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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회원제 골프장이면서도 가본 이들에게 물어보면 좋았다는 경우가 별로 없었어서 더 궁금했던 대전의 유성 컨트리클럽에 드디어 가보았다. 몇년전에도 한번 부킹했었다가 세찬 비바람으로 발길을 돌렸던 적이 있었는데 비회원도 부킹이 안되는 곳은 아니지만 서울에서 대전은 솔직히 맘잡고 내려가야하는 거리다. 임업시험장이 있던 자리에다가 18홀 코스를 조성해서 1976년에 개장했다는 이 골프장은 우리나라 골프역사에서 빠질 수 없이 중요한 곳임은 분명한데 이렇게나 세상의 관심에서 무시당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어서 한번은 직접 가서 보고싶었다. 누가 설계한 골프장인지, 개장후 코스의 개량은 몇번이나 했는지 홈페이지나 구글링을 통해서도 찾을 길이 없었고, 네이버에서 유성 cc를 치면 회원권 사세요 이런 광고같은 글들만 몇페이지씩 나온다. 대전 시내에 있으니 이쪽에 사시는 분들에게는 접근성이 최고일테고, 아마추어 대회를 매년 수차례씩 개최하는등 오랜 역사가 깃들어서 우리나라 골프에 많은 기여를 했던 컨트리클럽이지만 좋은 골프코스였다고 말하는 이를 본 적이 없으니 한번 가본다.
한참 더워지는 시기지만 역시 사람이 많다. 걱정했던 비는 밤새 내리다가 우리 티타임이 되니까 희안하게도 딱 그쳐주었다. 체크인하면서 그린피와 카트비를 선결제해야하고, 그늘집에서 뭐를 먹으면 현장에서 계산하는 시스템이다. 오래된 티가 나는 라커룸에는 나이드신 회원분들도 많았지만 곧 초등학생 골프대회가 있어서 연습하러 나온듯한 주니어들도 보였다. 울창한 숲에 잔디도 좋아보여서 앞의 팀만 따라가면 되니까 동반자들과 얘기도 많이 하고 즐겁게 쳤다. 이제는 도심속 골프장이 되었으니까 저멀리 아파트나 건물들이 보이고, (모든 홀의) 티박스마다 매트가 깔려있는 것은 이제 하도 익숙해서 그러려니 한다. 숲을 따라서 걷노라면 미국 북동부의 퍼블릭 느낌도 나서 어떤 홀에서는 미국 보스턴 인근의 Ponkapoag 코스를 그대로 옮겨온 것이 아닐까 생각마저 들었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평평한 골프장은 아니었지만 티샷이 터무니없이 휘지만 않으면 그린까지는 큰 난관이 없을 설계였다. 투그린이라 세컨샷을 긴 채로 잡으면 온그린이 쉽지 않았어도 막상 그린에 올라가면 투펏은 쉽다. 오래된 코스임에도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홀들이 많았고, 특히 조경이 아름다왔던 홀들을 꼽자면 역시 전반의 7, 8, 9번에서 수령이 오래된 소나무들을 바라보며 치는 홀들이었다. 후반에서는 정원처럼 꾸민 14번이 예뻤다. 그리고 뒤로 갈수록 전장이 조금씩 길어지고, 살짝 어려워지는 느낌이었다.
지금껏 웬만한 골프장에 처음 가보면 캐디가 저희는 다른 곳보다 다섯타 (내지는 열타) 정도는 더 나오실 거예요 하던데 그 다른 골프장이 어디일까 늘 궁금했었다. 아마도 유성 cc가 그런 곳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갔는데 의외로 재미있고 멋진 골프장이었다. 오르막 내리막에 블라인드나 도그렉 홀들도 있었지만, 공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았다. 이날 우리는 소소하게 스트로크 내기를 했는데 동반자들에게 핸디를 듬뿍 주고 시작했지만 결국 내가 약간이나마 돈을 땄다. 나라면 불러주는 이가 있다면 (대전이라 좀 멀더라도) 언제라도 기꺼이 방문해서 라운드하고싶어질 골프장이었는데 예전에 내게 유성 cc 그저 그렇다는 식으로 얘기하던 지인은 어떤 경험을 했었을까? 한편, 이날의 동반자 한 명은 소떼몰이하듯 계속 플레이를 재촉하는 캐디에게 불만이 대단했다. 주말 오전에 풀부킹인 경우 흔하게 보는 일이긴 한데 앞의 팀이 저기 보이고, 뒷팀은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뭐가 느리다는 거냐 나는 여기서 하나 다시 치고 가겠다 등의 실랑이를 종종 본다. 진행속도에 대해 이래저래 말들이 많지만 내가 보기에 대부분의 (느린) 골퍼들은 자기는 느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느리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플레이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좀 대충 빨리 치는 스타일이 몸에 배어버려서 좀 신중해져야겠다 생각도 하는데 워낙 많은 라운드를 하기 때문에 너무 집중하면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 불만은 전반을 1시간 반만에 마쳐놓고는 그늘집에서 거의 한시간 가까이 대기시키는 운영에 있다. 2부제, 18홀 코스를 아웃/인으로 출발시키는 운영방식을 대체 누가 창안했을지... 미국에서도 인기있는 코스에서는 후반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2부제의 원조는 아마 일본 골프장이었지 싶은데 팀을 많이 받고 싶으면 차라리 샷건 방식이 낫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