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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횡성이지만 거의 원주라고 봐도 무방할 지역에 성우 오스타 cc로 개장했던 이 골프장은 Robert Trent Jones 2세가 설계한 36홀 코스다. 이름이야 지금은 웰리힐리 컨트리클럽이 되었으나 코스는 그대로여서 (홈페이지의 소개에 따르면) 울창한 자연림을 따라 이어지는 북코스, 산자락으로 둘러싸여 웅장한 분지 형태의 남코스라고 한다. 대충 아주 어려운 북쪽, 그리고 거기보다 더 어려운 남쪽이라고 이해하시면 된다. 아웃/인으로 나뉘어진 남코스에 비해 북코스는 원웨이 진행이다. 지도에서 보면, 산의 능선을 따라 한바퀴 도는 형식이라 마치 캘리포니아의 Morongo Golf Club at Tukwet Canyon 비슷하다.
요새는 길이 좋아져서 여기도 당일치기로 충분히 다녀올 거리가 되긴 했는데 36홀 리조트에서 한쪽만 돌고 돌아오기는 아쉬워서 이번에도 일박이일로 쳤다. 일요일 오전에 막히지 않는 고속도로를 달려가는데 확실히 여주를 지나 강원도로 접어들면 공기부터가 상쾌한 느낌이다. 기껏 여주보다 몇십분을 더 갔을 뿐인데 심리적으로 어디 먼 곳으로 온 것만 같다. 여주나 양평 끝자락은 당일치기가 맞는데 강원도 횡성이라고 하면 어째 일박이일이 당연하게 생각된다. 리조트에서 일박하고는 (지어진지 오래라 많이 낡았다) 클럽하우스에서 조식을 먹으면서 보니까 골프장과 저멀리 스키장에 이르기까지 가슴이 시원해지는 경치다. 서울보다도 한참 낮은 기온이라 상쾌함이 더해진다. 이 좋은 위치에 리조트 코스를 조성하면서 대체 왜 사람들 입에서 욕나오는 어려운 디자인으로 했을까 살짝 궁금하기는 한데 아무튼 회원가로 잡아준 동반자 덕택에 RTJ 코스를 몇주 연속으로 (레인보우힐스, 서원밸리 등등) 경험하게 되었다.
북코스는 시작부터 핸디캡 1번이다. 이 골프장이 그리 만만하지 않음을 시작부터 일깨워줄 목적으로 만든 모양으로, 내리막에 200미터를 넘어가면 해저드가 있다. 내기를 좋아하지 않지만 누가 하자고 우기면 타당 천원 정도의 스트로크를 하는데 우리는 모두 "내기는 2번 홀부터" 외치고 말았다. 도그렉에 곳곳이 해저드고, 경사가 심한 그린은 잘치나 못치나 비슷한 스코어를 만들어준다. 그래도 얼마전에 유튜브에서 본 레슨대로 팔과 손목으로만 티샷을 하니까 방향성은 아직 문제가 있어도 어이없는 샷은 잘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잘 맞아도 좋은 자리로 가느냐 마느냐 복불복은 아니어서 레인보우힐스보다는 쉽다고 본다. 그리고 어제보다 스코어도 살짝 많이 나왔는데 이래서 골프는 코스가 어려워보인다고 못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이날 나는, 이제 웰리힐리 북코스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골프장들 중에서 하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코스가 들어앉은 위치 자체가 비경인데다가 정말 위화감없게 페어웨이와 그린을 얹어놓았다. 북코스에서 가장 감탄한 광경은 티샷이 떨어질 지점에 꽃잎처럼 생긴 벙커를 조성해놓은 4번 홀이다. 시각적으로야 아름답지만 그 벙커를 넘기고도 한참을 가야하는 파 5인데 내리막이라 비교적 수월하게 GIR 달성. 내 약점이 롱게임임을 이번에도 여실히 느낀 것이 대부분의 참사는 파 5 홀들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드라이버가 말을 듣는 날에는 코스가 쉽든 어렵든 스코어가 잘 나온다. 귀가하면 또 일상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나른한 몸으로 꾸벅꾸벅 졸면서 서울로 향하는 차 안에서 그저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