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yonet, Seaside, CA

페블비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샌프란시스코 남쪽에는 늘 칭송받는 골프장들이 몇군데 있는데 Half Moon Bay나 Pasatiempo 말고도 여기 Bayonet/Black Horse 골프클럽이 그렇다. 이름처럼 Bayonet 18홀과 Black Horse 18홀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리는 하루에 양쪽을 모두 돌아볼 작정으로 오전에는 Bayonet, 오후는 Black Horse 코스로 부킹하고 떠났다. 홈페이지의 정가는 18홀에 $140이고, 36홀 패키지가 인당 $185인데 Golfnow에서는 $85씩에 부킹이 가능했으므로 합하면 36홀에 $170이다. 여기도 원래는 Fort Ord 군부대 골프장이었다가 일반에 개방된 역사가 있는 곳으로, 원래 설계자는 Robert MacLure 장군이었는데 슬라이스가 심한 왼손잡이 골퍼였기 때문에 왼쪽 도그렉을 선호했다고 한다. 이후 군대가 떠난 상황에서 Gene Bates가 리모델링을 했다. 이 사람의 작품들 중에 내가 가본 곳은 없으나 싱가폴의 Sentosa 골프클럽도 만들었다니 나름 잘나가는 설계자다.

호텔에서 한시간 이상 걸리는 위치라서 캄캄한 새벽에 길을 나서려니 비로 곳곳이 물웅덩이가 되어버린 고속도로에서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다. 취소할까 고민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안 그러길 정말 잘했지만 그야말로 목숨을 건 레이싱이었다. 세차게 내리던 비가 약간 잦아들 무렵 약간 쌀쌀함을 느끼며 전반을 시작하는데 바다가 지척이긴 하지만 언덕과 숲이 아름다운 코스다. 관리상태도 좋고 도그렉이지만 페어웨이도 그럭저럭 넓다. 편안해서 공도 잘 맞지만 이거 기대만 못하네? 그런 이율배반적이 생각도 든다. 그러다가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코스가 드라마틱해진다. 10번 홀부터 도그렉이 연속으로 나오는데 페어웨이 양쪽 그리고 중간에도 아름드리 나무가 울창해서 오래된 티가 났지만 정말 아름다왔다. Bayonet은 전형적인 캘리포니아 골프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야트막한 언덕과 무성한 숲, 울퉁불퉁해서 어디로 튈 지 모르겠는 그린과 페어웨이 등등이 특징이다. 그린은 벙커로 철벽방어되어 여간해서는 공을 올리기 힘들다. 벤트그라스 페어웨이에다가 그린까지 관리상태도 완벽했는데 비로 군데군데 젖은 것만 아니라면 비싼 값을 하는 골프장이다.

느려터진 미국인 포썸 탓에 느릿느릿 진행되더니 중간에 우리를 패스시켜준 덕택에 3시간반 정도로 라운드를 마쳤다. 놀러나온 것이지 골프치러 온 것은 아닌듯 보이는 미국사람 팀들은 뒤에서 보고있자니 정말 못친다. 나도 (지금도 어디 내놓을 수준은 아니지만) 초보인 시절이 있었으니 뭐랄 것은 없으나 쌩초보들도 유독 그린에 올라가면 엄청 오래 시간을 끈다. 멀리서 바라보는 한국인 골퍼에게는 답답하기 그지없는 광경인데 골프가 공을 치는 스포츠라고 배운 우리는 일단 그린에만 올라가면 관대해지지만 이 스포츠가 공을 구멍에 넣는 것이라고 배운 저들에게는 퍼팅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겠나 싶어 이해는 간다. 예전에 미국에서 어린이들 골프수업을 옆에서 지켜본 바에 의하면 제일 먼저 퍼터부터 쥐어주고 그린에서 공을 굴리는 연습부터 시키던데 똑딱이로 시작해서 닭장의 그물을 향해 죽어라고 공을 치는 우리네 연습과는 많이 다르다. 어느 쪽이 더 좋은 것인지 답은 없겠으나 나도 역시 한국인이라 공을 멋지게 창공으로 날리는 편이 더 좋다.

몬터레이 바다가 근처임을 비로소 깨닫는 것은 마지막 18번 홀에서인데 비가 그친 덕택에 그린 너머로 푸른 바다가 모습을 드러낸다. 아침에는 취소할까 말까, Bayonet 전반에는 18홀만이라도 쳐야지 그러다가 화창해진 날씨를 보고는 오후 라운드를 위해 클럽하우스에서 급히 점심을 먹었다. 공이 모자랄 것 같아서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날아온 프랙티스 공을 몇개 주웠는데 역시 좋은 골프장이어서 그런지 제대로 된, 깨끗한 테일러메이드 공이다. 이번에 미국으로 오기 몇일 전에 쇼핑몰에서 싸구려 공을 잔뜩 주문해서 호텔로 배송을 부탁했는데 이게 좀 늦어지고 있으니 이따가 저녁까지도 오지 않으면 내일도 이런 연습장 공으로 칠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