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코로나 때문에 오히려 요즘에는 더 죽어라고 골프치러 다니는 것 같다. 겨울에는 해외에도 몇번 나가주고 했어야하는데 속없는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그래도 한번이라도 더 잔디를 밟아보고자 발을 동동 구르게 된다. 적당한 가격에 (평일이라 오전에는 일을 해야하니까) 너무 멀지 않은 곳을 찾다가 오래전에 가봤지만 코스에 대한 기억은 없는 안성 콘트리클럽이 잡혔다. 개장한 지 수십년인 이 골프장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으로 Douglas Carrick을 모셔다가 설계했는데 이 사람은 주로 캐나다에서 활동하지만 유럽에서도 (Hans Erhardt와 함께) 비엔나 인근의 Fontana 골프클럽이나 헝가리의 Pannonia 컨트리클럽 등을 만들었던 사람이다. 골프가 여전히 있는 자들의 사치였던, 그래서 일본식의 편안한 회원제가 대세였던 90년대 초반을 떠올려보자면 대충 만든 코스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시작이 어땠건간에 주변에 골프장이 드글드글한 지금은 비회원에게도 문이 열려있고, 심지어는 이런 이름의 골프장이 있는지도 사람들이 잘 모르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일죽 ic로 나가면 금방인데 늘 공사중이라 막히는 중부고속도로에서 다들 골프치러 가냐 왜 이리 막히냐?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도착한다. 불경기니 코로나니 해도 바글바글한 클럽하우스를 보면 대한민국의 골프열기는 해를 거듭할수록 더 뜨겁다. 첫 홀은 비교적 길지만 내리막인 파 4인데 앞의 팀이 그린에 도달할 때까지 티샷을 못하게 한다. 종종 원온이 나온다는데 아무리 내리막이라도 300 미터는 날아가야 가능할 거리인데 짤순이인 나도 세컨샷으로 갭웨지를 잡았으니 희안한 노릇이다. 이어지는 홀들도 계곡과 해저드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지만 티샷이 요즘 잘 맞는 나로서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티박스에서부터 가야할 지점이 빤히 보이고, 페어웨이에서는 그린이 보인다. 온그린을 방해할만한 장애물도 그린 주변에는 별로 없었다. 빠른 플레이로 전반 9홀이 한시간 반만에 끝났는데 금요일 오후니까 당연히 그늘집에서 30분이 넘게 기다려야만 했다.
후반에 접어드니 전반의 홀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4월 초순임을 감안해도 정말 아름다운 산골인데 12번 홀의 티박스에 올라서니 안성 cc의 전 코스가 고스란히 내려다보인다. 그러나 시그너처 홀이라면 단연 14번이었는데 넓고 편안해보이는 페어웨이에 공을 올려놓고 걸어가려니까 점점 깊은 숲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다. 주위는 고요하고, 해는 서쪽으로 기우는데 얼굴에 스치는 바람이 서늘하다. 천천히 그린을 향해 걷는데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니었는지 웃고 떠들던 동반자들도 비슷하게 조용하다. 비슷하게 산으로 둘러싸인 깊은 계곡의 느낌은 한림광릉 cc에서도 겪었는데 거기와 여기는 미묘하게 다르고, 아무래도 안성 cc가 더 고급스러운 적막감이다. 편안해 보이지만 이상하게 파를 잡기 어려운 코스여서 나를 비롯한 4인 모두가 백돌이가 되었지만 기분만큼은 좋았다. 그리고 너무 어두워지기 전에 18홀을 끝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동반자들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은근히 화제가 최근의 서울시장 보궐선거로 옮겨갔다. 나야 별로 가진 것도 없으면서 너무 급진적인 쪽은 꺼려하는 편이었지만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을 절대적으로 지지했던 모 인사는 일련의 비리와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생각이 많이 변한 모양이었다. 청렴하고 민중을 위할 것만 같았던 그들에 대한 배신감이랄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들이 받은 게 없고 청렴했던 것은 그동안 주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지 받기 싫어서 그랬던 것은 아닐 것이다. 권력과 부에 대한 바램은 거의 인간의 본성이라서 한번 경험해보면 이게 무슨 별세상이냐 이 좋은 것을 그동안 니네만 누리고 살았더냐 싶어지는 것이다. 힘없는 쪽이라고 무조건 옳고 욕심없을 것이라고 믿었던 생각이 순진한 것이었다. 이번에 승리한 쪽에 대한 기대는 일절 없지만 그래도 아직 대가리가 덜 깨진 분들도 삽십몇 퍼센트나 된다는 것을 확인한 선거였다. 이렇게 저렇게 돌아가면서라도 결국은 옳은 방향으로 세상이 나아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