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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몽베르의 36홀 중에서 쁘렝땅/에떼 코스의 조합을 예전에는 북코스라고 불렀고, 지금도 회원제 18홀로 운영되고 있어서 (퍼블릭 부킹은 양쪽 모두 가능은 함) 남코스인 오똔/이베르 코스보다 몇만원 비싸고 부킹도 어렵다. 좋은 골프장인줄은 익히 알고있지만 서울에서 가자면 여전히 먼데다가 티타임을 잡기가 어려웠던 곳인데 한여름 혹서기에 마침 기회가 생겼다. 코로나 거리두기 4단계로 오후에는 2인 플레이만 가능해지면서 취소팀이 많이 나온 것인지 3부 첫팀을 잡을 수 있었고, 진행이 막힐 상황이 아니라서 해가 지기 전에 끝낼 수 있지 싶었다. 몽베르는 임상하 씨와 Desmond Muirhead가 설계한 코스인데 2002년 장마와 산사태로 코스가 엉망이 된 후에 권동영 씨가 리노베이션을 했다고 한다. 내가 골프를 시작한 것이 훨씬 뒤니까 오리지날 코스는 어땠는지 나는 모른다. 워낙 산세가 아름다운 지역이라 어렵긴 해도 실망한 적이 없었지만 세간의 평은 오똔/이베르 코스가 더 아기자기하고 예쁘다는 경우도 있다.

어차피 끝나고 샤워가 불가능한 상황이라서 차에서 반바지로 갈아입었다. 이날 우리는 에떼 코스부터 시작했는데 5인승 카트에 달랑 플레이어 두명과 캐디가 앉으려니 뭔가 신기한 경험이었다. 노캐디로 했어도 좋았으련만 우리에게는 무뚝뚝 남자 캐디가 배정되어 18홀을 돌았다. 골프장이 위치한 지역이 명성산이라고 하는데 궁예가 왕건에게 쫓겨 자리잡은 지역이라고 하니 산세만큼은 최고다. 다들 몽베르는 가을이 아름답다고 하고, 나도 동의하는 바지만 (특히 양잔디) 골프코스를 가장 멋지게 사진에 담으려면 덥고 쨍한 여름철이 최고다. 특히 단풍을 실제 보는만큼 표현하지 못하는 휴대폰 카메라로 찍느니 그냥 가을의 풍경은 눈에 담아가고, 골프코스의 사진은 여름에 찍어야한다. 다만, 덥거나 추워서 웬만하면 카트를 타야지 하는 시절에는 사진찍을 기회가 티박스와 어프로치 지점인 경우가 많아서 나중에 보면 비슷비슷한 사진들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에떼 코스에서는 가장 어렵기도 한 4,5,6번이 유명하다. 다들 몽베르에 오면 단체사진을 찍는 에떼 5번은 비교적 짧은 롱홀인데 투온을 노리다가 다들 낭패를 겪는다. 그린으로의 어프로치샷 지점쯤에 개울이 있고, 여기 놓인 돌다리가 마치 오거스타나 St. Andrews 분위기를 낸다. 이어지는 6번은 전형적인 솥뚜껑 그린의 파 3인데 잘 올려도 흘러나가는 경우가 많지만 경치만큼은 대단했다. 거의 모든 홀에서 망무봉이 보이지만 에떼 9번에서 가장 잘 보인다. 봉우리를 바라보며 티샷을 하고, 역시 같은 방향으로 그린을 노리긴 하지만 티박스에서 보는 경치와 페어웨이에서 보는 모습이 완전히 달라서 그것도 신기했다. 후반에는 200야드가 넘는 파 3인 쁘렝땅 4번과 오르막 400야드가 넘는 5번이 힘든만큼 극적이었다. 나는 두 홀에서 모두 원펏으로 파를 했는데 이날의 전체 스코어야 어쨌든 아주 잘친 느낌이었다. 내 생각에 북코스에서는 에떼를 먼저 도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쁘렝땅 9번이 라운드를 마무리하기에 꽤나 적절하게 보여서인데 엄청난 경치의 바위산이 클럽하우스를 둘러싼 형상이어서 이 홀이 몽베르를 대표한다고 생각되었다.

우리는 이날 어쩔 수 없이 (남자 둘이서) 2인 플레이를 했지만 앞뒤의 팀들의 거의가 커플인 모양이었다. 부러워할 나이는 지났지만 (저들은 아마 끝나고 어디선가 씻고 가겠지?) 뭔가 우리만 이상한 사람들같았는데 아무튼 평소같으면 2인 부킹은 받아주지도 않았을 골프장들이 상황에 따라 어떻게든 운영을 해내는구나, 커플이라면 지금 상황이 더 좋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18홀을 도는데 3시간 반이 걸렸으니 나로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된 라운드였고, 샤워는 금지였지만 라커 사용이 허용되어 다들 거기서 물수건으로 몸을 닦고 옷을 갈아입고 하더라. 이런 식의 방역으로는 코로나를 이길 수 없다고 다들 깨달았을 법도 한데 인류가 여지껏 겪어보지 못했던 이번 사태가 (일부 음모론자들 주장처럼) 누군가가 기획한 것이라면 정말 성공이었으니 이제 그만하라고 해주고 싶다. 나처럼 별다른 취미가 없는 사람은 그나마 골프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이 시기를 견뎌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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