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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골프장

나인브릿지

hm 2020. 6. 18. 19:39

소위 100대 골프장 순위 그런 리스트에서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국내 코스는 안양 cc와 나인브릿지 정도인데 회원권 하나 없는 주제지만 아마 제주도 골프장들 중에는 가장 많이 방문했던 곳이 나인브릿지다. 2014년에 처음 가본 이후로 매년 한두번씩은 갔었는데 몇년전부터 PGA 투어 경기를 개최하게 되면서 코스가 더 좋아졌다고들 해서 다시 가볼 날만 손꼽던 참이었다. 어려운 코스라고들 하지만 나는 백돌이 수준이던 시절에도 여기만 가면 공이 잘 맞았었다. 이 블로그에 리뷰도 예전에 올렸었지만 새로 사진을 많이 찍었기에 다시 후기를 써본다. 설계자인 David Dale과 Ronald Fream의 회사인 골프플랜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두 곳의 나인브릿지 (해슬리와 제주도) 사진이 떡하니 메인을 장식하고 있어서 아마 그들 스스로도 자부심이 대단하구나 싶다. 핸드폰 카메라로 찍으니까 사진만으로 감동을 전해드리기에 좀 부족한데 자타공인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코스. 해슬리 나인브릿지도 고급스러움은 여기에 못지 않지만 거기는 코스가 너무 인공적인 느낌이다.

이번에는 렌트카를 빌렸지만 예전에 제주공항에 내려서 나인브릿지 셔틀버스를 타면 의자 뒷편에 야디지북이 꽂혀있었다. 따로 돈내고 사야하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대충 보고는 다시 집어넣는 아마추어지만) 특별한 서비스에 기대감이 열배는 상승하는 것이다. 숙소와 클럽하우스도 처음 가봤을 몇년전에는 감동할 수준이어서 열심히 벌어야겠구나 싶었는데 요즘은 다른 곳들도 워낙 수준이 높아졌다. 명문 골프장의 기준은 다분히 주관적이겠지만 그래도 누구나 느끼는 게 있을 것이다. 배타적이거나, 비싸다거나, 전통이 있다거나, 아니면 공이 잘 맞는다거나... 나는 컨트리클럽에서는 오직 골프코스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나인브릿지에 쏟아지는 찬사에는 전혀 과장이 없다. 벤트그래스 페어웨이가 요새는 국내에도 종종 보이지만 처음 개장했을 2001년에만 해도 충격이었을 것이고, 지금도 관리상태가 좋아보인다. 여기는 Creek/Highland 코스로 이름지어진 18홀인데 몇번을 가봐도 크릭 8번 홀의 경치가 내게는 베스트였다. 저 하늘 위의 그린으로 공략하는 세컨샷은 정말이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을 명장면이었다. 없던 산을 만들거나 평지에 호수를 파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활용한 디자인이라 더욱 감동이다. 물론 180도 우측으로 꺾어져서 오프로치하는 크릭 4번도, 황량한 고원의 느낌이 제대로인 하이랜드 6번, 그리고 작년 CJ 컵에서 저스틴 토마스와 마크 레쉬먼의 명승부가 펼쳐졌던 하이랜드 9번도 압권이다.

우리는 이번에 두번 라운드했는데 이틀 모두 크리크/하이랜드 코스의 순서였다. 이전 방문했던 때보다 분명히 볼스트라이킹이 나아졌기에 코스를 제대로 즐길 준비가 된 것이다. 무조건 껀수만 잡히면 나갔던 시절도 있었지만 요즘에는 코스와 날씨, 그리고 내 컨디션이 모두 최상일 때 쳐야 즐거워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심지어 지난 달에 교통사고를 내고는 좋은 코스에서 잡혔던 라운드도 취소했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완벽했던 이틀이었다. 티샷은 페어웨이로 잘 갔으며, 이 코스가 이렇게 짧았었나 의아할 정도로 숏아이언이나 웨지 어프로치를 했다. 보기보다 빠른 그린에서 쓰리펏이 속출한 것은 평소의 나와 달랐으나 나는 여전히 투온 쓰리펏이 쓰리온 투펏보다 자랑스럽다. 그리고 두번의 라운드에서 첫날은 90대 타수, 둘째날은 70대를 쳤는데 실제 스코어보다 내가 생각한 식의 코스공략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에 뿌듯하다. 예로 하이랜드 9번인 파 5 홀에서 티샷이 약간 오른쪽으로 가서 내리막 라이에 엉거주춤 서서는 가운데의 숲을 넘겨 170미터 레이업을 했는데 탄도가 과연 나올라나 걱정했지만 아일랜드 그린에서 90미터인 지점까지 공을 잘 보냈을 때 짜릿한 희열이 느껴졌다. 세번째로 친 웨지샷이 잔디를 잘 파서 제대로다 싶었으나 약간 짧아서 벙커에 들어갔고, 거기서 핀을 살짝 넘어가게 (내가 생각해도) 멋진 벙커샷을 했으니 이제 나인브릿지에는 여한이 없다. 잔디가 한창 물이 오를 6월이었고, 날씨도 제주도답지 않게 화창했는데 진짜 요즘은 원없이 골프를 친다는 생각을 한다. 일하는 시간 빼놓고는 오직 골프만 하는 생활인데 예전보다 좀 잘하니까 더 재미있어지는 것이다. 세상 이치가 이렇게 단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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