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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에서 북쪽으로 한참을 올라가는 Sonoma 카운티의 해변가에 있는 이 골프장은 실은 숙소에서도 거의 두시간은 운전하는 거리라서 (100마일) 고려하지 않았다가 골프여행에 대한 생각이 좀 바뀐 탓에 고른 곳이다. 전에는 일출부터 일몰까지 죽어라 쳤었지만 슬슬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고, 한국에서도 두시간 정도의 운전은 큰 부담이 아니었기에 (그래도 두시간이면 저어기 아랫쪽의 페블비치까지도 갈만한 거리이긴 하다) 느즈막히 아침을 호텔에서 먹고 하루에 18홀만 치자는 생각으로 잡았다. Robert Trent Jones 2세의 설계인 18홀인데 이름에서처럼 바닷바람을 그대로 맞아가며 운동하는 링크스 코스다. Teeoff.com에서 프로모션을 찾아서 주말임에도 $42을 냈으니 바닷가 골프장 치고는 가격도 착하다. 여기를 잡으면서 내 유일한 걱정은 날씨였다. 11월의 샌프란시스코 날씨는 좀 변화무쌍해서 아침에는 섭씨 4도 정도에 한낮에는 25도까지도 올라가는, 일교차가 매우 심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주말이니 당연하겠지만 차가 꽤 들어찬 주차장에 차를 대고는 프로샵에 들어가기 전에 코스를 내려다보니 작년에 갔었던 Half Moon Bay 만큼이나 바닷가 골프장의 정의에 충실한 아름다운 풍광인데 가격은 거기의 1/3 수준이고 많이 붐비지도 않으니 라운드에 대한 기대가 한껏 높아져만 간다. 친절한 프로샵 직원 덕택에 예정된 티타임보다 조금 먼저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행운. 듣자하니 오전에는 안개가 심한 지역인데 우리처럼 10시쯤 시작하는 것이 베스트라고 한다.

1번 홀부터 여기는 전형적인 RTJ 코스로구나 생각이 든다. 가파른 오르막에서 바람을 거슬러 티샷을 가능한 멀리 보내야 하는데 덧붙여 페어웨이를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 이게 대체 뭐야 허둥지둥 5번 홀까지 가고보니 어디로 쳐야하나 감도 잘 오지 않는, 그러나 저 멀리 보이는 바다를 향해 쏴야할 파 5인데 그때부터 이제껏 다녀본 그 어디보다도 아름다운 광경에 잠시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아래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이후, 특히 후반의 홀들만으로도 이 골프장은 지금껏 내가 가본 100대 순위의 골프장들을 능가하는 그런 곳이 되었다.

조금은 다른 이유로 이날, 이 골프장은 내 골프인생에서 잊혀지지 않을 곳이 될 터인데 왜냐하면 5번 홀인가에서 내리막 러프를 카트로 내려오다가 미끄러지면서 그대로 떨어져버리는 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얼굴 한쪽과 무릎으로 바닥에 그대로 부딪혔는데 다행히 잔디밭이어서 피멍이 든 정도이긴 했으나 쓰러져서 한동안은 꼼짝도 못하겠더니 좀 쉬니까 죽지는 않을 것 같았다. 주섬주섬 일어나서는 (멍든 얼굴과 다 찢어진 옷차림으로) 다시 공을 치기 시작했는데 스윙은 되는 것을 보면 어디 부러진 곳은 없었던 것이다. 그냥 호텔로 돌아가서 쉴까 생각도 잠시 했지만 이정도 사고로 더 크게 다치지 않은 것도 하늘의 뜻이다 싶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 홀인 6번 홀에서는 푸쉬가 난 공이 근처의 집 테라스에서 파티하던 사람들 쪽으로 날아가서 하마터면 누군가를 정통으로 맞출 뻔 했다. 얼른 달려가서 제대로 숙여지지도 않은 목으로 연신 사과를 하고 넘어가긴 했으나 여기서 완전히 멘붕이 와버렸다. 그래도 결국 다 치기를 잘했다 싶은 것이 그냥 갔더라면 웅장한 마지막 3개 홀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16번 홀을 무성한 갈대밭 너머로 가로로 길쭉한 페어웨이가 펼쳐진 파 4인데 여기서부터는 카트를 그냥 세워놓고 백을 둘러매고 걸어야 한다. 블루티에서 페어웨이의 맨 오른쪽 끄트머리까지는 150야드 정도이고, 왼쪽으로 그린까지는 270야드쯤 되니까 자기 수준에 맞게 갈대밭을 넘겨야 한다. 17번의 파 3홀까지 치면 다시 카트를 세워둔 자리로 돌아오기 때문에 다시 카트에 타고 대망의 18번을 마치면 된다.

링크스 코스를 많이 다녀본 것은 아니나 내 경험으로는 숏게임이 매우 중요하다. 물론 백돌이는 일단 티샷이 페어웨이에 가야만 하겠지만 그린 근처 100 야드 이내에서 어떻게하느냐가 스코어를 좌우한다. 커다랗고 몇단으로 복잡하게 생긴 그린은 의외로 빨라서 마치 언덕에 맞은 공처럼 흘러내린다. 골프 이외의 중요한 요소는 날씨인데 특히 바람이 얼마나 부느냐가 최고의 또는 끔찍한 하루를 결정한다.

그러나 링크스 코스에는 따로 만들어둔 해저드나 벙커가 적다. 어차피 무성한 페스큐가 해저드고, 그린에 적중하는 어프로치샷이 아니면 다 트랩이다. 나무가 적은 것도 특징인데 Links at Bodega Harbour에는 주변에 주택가도 많이 있고 해서 아주 살벌한 풍경은 아니었다. 페어웨이에는 잔디가 죽은 부위도 좀 있었으나 플레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바닷가 링크스 코스를, 그것도 저렴한 가격에 경험했으니 조금 다친 것과 왕복 네시간의 운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혹시 하루 자고나면 엄청 아플라나 모르겠으나) 돌아오는 길의 졸음도 중간중간에 멈춰서 밥도 먹고 쇼핑도 하고 했더니 역시 큰 문제는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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