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몇년전부터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꼭 가보고싶었던 골프장이 Diablo Grande인데 실은 이 Patterson이라는 동네가 산호세에서도 동쪽으로 한참을 들어가야 하기에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그냥 (대지옥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뭔가 있어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위치 탓인지 가격도 착하고, 리뷰도 호평이길래 언젠가는 꼭 가봐야지 했었는데 원래 The Legend와 The Ranch 이렇게 두개의 18홀로 이루어진 코스라서 잘만 찾아보면 평일에는 인당 $60 정도에 36홀 라운드가 가능한 곳이었다. 막상 방문계획이 현실이 되자 문제가 생겼는데 캘리포니아 지역의 오랜 가뭄으로 한쪽을 폐쇄하고 The Ranch 코스만 운영한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게다가 원래의 코스가 아니라 그나마 잔디가 온전한 홀들을 모아서 18홀을 다시 구성했다고 하니까 두 코스가 뒤섞인 셈이다. 원래의 The Legend 코스는 잭니클라우스가, The Ranch 코스는 (오히려 이쪽이 더 전설일 것 같은데) Gene Sarazen이 만들었다고 한다. 진사라젠이 코스 디자인도 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지만 아무튼 그의 코스가 어떤 식일런지 무지 궁금하기도 했다.

(추가) 홈페이지에는 The Ranch 코스를 진사라젠과 Denis Griffiths가 함께 설계했다고 나와있는데 1993년에는 진사라젠이 이미 90세를 넘겼을 것이므로 실제로는 Denis Griffiths가 대부분을 주도했을 것이다. 그리고 막상 가보니 The Legend 코스는 아예 황무지로 변해버린 듯 하고, The Ranch 코스만으로 앞으로 유지할 모양이다.

월요일 오전 정가는 $69인데 핫딜로 나온 $22 티타임이 있고, 거기에 20% 할인하는 프로모션까지 먹이니까 $18 카트포함 그린피는 거의 날강도 수준이다. 이 날도 18홀만 돌기로 했으므로 어제처럼 늦잠을 자고서는 호텔에서 아침을 느긋하게 먹고 출발이다. 그래도 정체가 없어서 한시간 반을 예정했건만 한참 일찍 골프장에 도착했다. 어차피 월요일에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티타임 예약과는 상관없이 그냥 출발하면 될 것인데 프로샵의 얘기로는 이날 예약자는 우리까지 총 4팀이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바람이었다. 전날 찾아본 일기예보에서는 풍속 12 m/s 정도의 바람이 분다고 했는데 그게 어느정도인지 실감이 나지 않았었지만 막상 가서 보니 서있기도 힘든, 그린에서 공이 저절로 굴러가버릴 정도의 심한 바람이다. 거대한 주택가 커뮤니티에 딸린 골프장인데 페어웨이 주변의 집들을 보면 이런 외진 동네에, 춥고 황량한 사막에 도대체 누가 와서 사는지 궁금해진다. 위치도 가뜩이나 나쁜데 차가운 바람이 많이 부니까 역시 예상대로 썰렁했고, 친절한 프로샵 직원은 모자가 날아가지 않게 끈으로 묶으라는 둥 저 거센 바람속으로 출정하는 우리를 걱정해준다.

겨울임이 무색하게도 페어웨이와 그린의 상태는 완벽했다. 해가 뜨고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잔디가 촉촉해서 여기 가뭄 맞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코스는 듣던 바와 같이 무지 어려웠는데 좁아터진 것도 아니고 빤히 공을 보낼 지점이 눈에 들어오는데 뭔가 불안해서 공을 치기가 어렵다. 웬만한 코스에서는 그래도 페어웨이를 지켰을 샷도 바람을 타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 상황을 몇번 겪으니까 자신감도 사라져간다. 기왕이면 이번 골프여행의 대미를 장식하는 라운드라서 좀 재미있게 쳤으면 했는데 너무 어려운 코스를 골랐나 싶기도 했다. 그래도 몇 홀을 지나면서는 샷이 좋아져서 비록 GIR은 어려웠지만 기분이 나아졌다. 이날의 문제는 역시 날씨였다. 어제 Yocha Dehe에서 보다도 심한 바람이 불어 퍼팅을 위해 공을 놓으면 흔들려서 엉망이었다. 이런 날에는 멘탈도 스윙도 망가져서 네시간의 고행이 되기 일쑤였지만 이번에는 좀 덥다 싶을 정도로 옷차림에 대비를 해왔고, 공이 생각처럼 잘 맞아주어서 그냥 재미있게 쳤다. 예전에 제주도에서 바람을 맞으며 공치던 생각도 났다. 춥던 덥던, 바람이 불던 비가 오던간에 스윙이 잘 되어서 공이 쭈욱 날아가주면 그 공이 설사 불운으로 해저드나 벙커로 가버려도 허허 웃음만 날 뿐 즐거워지는 것이다. 퍼덕거리고 쪼루가 나고 그러면서 자신감이 사라지면 반대로 그건 골프가 아니라 4시간의 고행일 뿐이다.

아마도 이 날씨에 오늘의 손님은 달랑 네 팀이 다일 것 같은데 우리가 세번째였다. 저 앞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천천히 경치도 음미하고 그러는 것은 좋은데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어서 온몸이 따끔거리는 것은 정말 최악이었다. 게다가 카트에는 gps가 달려있지 않았는데 18홀 내내 와이파이는 커녕 전화도 터지지 않는 사막이라 거리를 보기가 쉽지 않았다. 예전에 선물로 받았다가 쓸 일이 없어 다시 누구 줘버린 부쉬넬이 아쉬운 상황이었다. 물론 거리고 뭐고 잘 날아가다가 세찬 바람에 확 휘어버리는 공의 입장에서는 거리측정기가 큰 도움은 되지 않았지 싶다. 그래도 코스의 디자인과 경치는 어제의 Yocha Dehe 못지않아서... 실은 거기보다도 더 드라마틱한 경치... 1/4 가격에 이정도라면 불만이 없어야 마땅하다 (사실 이번에 18홀 6군데를 돌았지만 골프에 들어간 총비용은 지난 주말 송추 cc에서 쓴 돈보다도 적었다). 스코어는 좀 다른 문제겠지만 요새는 공이 생각한대로 맞아주면 꼭 버디나 파를 하지 못해도 그냥 좋다. 가령 160 미터를 보고 고민스럽게 5번 아이언을 휘둘렀는데 멋지게 날아가서는 그린 옆의 벙커로 빠지거나 뒷편으로 사라지면 그래도 나는 행복해한다.

Diablo Grande의 The Ranch 코스는 딱히 시그너처 홀이라 부를 곳이 없게 다 장관이지만 특히 12번, 빽티에서 650 야드이고 화이트티에서도 580 야드가 넘는 파 5 홀은 양쪽으로 아름드리 나무들이 빽빽한 좁은 페어웨이를 관통해야 하는 멋진 홀이다. 간신히 산의 정상에 위치한 그린에 다다르면 숨이 턱 막히는 뷰가 펼쳐진다. 페어웨이 우측으로 해저드를 건너 그린을 노려야하는 13번 홀도 멋지다. 어제에 이어 백돌이가 된 날이었으나 스코어에 상관없이 공이 생각한대로 맞아준 것에 만족한다.

끝나고 보니 오후 1시. 일단 호텔로 돌아와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나니 좀 살 것 같아져서 원래 계획했던 대로 Livermore 프리미엄 아울렛을 들러 쇼핑과 식사를 하고나니 역시 하루에 18홀만 치기로 한 것이 잘했구나 싶다. 여기 아울렛에는 프라다, 구찌, 아베크롬비, 노스페이스 등도 있어서 쇼핑하는 맛이 있다. 심지어는 테일러메이드 골프샵도 있어서 다음 달의 자카르타 원정에 대비하여 Lethal 공을 좀 샀다. 귀국 짐을 싸는 것도 여유로왔다. 다만 숙소의 위치를 좀 어중간하게 잡았다 싶어서 다음에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골프치러 온다면 숙소는 Dublin 정도에 잡으면 좋겠다 생각한다.

 

'미국 골프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e Bridges, San Ramon, CA  (0) 2020.02.27
Presidio, San Francisco, CA  (0) 2020.02.27
Yocha Dehe, Brooks, CA  (0) 2020.02.26
Bodega Harbour, Bodega Bay, CA  (0) 2020.02.26
Roddy Ranch, Antioch, CA  (0) 2020.02.25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TAG
more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