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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골프인생에서 (막 머리를 올리고, 대체 이렇게 힘들고 재미없는 운동을 뭐하러 하는 걸까 생각하던 시절에) 처음으로 골프장이라는 곳이 정말 아름다운 곳이구나 느꼈던 곳이 광릉 cc인데 이후 가봤을 때는 이거 골프장이 뭐가 이렇게 후졌냐 생각이 들어서 발길을 끊었었다. 십수년째 내리막길만 걷다가 주인이 바뀌고, 이름도 광릉포레스트에서 한림광릉으로 바꾸면서 좀 나아졌다는 소문이 들리길래 다시 가보기로 했는데 평일임에도 가격이 어마어마해서 이제는 비싸게 받을 자신감이 생겼을까 은근 기대도 했다. 포천가는 길목이긴 한데 막히는 진접을 지나가야해서 교통은 별로 좋은 편이 아니고, 다만 대로에서 바로 인접한 곳에 클럽하우스가 있다. 그래도 막상 골프장에 들어서면 다른 세상인 듯 조용하다. 개장일이 1997년이니까 오래된 골프장인데 처음에 설계를 누가 했는지는 찾을 길이 없었으나 어딘가에서 가토 후쿠이치 (加藤福一) 씨가 광릉 cc를 만들었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참고로 용인의 레이크힐스가 작년에 이름을 한림용인으로 바꾼 것을 보면 아마도 같은 회사인 모양.
오래전 기억과 별로 달라보이지 않는 클럽하우스와 스타트 광장이었고, 북적이는 인파 속에서 우리 카트를 찾아 출발한다. 파인/글렌 코스의 순서였는데 오래된 코스답게 넓은 페어웨이에 양측으로 나무가 빽빽했다. 파인 1번은 우측으로 90도 돌아가는 롱홀인데 계곡의 그물망이 좀 에러였으나 무난하게 쓰리온으로 시작한다. 잔디의 관리상태도 계절이 좋아서겠지만 3부제 운영하는 골프장 치고는 괜찮아보였다. 그린은 물론 느렸고, 몇몇 홀에서는 티박스에 매트를 깔아놓았으니 주인과 이름이 바뀌었어도 좋다는 소리를 듣기는 글렀다 (그런데 비싼 그린피는 대체?). 그래도 워낙 좋은 입지에 공을 들여서 만들어놓은 코스라서 경치에 감탄하며 공치는 재미가 있었다. 억지스럽지 않은 디자인이라고나 할까, 파인 1번만 지나가면 주변에 문명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6번 홀에 도달하니 드디어 예전 기억이 났는데 티박스에서부터 커다란 호수를 지나가야하는 홀이며, 연꽃이 가득한 호수의 경치가 괜찮다. 물을 넘어 어프로치하는 9번도 근사했고, 좁은 시야에서 아일랜드 그린으로 치는 글렌 7번도 아, 여기도 기억난다 하면서 좋았다 (글렌 7번이 내가 쌩초보 시절에, 골프 이렇게 힘들고 재미없는 걸 왜? 하던 시절에 골프장이라는 곳이 아름답긴 하네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던 홀이다). 그리고 라운드를 마무리하는 글렌 8번과 9번이 광릉의 산세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아름다운 홀들이었다.
그럭저럭 재미있게, 예전의 추억을 곱씹으며 보낸 한나절이었다. 한림광릉에 대해 흠을 잡을 부분도 있었지만 단점은 인터넷으로 잠시만 검색해보면 엄청나게 나오는 곳이다. 수상한 세월에 그나마 골프장에라도 갈 수 있어서 다행이니 여기서는 좋은 기억만 남기고 싶다. 이곳의 지형을 금계포란(金鷄抱卵)이라고 표현하던데 닭이 알을 품는 형상이 좋은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풍수지리에서는 최고의 위치로 치는 모양이었다. 천혜의 입지를 차지해놓고 왜 이렇게밖에 못하냐 안타깝지만 포천, 가평에서 흔한 풍광과는 약간 달라보였다. 산기슭에 페어웨이를 놓은 것이 아니라 봉우리 사이사이로 간다. 이런 식이 더 멋지다는 얘기는 아니고, 어려운 편은 아니었다. 궁금했던 부분, 주인이 바뀌었으니 좀 나아졌을까, 이거는 별로 달라진 부분이 없다는 것이 내 의견이다. 그래도 기대가 작으면 실망도 덜 하는 법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산자락에서 즐거운 라운드를 했는데 스코어마저 좋았다면 나는 별로 불만이 없다. 대개 우리나라 골프장에서의 불만은 운영이나 가성비 등에서 생기는 것이지 코스 자체는 욕할만한 곳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