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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회원만 부킹이 가능해야 진정한 회원제 골프장이라는 게 내 생각인데 물론 회원권을 살 형편은 안되니까 주변에 누가 초대 한번 안해주나 그저 두리번거릴 뿐이다. 최근 몇년 사이에 개장한 골프장 중에도 배타적이고 근사한 곳들이 있지만 오랜 전통을 자랑하면서도 여전히 회원이 아니면 발을 들여놓기 힘든 몇몇이 있는데 (제일 cc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송추 cc도 그중 하나다. 개방이냐 망하느냐의 갈림길에서 고민해야하는 요즘 골프업계에서 이런 방침을 고수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덕택에 송추=명문의 등식을 유지하는 것 아닐까? 20년쯤 전에 송호 디자이너의 데뷔작으로 만들어진 (그런데 아마 송호 씨는 김명길 씨의 밑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으니 둘의 합작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골프장이고, 나는 2년쯤 전에 한번 가볼 기회가 있었는데 화려하지는 않지만 잘 관리돠고 어려운 곳이었다는 기억이다. 이번에는 아는 사람을 통해 어렵사리 부킹을 했는데 언젠가 송호 씨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바에 의하면 그의 설계철학은 아마추어를 위한 골프장이라고 했다. 아마추어도 티샷으로 페어웨이에 올라가야 하고, 그린도 적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대신에 변별력은 공이 떨어진 이후에 나와야 한단다. 스윙기술보다는 상상력을 테스트하는 골프코스를 만들고자 한다는 그의 생각에 나는 100% 동감하는데 (불행하게도) 젊은 패기로 만들었을 송추 cc는 그런 스타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송추 cc는 경기도 파주와 양주의 경계쯤에 있고, 진입로가 상당히 가파라서 자전거 타는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출사지이기도 한데 잠실의 집에서 가려면 꽤나 일찍부터 서둘러야 하는 입지다. 주말 내내 비가 내리는 탓인지 별로 막히지 않는 외곽순환도로를 타고 도착해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가보니 이미 중지 페어웨이는 초록의 절정이다. 핸드폰의 카메라로는 저 아름다운 색의 조화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한다. 비오고 덥고 했지만 생각하면 이런 시기니까 나같은 비회원에게도 차례가 돌아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비는 다행히 그친 듯 하지만 가랑비가 오다가 말다를 반복한다. 몸이 굳어서인지 요즘 안나던 슬라이스가 나오길래 헤드를 빨리 보내는 것에 신경써서 그런지 티샷은 훅이 나면서 오비. 겨우 그린에 도달하니 포대그린에 투그린이라 작으면서 엄청 단단하고 빨라서 그린을 오바. 가뿐하게 양파로 시작하게 되었으나 스코어카드에는 파로 적히는 것을 보고 이거 지적하고 고쳐 말어? 잠시 고민하게 된다. 나름 오래된 골프장이라 숲이 풍성하다. 잘 가꾼 티가 나면서 아마 원래부터도 아름다왔을 산골이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총소리에 몇차례 놀라기는 했어도 막상 골프치는 이들에게는 별로 방해가 되지 않았다. 코스는 상당히 어려운 홀들이 있어서 호불호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근방의 서원밸리와 비교해도 경치, 관리상태, 직원들의 친절함, 코스의 재미 등등이 모두 송추 cc의 승리다. 클럽하우스 식당의 음식맛은 그 비교대상이 서원밸리 정도가 아니라 안양 혹은 해슬리 나인브릿지가 비교대상이다. 강남에서 멀고, 비회원은 발을 들여놓기가 힘든 것이 단점이지만 (내 주관적인 평가로는) 서원밸리보다는 분명히 더 좋은 골프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