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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날씨에 골프장 가격도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어서 지인들과 어디 시원하고 싼 동네로 일박이일 다녀옵시다 의기투합하고는 찾다보니 전라남도 강진까지 간다. 충남 당진이나 전북 군산쯤이 좋다던데요, 기왕 가는거 해남 파인비치를 가볼까요 했는데 막상 알아보니 우리가 원하는 날짜에 적당한 가격으로는 불가능했기에 차선책으로 선택한 곳이 다산베아채다. 이름이 좀 헷갈리던데 영어로는 Beache로 쓰고, 우리말로는 베아채 (배아체 아님)로 쓴다. 몇달전 장흥 JNJ도 그랬지만 강진이라는 지역이 서울에서라면 가장 먼 동네일 것인데 일요일 아침에 모여서 출발하니 4시간반 정도가 걸렸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누군가가 사우스케이프나 파인비치는 몇몇 홀에서 바다가 보이지만 다산베아체에서는 몇몇 홀에서만 바다를 볼 수 없다고 적은 글을 보았으니 경치만큼은 가보지 않아도 근사할 것이 분명했다. 여기는 퍼블릭 27홀로 작년에 개장하였는데 설계자가 어디는 성치환 씨라고, 어디는 구로사와 나가오 (黒沢長夫)라는 분이라고 나와있는데 아마 둘이 같이 작업한 모양.
하필이면 장마철이라 내려가는 내내 빗길이었는데 구름이 북상하는 것인지 전라남도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빗줄기가 가늘어졌다.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는 코스로 진입하면서 보니까 (비가 와서인지) 진한 초록의 잔디가 보인다. 장마에도 취소가 별로 없는지 북적거리는 클럽하우스였는데 친절한 프론트 여직원이 서울에서부터 고생하고 오셨다며 예정보다 20분 정도 일찍 출발하게 해주었다. 우리는 첫날에 장보고/다산 코스의 순서로, 이튿날은 다산/베아체 순서로 돌았다. 36홀 패키지가 24만원이라고 싸다고 했지만 막상 와서 보니까 일요일 오전의 그린피가 10만 9천원이라니 수도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저렴함이다. 싸다고 별로는 아니어서 과연 바다를 조망하며 치는 코스인데 다만 드넓은 대양이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강진만의 좁은 바닷길이라 건너편 육지가 눈에 들어온다. 몇몇 홀에서의 바다조망은 기대이상이어서 어떻게 이런 곳에다가 골프장을 허가해주었을까? 내지는 고급 주택가나 카페가 자리잡아도 좋았을텐데 싶었으니 요즘 지자체의 어려운 사정 탓이었을까 싶었다. 그러고보니 강진이라는 동네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 귀양살이를 십년넘게 했던 곳이니까 오지라면 오지다. 오밀조밀하게 섬과 육지가 보여서 이것도 나름 독특한 풍경이었다. 바닷가라고 링크스가 아닐까 생각했으나 이쪽으로 저쪽으로 바다가 보일뿐 여기도 언덕을 오르내리는 산악지형이었다. 뷰를 중요시하는 내 입장에서는 밋밋한 평지보다는 이렇게 코스를 올려보거나 내려다보는 식이 더 좋다. 심하지 않은 도그렉에 페어웨이 주변으로도 물이 많아서 도전의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골프장 소개책자에는 강진만을 바라보는 장보고 코스, 만덕산이 둘러싼 다산 코스, 그리고 가우도를 바라보는 베아체 코스라고 되어있는데 코스 어디서나 바다가 보인다. 결론적으로 다 맘에 든 골프장이지만 굳이 가장 근사했던 홀들을 꼽자면, 아일랜드 그린으로 치는 파 3홀인 장보고 6번, 저멀리 바다를 바라보는 파 5 홀들인 다산 2번과 8번, 그리고 그린 뒷편의 그늘집에서 최고의 뷰가 펼쳐지는 베아체 5번 등이었다. 특히 베아체 5번은 하늘에 붕 떠있는, 독특한 느낌을 주는데 조경을 위해 심어놓은 나무들이 바다조망을 방해해서 살짝 아쉬웠다. 그래도 최고의 홀은 라운드를 마무리했던 베아채 9번이었다. 장타자라면 페어웨이에서 계곡을 넘겨 클럽하우스 앞으로 높게 솟은 그린까지 투온을 노려볼만하고, 내 경우에는 페어웨이 끝까지 가서 써드샷을 했는데 높게 띄운 웨지샷이 하늘높이 날아가 그린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짜릿했다. 이틀간의 스코어도 경치도 모두 만족스러웠다. 파인비치에서 비치 6번처럼 와우~ 하는 홀은 없었어도 코스 전체적으로는 여기가 더 좋았다. 이 좋은 골프장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칠 수 있었던 것은 전라도라는 지역이 갖는 커다란 장점이다. 귀가전에는 캐디의 추천으로 근처 갈비탕집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물론 맛있었지만 어제 저녁은 만원짜리 (상다리가 휘어지는) 한정식, 오늘 점심은 2만원짜리 갈비탕이라니 좀 이상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