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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는 편안하다고, 저기는 어렵다고들 얘기하지만 대체 골프장이라는 체육시설은 난이도에 대한 기준이 없다. 대개 18개의 홀에 파 72를 맞추면 되고, USGA 등에서 slope/rating 시스템으로 난이도를 평가해놓긴 하지만 만드는 사람 맘인 것이다. 나같은 아마추어에게는 흔히 스코어 잘나오는 코스가 좋은 골프장이지, 그렇게 얘기를 하겠지만 네모반듯 평평하다고 버디나 파의 연속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설계하는 입장에서도 난감할 것이, 제각각의 입지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살리면서도 적당하게 도전적인 동시에 흥미를 잃어버리지 않을 (골프장의 주된 고객은 아마추어지 프로가 아니다) 디자인을 만들어내야하는 것이다. 어떤 골프장이든 직원이 친절해서, 가격이 싸서 (혹은 비싸서), 관리상태가 좋아서 (혹은 기대와 달라서), 고급스러워서, 하다못해 그늘집의 막걸리가 맛있어서라도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으나 기본적으로 코스가 좋아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골프라는 운동이 홀마다 파를 잡아내는 것이 목적이니 너무 쉬워도 재미가 없다. 그리고 코스의 품질은 관리에 의해 유지되겠지만 디자인은 설계자가 만드는 것이라 나는 새로운 골프장에 가게되면 우선 누가 설계했는지를 찾아본다. 설계하는 이들도 취향과 특기가 제각각이긴 할텐데 아무래도 유명하고 경험많은 설계자가 더 훌륭한 코스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
연중행사로 모처럼만에 필드에 나가는 입장이라면 좀 생각이 다르겠지만 대다수는 어려운 골프장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공이 숲으로 사라지고, 트리플보기를 하더라도, 그린에서 가쁜 숨을 고르며 저기서 이렇게 쳤어야하는구나 후회하는 것도 재미있다. 물론 어려운 코스를 (스코어는 중요하지 않다) 제대로 즐기려면 공을 원하는 곳으로 비슷하게라도 보낼 수 있어야하고, 또 그날의 컨디션이 받춰줘야하는 법이다. 아무튼 나는 Robert Trent Jones 2세의 설계를 가장 좋아하면서도 어려워한다 (아버지 RTJ의 코스는 별로 쳐본 기억이 없고, 형인 Rees Jones는 전혀 다른 취향의 설계를 한다). 누가 내게 지금껏 가본 가장 어려웠던 골프장이 어디였냐고 묻는다면 시카고 인근의 Thunderhawk, 음성의 레인보우힐스, 그리고 웰리힐리 남코스라고 얘기하는데 이들 셋의 공통점이 RTJ 주니어가 설계했다는 사실.
원주를 지나서도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한참을 가야 도착하는 웰리힐리를 거의 2년만에 다시 방문하게 되었다. 몇년전에 일박이일 패키지로 36홀을 돌았었는데 아무래도 당일치기로 다녀오기에는 부담스런 위치였으나 그사이 동계올림픽을 치르면서 길이 좋아진 덕에 이제 강남에서 한시간 반이면 간다. 마침 누가 회원가로 잡아주었으므로 이번에도 일박이일로 양쪽 코스를 다 돌아보기로 했는데 주지하다시피 여기는 어렵다고 소문이 자자한 코스. 전보다야 실력이 나아졌으므로 은근 기대하면서 간다. 두 코스 중에서 어디가 나은지는 달랑 한번 가본 처지에 판단할 바는 아니지만 인/아웃으로 나뉜 남코스에 비하면 원웨이 진행인 북코스가 제대로 된 (그래도 역시 어려운) RTJ 코스라고 본다. 어렵다는 원망이 심했는지 지금의 남코스는 파 75로 조정을 해놓았는데 (악명높은 16번이 파 5가 된 것은 좀 억지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나같은 사람이라면 그저 감사합니다ㅠㅠ) 스코어라도 좋게 받아가라는 의도일 것이고, 난코스의 자부심을 스스로 깎아먹는 바보짓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벙커를 메꾸거나 페어웨이를 넓히는 식으로 코스를 망쳐놓은 것이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다.
시작하면서 보니 그래도 몇번 와봤다고 코스가 눈에 들어온다. 산세 사이의 분지에다가 남코스를 만들어넣고, 거기를 빙 돌아가며 북코스가 있는데 캘리포니아의 Morongo 골프클럽이 떠오르는 설계다. 우리나라에서라면 비슷하게 어려운 레인보우힐스도 있는데 다른 동네다보니 경치도, 코스의 레이아웃도 좀 다르다. 티샷이 부담가게 만들어놓아서 페어웨이가 좁아보인다거나 해저드를 넘어가게 만들어놓았으나 막상 가보면 여유공간이 충분하다. 힘들어가지 않게 평소처럼 휘두르는 것이 중요하고, 거기서부터의 어프로치가 결국 스코어를 좌우한다. 나도 이제 롱아이언이나 우드에 자신이 좀 생기긴 했지만 그린 주변이 편안하지 않으면 180미터 어프로치는 무모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여기는 RTJ 코스의 전형답게 포대그린에 그린 주변에는 만만한 라이가 거의 없다. 6월이라 저멀리 숲의 초록빛이 아직 연해보여도 잔디는 잘 올라왔기 때문에 뗏장을 푹푹 떠내며 즐거운 골프를 친다. 몇번째로 방문해서 보니 웰리힐리는 일단 시각적으로 무척 아름다와서 그린이 아직 느리더라도 비가 자주 내리는 시기에 당연하다고 봐주기로 했다. 얼마전 프로와의 라운드에서도 느꼈지만 요즘의 나는 티샷만 죽지 않으면 어떻게든 (화이트티에서라면) 파 내지는 보기로 막아낸다. 예전에는 어떻게든 버디를 해보겠다고 기를 썼으나 보기플레이 수준인 요즘에는 아주 만족스러운데 이날도 파 75로 세팅된 코스에서 85타를 쳤다. 골프장에 자주 나가는만큼 연습장에 가는 횟수는 예전보다 크게 줄었다. 이대로 아프지 않고 이 운동을 오래오래 즐긴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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