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레븐

벌써 반년전이지만 다사다난했던 2020년의 마지막 라운드를 여기서 했었고, 나름 괜찮다고 느껴서 잔디가 푸르른 시절에 다시 오리라 했던 일레븐 컨트리클럽이다. 뜻하지 않게 골프붐을 맞이하여 작년에 급히 개장한 골프장들중에는 올데이나 샴발라처럼 준비가 부족하게 서둘렀구나 싶은 곳들도 있었는데 그래도 일레븐 cc는 나쁘지 않았다. 충주로 내려가다가 감곡 ic를 나가서 금방인 일레븐 cc는 처음에 멀리서 클럽하우스를 바라보면서 저기는 아마 회장님 집이겠구나 했을 정도로 아담하고 예뻤다. 입구에는 골프텔도 있었고, 작년말에는 눈이 많이 내린 상황에서도 페어웨이와 그린의 눈을 열심히 치워놓았어서 관리도 열심으로 보였다. 마운틴/파크 코스인 18홀에 드래곤 엔지니어링에서 설계했다고 한다.

5월말에 가보니 지난 방문과 달라진 점은 잔디의 색깔만이 아니었다. 코로나 공포가 극에 달했던 12월말에는 골프장에서 3인 플레이만 가능하다고 했었고, 연습장도 문을 열지 못했던 시절이라 (날이 춥건 말건) 골프채를 휘두를수만 있다면 어디라도 가자 그랬던 시절이다. 여기는 산꼭대기에 만든 골프장이라 바람이 많고, 산의 양쪽으로 홀들이 배치되어 어떤 홀이 햇볕을 받으면 어떤 홀은 그늘이 진다. 더웠다 추웠다 그런 것보다도 그늘진 홀들의 관리를 어떻게 할까 걱정스러웠다. 지금이야 잔디의 상태가 절정으로 좋았고, 우리나라 어디에나 흔한 소나무 말고도 자작나무를 많이 심어놓았던데 어서 빨리 자라서 무성한 숲을 이루면 더 좋아질 것이다. 날씨나 관리상태를 배제하고 코스에 대해서만 얘기하자면, 보기에도 그럴싸하고 재미있는 홀들이 몇몇 있었다. 90도 꺾어지는 도그렉이나 저높이 하늘을 향해 티샷하는 홀도 있어서 일단 시각적으로 즐겁다. 한편, 잘못 맞은 공이 옆의 홀로 넘어갈 가능성도 있는데 홀들 사이에 그물망을 쳐놓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랬다면 보기에 흉했을 것이고, 나중에 숲이 무성해지면 해결될 것이다. 산자락을 따라서 층층계단으로 쌓은 페어웨이인데 곳곳에 암반을 노출시켜놓은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인상적이었던 홀들은 주로 후반인 파크 코스에 있었는데 우측 90도 도그렉인 14번과 15번, 그리고 이어지는 까마득한 오르막 16번은 상당히 재미있었지만 팀들의 플레이가 밀리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시작할때 프론트에서는 아직 공사중인 홀이 하나 있다고 (미안하다며) 4인 커피와 마스크를 무료로 준다. 코스의 상태야 어떻든간에 올사람은 와라 식의 골프장들도 많은데 여기는 확실히 서비스 마인드가 되었다. 골프장 가격이 미쳐버린 2021년에도 평일 오후에 14만원 그린피는 혜자였다. 오늘 싸게 잘쳤습니다 말하고보니 사실 충주에서 이정도 가격이면 싼 것도 아닐텐데 어느덧 코로나에 적응해버린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 이제 백신접종이 진행되면 코로나 격리와 해외여행 제한은 어떻게든 끝내야하지 싶은데 전세계가 유사이래 처음으로 겪은 사태였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예년에 비해 비슷한 횟수로 라운드를 하고 있고 (비용은 몇배로 들어간다), 해외에 나가지 못하는 것만 아쉽다. 앞으로 (코로나가 끝나도) 예전처럼 아무 걱정없이 놀러다니는 세상이 돌아올까 걱정스럽긴 한데 이 상황에서도 아프지 않고, 그나마 골프장에라도 나갈 시간과 돈, 동반자가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겠다. 한편으로는 라운드 횟수를 좀 줄이더라도 보다 진지하게, 더 잘쳐보고 싶다. 백돌이 골프를 치면서도 허허 스코어가 뭐가 중요하냐 즐겨야지, 그러는 맘이 실은 편하지 않다는 것을 다들 아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