략에는 관심이 떨어지는 것이다. 여간해서는 80대 초반을 벗어나지 않으니 내 수준에는 최선이라고 생각하며, 짠싱글이니 언더파니 이런 거는 기대하지도 않는다. 이런 얘기를 동반자에게 하니까 그러면 이제부터라도 내기를 해서 돈따는 재미를 느껴보거나 빽티에서 치라고 한다. 좀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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