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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초부터 해외를 나가보지 못했는데 그래도 제주도라도 갈 수 있으니 다행한 일이다. 12월에 2박 3일로 다녀왔던 팀 그대로 내년에도 날이 풀리면 꼭 다시 옵시다 했었는데 그냥 해본 말들이 아니었다. 다들 2월부터 언제 주도에 다시 가냐고 성화였던 것이다. 그런데 작년부터 제주도 골프는 항공편보다 골프장 부킹이 더 난제가 되었다. 휴일을 낀 5월이라 어찌 보면 최고의 성수기인데 그래도 지인의 도움으로 몇몇 골프장을 방문하게 되었다. 첫날 36홀을 부킹한 엘리시안 제주는 송호 씨가 디자인한 골프장인데 KLPGA 대회가 열리는 레이크/파인 코스가 회원제, 캄포/오션 코스가 대중제라고 하나 어차피 비회원인 우리에게는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LG와 GS가 다른 회사인 줄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리하여 오전에 먼저 도는 코스가 캄포/오션의 18홀.
근방의 에버리스나 나인브릿지 등과는 달리 엘리시안 제주의 페어웨이는 비교적 넓고 평평했다. 저멀리 오름이나 한라산 말고는 지평선만 보이는 경치였다. 뭍에서 온 이들에게는 낯선 초원의 모습이라 확실히 이국적이면서 편안했다. 송호 씨가 리조트 코스를, 그중에서도 대중제 골프장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설계다. 후반인 오션 코스에서도 저멀리 바다가 보이는 것만 빼면 비슷한 디자인이라 편안하게 칠 수 있었다. 기억에 남는 홀들을 몇몇 꼽자면, 그나마 도그렉이라 티샷부터 어느쪽으로 보내야하나 고민이 필요했던 캄포 5번과 7번, 그리고 페어웨이 중간에 갈대밭과 해저드가 근사했던 오션 2번과 3번 등이었다. 티박스에 잔디가 살짝 웃자랐고, 그린이 좀 느렸지만 비가 잦은 봄철이니 그러려니 했다.
나는 내기를 좋아하지 않지만 뽑기 정도는 하기도 하는데 너무 대충대충 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동반한 동료들은 내기가 아니면 무슨 재미로 골프를 치냐, 돈따는 재미와 필드에서 술마시려고 골프장에 온다는 그런 부류다. 이날도 소위 오장이라고 하는 스트로크 내기를 고집해서 같이 했는데 좀 빡씨게 내기를 해보신 분들은 아실 것이다. 잘치면 잘친다고, 못치면 못친다고 온갖 구찌와 비매너가 난무하는 분위기라 정신없는 뻐꾸기 골프였고, 나는 도무지 편하지가 않았다. 어떻게든 몇일을 함께해야하는 이들이라 꾹꾹 참아가며 치는 골프가 즐겁지는 않았는데 이런 분위기에 좌우되는 내 골프실력과 멘탈이 한심하기도 했다. 한편, 언제나 맞는 이들하고만 라운드를 할 수는 없는 것이나 치기 싫은 사람과는 다시 만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니 접대로 골프를 치는 입장이 아닌 것에라도 감사할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