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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골프장

안양

hm 2021. 6. 27. 06:35

국내 최고의 명문이라고 꼽히는 이유로 서울에서 가깝다거나 코스가 훌륭하다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역사와 전통, 그리고 (때로는 사람을 섬뜩하게 만드는) 관리가 안양 cc를 다른 골프장과 차별화하는 요소다. 외곽순환도로 산본 ic 아니면 영동고속도로 부곡 ic에서 나오면 금방인데 세월이 흐르면서 주변에 아파트와 건물이 들어차버려서 지금은 큰길을 가다가 갑자기 옆에 나타나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그런 골프장이 되었다. 2010년에 처음 가보았을 때는 대로를 지나다가 갑자기 네비가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그러고 안내를 종료해버려서 황당했던 기억이 있는데 막상 들어가면 도심에 이런 곳이 있을까 싶게 별천지다. 즉, 도시에 둘러싸여 있지만 몇몇 홀에서 보이는 아파트를 제외하면 바깥 세상과는 완벽하게 차단되어 있다. 1968년에 일본인인 미야자와 조헤이 (宮澤長平)의 설계로 개장했다가 97년에 Robert Trent Jones 주니어에 의해 리노베이션을 했었고 (이때의 명칭은 안양베네스트였음), 2012년에 일년간 문을 닫고는 다시 대대적으로 코스를 고쳤다. 나는 2010년 봄에 몇차례 방문했던 적이 있었고 (그러나 워낙 초보였던 시절이라 그냥 힘들었던 기억밖에는 없었다), 리노베이션이 끝난 2013년 봄부터 매년 한두번씩은 올 기회를 만들고 있다. 웬만한 사람도 돈이 아무리 많아도 함부로 오지 못한다는 이 골프장에 비교적 쉽게 부킹해서 올 수 있음에 지금의 직장에 감사할 일이지만 사실 웬지 사람을 주눅들게 하는 분위기에 '무슨 골프장이 이렇게까지 거창해야 하나?' 싶어서 별로 좋아하던 코스는 아니다. 종종 같이 골프를 치던 이들이 한번씩 데려가달라고 하도 부탁하길래 부킹을 하기는 하는데 앞뒤로, 그리고 클럽하우스에서 tv에 나오는 정치인이나 모모 기업의 회장님들 뭐 그런 사람들을 마주쳐야 하는 기분은 썩 편안하지가 않다.

수많은 나무와 잘 꾸며진 꽃밭을 따라 걷다가 보면 여기 조경비로 웬만한 골프장 하나쯤은 운영하겠네 싶지만 사실 너무 삐딱한 거 아닐까 조심스럽기도 하다. 사실 어려운 분을 접대할 일이 생긴다면 안양 cc보다 더 적당한 장소는 떠오르지 않는다. 차를 몰고 들어가 클럽하우스 입구에 차를 세우면 그냥 내리면 되고, 끝나고 샤워를 마치면 (계산은 물론 해야함^^) 그냥 다시 밖으로 나오면 앞에 세워진 내 차에 채와 가방이 다 실려있다. 이런 식의 서비스를 요새 몇몇 (비싼) 회원제 골프장에서도 하는 모양인데 작위적이지 않게 부담없이 이뤄지는 곳은 안양이 유일하다. 안양은 카트를 타지 않고 걷는 코스이니만큼 전반적으로 평탄하다. 캐디 두 사람이 전동으로 움직이는 풀카트를 밀고, 플레이어는 내내 걷는다. 카트를 타고 다니는, 그러나 카트길로만 다녀야하는 다른 코스에 비해 대단히 힘든 것은 아니다. 소심한 A형이라 그런지 요즘에 좀 공이 맞는다 싶어도 예전서부터 같이 쳐왔던 사람들과 함께하면 다시 완전히 망가져버린다. 드라이버도 아이언도 영 별로였는데 얘들에게 내가 예전의 그 백돌이가 아니야 뭐 그렇게 외치고픈 마음이 들었던 걸까? 아무튼 무지하게 빠르고 복잡한 그린 덕택에 최종 스코어는 비슷하게들 나왔으나 골프가 잘 풀린 날은 아니었다. 덥기도 했지만 걷는 것이 의외로 힘들었다. 그래도 공이 안 맞는다고 신경질이 나거나 더 망가지지는 않았으니 (그냥 오늘은 좀 안되는 날인갑다 정도?) 이제 내 골프에도 발전이 있는 셈이다. 계속 돈과 노력을 엄청나게 들인 좋은 골프장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지만, 그리고 그들 상당수가 안양을 벤치마킹하면서 자기들도 안양처럼 되고싶어 하겠지만, 안양 컨트리클럽은 분명 우리나라에서는 독보적인 곳이다. 프라이빗 코스에 요구되는 희소성, 전통, 탁월함을 모두 갖추고 있고, 최고의 명문이라는 자존심도 대단하다. 내가 느끼는 불편함은 뭔가 몸에 맞지 않는 고급 수트를 걸친 그런 것일텐데 실은 여기보다 사람을 더 주눅들게 만드는 회원제 골프장들도 국내에 여럿 생겼다.

주저리 주저리 적었지만 골프코스라는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여기는 분명 국내 탑급이다. 18개의 홀들이 모두 제각각의 개성이 넘치는 안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홀을 꼽자면 우선 우측 도그렉에 내리막 티샷을 하는 5번이 떠오른다. 저멀리 아파트를 향해 티샷을 하는데, 숲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 그린을 향해 우측으로 티샷을 보낼 욕망이 들겠지만 개울에 빠지기 쉽고, 좌측의 넓직한 쪽으로 가더라도 그린까지는 멀지 않으니까 안전한 공략이 중요하다. 이어지는 롱홀 6번은 티박스에서 내려다보이는 연꽃 연못을 넘기고는 다리로 건너가는 기분이 최고긴 한데 안전하게 연못의 좌측 페어웨이로 보내서 가는 편이 안전할 것이다. 후반에서는 일본식 정원같은 연못이 두고두고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13번 숏홀이 가장 아름답다. 비슷하게 아름다운 파 3 시그너처 홀이 17번인데 여기도 연못을 넘기는 식이지만 그린으로 건너가는 길의 꽃밭이 유명하다.

여기를 봄에도, 가을에도 가보았으나 역시 초록의 절정인 여름철에 가는 것이 (다만 18홀 내내 땡볕을 견뎌가며 걸어야함) 베스트라고 본다. 코스도 관리상태도 다 좋았지만 괜히 심술맞게 어디 흠잡을 곳은 없나? 찾게되는 마음도 있었다. 가장 최근의 리노베이션은 아마도 주변 아파트나 도로를 가릴 목적으로 키가 큰 나무들을 심는 것이 목적이지 않았을까 싶게 외부에 신경쓸 일은 적지만 몇몇 홀들의 티박스 뒷편으로 들리는 차량들의 소음은 어쩔 수가 없다. 최신판의 골프다이제스트 세계 골프장 순위에서 안양은 50위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럴만한 명문임은 분명하지만 여기가 Pinehurst No. 2나 리비에라 컨트리클럽보다 더 좋은 곳일까 (가보지 못했으니 나는 모른다) 의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통, 희소성 등의, 골프 외적인 요소들을 배제한다면) 가평베네스트나인브릿지가 우리나라에서는 최고 골프장이라고 생각한다. 코스의 재미로 말하자면 안양도 물론 세계에서 탑급이고, 실제 플레이해보면 보기보다 훨씬 어렵다. 그래도 안양의 명성은 골프코스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님을 모두 아실 것이다. 저도 안양 회원입니다만... 이런 대화가 사회에서 사람의 평판을 얼마나 좌우하는지는 골프치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다. 대중에게 문을 굳게 잠궈둔 골프장이기 때문에 골프다이제스트 등의 매체에서 정하는 골프장 순위가 정말로 거기 가보고 평가한 것인지는 의문인데, "안양이 최고라던데? 가보지는 못했지만 다들 그러더라고" 이런 식의 순위는 아니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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