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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속초나 고성을 골프치겠다고 겨울철에 가는 것이 보통의 경우라면 옳은 선택이 아니겠으나 코로나 시국에 어디든 가야한다면 썩 나쁜 것도 아니라고 한다. 소위 영동 지방은 겨울철에도 눈이 적게 오고 포근하다고들 했고, 겨울에 그쪽으로 가보는 것은 나로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Pine Ridge가 "파인리즈"로 읽히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청심국제중학교로 유명한 모 종교재단의 소유이니 아마 맞는 거겠지?) 아무튼 여기도 강원도 고성에 설악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만들어진 27홀 (파인/리즈/레이크) 골프장이다. 몇년전 처음 여기를 갔을 때에는 첫날 델피노에서 18홀을 돌고는 바닷가 횟집에서 거하게 저녁을 먹었고, 파인리즈 골프텔에서 잤으며, 파인리즈의 레스토랑에서 조식을 먹었고, 아침 일찍부터 리즈/파인의 순서로 골프를 (지금과 다른 초록의 잔디에서) 쳤다. 무지 어려워서 고생한 기억밖에 없어서 어떤 코스였었지? 네이버로 검색하니 (의외로) 모두가 극찬 일색이었다. 나는 이 블로그 말고도 다른 이유로 종종 글을 쓰는 직업인데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거기에 맞춰서 서술하는 문장은 아무래도 표가 난다. 정말로 좋은 골프장일 수도 있지만 좋게 적어보자고 의도하고 쓴 글은 끝까지 읽어보지도 않게 된다. 아무튼 이재충 씨가 설계한 27홀 골프장이라 어려울 것은 당연했고, 언제 다시 오려나 했는데 겨울의 싼 패키지가 나왔길래 냉큼 팀을 모았다.
하루 일정으로 다녀오더라도 제주도나 남도 여행과는 다른 무언가가 강원도에는 있다. 공항으로 가서 한참을 기다렸다가 한시간 남짓 비행기를 타고, 목적지 공항에 내려서는 또 한참을 차로 이동하는 스케줄에 비해 속초, 양양 이런 동네는 그냥 차로 (길이 막히거나 말거나) 떠나면 되니까 부담감이 적다. 일기예보가 나쁘면 그냥 취소해도 된다. 게다가 가평, 춘천을 지나면서부터는 뭔가 익숙하면서도 신선한 절경을 보면서 하는 드라이브다. 요즘에는 좋은 숙소도 많고, 맛과 가격을 모두 만족시키는 먹을 것도 지천이다. 같은 강원도라도 태백산맥 서쪽의 인제와 동해안 지역은 날씨도 분위기도 큰 차이가 나던데 특히 고성 지역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눈도 별로 오지 않고 따뜻하다고 하니 골프치기에는 천혜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물론, 상대적인 얘기지 가는 길은 빙판이었고, 골프장에 도착하니 칼바람에 몸이 시려웠으니 기온이 영상인 것에 감사할 뿐이었다. 일박이일 패키지에서 첫날은 레이크/리즈, 둘째날은 리즈/파인 코스의 순서.
양잔디라도 누래진 페어웨이였으나 주변의 풍광만으로도 근사한 지역이라 기분좋게 라운드를 시작했는데 나로서는 베스트인 티샷에도 짧은 웨지샷이 해저드로 들어가버렸고, 쓰리펏까지 나오면서 트리플보기로 시작했으니 어려운 코스가 맞다. 리조트 코스에 너무한 거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지만 티샷은 무난하게 받아주는 페어웨이에 그린을 공략하기가 어려워지는 설계는 감탄할만했다. 기존에 있던 지형을 그대로 살려서인지 어려운 홀들과 비교적 평이한 홀들이 뒤죽박죽으로 이어진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설악산의 경치는 어느 홀에서나 근사했다. 레이아웃이 산세를 등지고 나아가는 형태라서 공을 치는 상황에서는 풍광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지만 그린에서 뒤를 돌아보면 비로소 멋진 홀을 지나왔구나 했다 (티박스와 그린을 맞바꾼다면 더 근사했을 수도). 추운 겨울철의 방문에서 경치가 좋았던 홀들을 떠올리는 것은 부적절해보이고, 대신에 어려우면서도 기억에 남았던 홀들을 꼽자면 단연 아일랜드 티박스에서부터 긴 전장을 플레이했던 레이크 9번이 떠오르지만 여기는 그나마 쓰리온이나 포온이 어렵지 않았고, 숲에 가려서 보이지도 않는 페어웨이와 물을 넘어가는 파 5인 리즈 8번이 군계일학이다. 목표지점이 보이지 않지만 해저드 또한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방향과 거리를 모두 캐디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잘 맞았다 싶었어도 가서 보면 공을 찾을 수 없는 이런 식은 잘 플레이해오던 골퍼가 와장창 무너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초보의 수준을 벗어나게 되면 파 3보다 롱홀에서 더 편안해지는 법인데 여기는 다 어렵다.
이틀간 춥고 힘들었어도 좋은 이들과 재미있게 쳤다. 아마추어의 골프에서는 즐거웠으면 최고의 골프장이기 때문에 경치나 설계, 관리 등은 부차적인 것이고 누구랑 어떻게 시간을 보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파인리즈는 훌륭한 입지에 잘 설계된 코스지만 나름 어려워서 자칫하면 최악의 경험일 수도 있다. 게다가 독실한 신자인 모 지인처럼 종교적인 이유로 파인리즈를 싫어하는 경우도 보았다. 통일교가 주인인 골프장들이 우리나라에 여럿 있지만 (여수의 디오션, 평창의 용평 등등) 누가 말해주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가게 운영되던데 여기, 파인리즈만큼은 골프장과 숙소 여기저기에서 모기업을 홍보하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프론트에서 교인이 되면 할인같은 거 있나요 물어봤는데 잘 모른다는 대답이었다. 이런 엉뚱한 생각이 들만큼 골프가 절실하다. 지난 2년간은 전세계 모두에게도 그렇겠지만 나도 그럭저럭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희안하게 살았다. 어디 나다니거나 누구를 만나러 다니지를 못했으니 직장과 집만 왔다갔다 한다. 골프로만 국한하자면 그래도 나는 십여년의 구력에서 가장 많은 수의 (국내) 라운드를 했으며, 치면 칠수록 스코어가 올라가고 스윙도 엉망으로 변했다. 잘쳐야겠다거나 새로운 코스를 가본다거나 그런 목표없이 그저 기회만 생기면, 아니 그보다는 시간만 비면 무조건 나가서 공을 쳤다. 덕택에 코로나의 스트레스를 견뎌냈다고 나름 변명을 해본다. 한편, 2년전에는 가끔씩 데리고나갔던 몇몇 지인들이 그동안 골프에 미쳐버려서는 상당한 수준으로 향상되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점점 퇴보하는 내 골프와 비교되면서) 나도 좀 진진해져야겠다 싶어져서 새롭게 레슨도 받고 그러는 중이다. 2022년에는 더 나아진 실력으로, 예전처럼 해외 골프장으로 새로운 코스를 수집하러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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